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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한 글 · 서평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 교육신문

| 이름 없는 아이

은행원 한남석의 1남 2녀인 한수철, 한수지, 한수인. 수인은 그 이름보다 ‘오목’이란 별명으로 더 많이 불렸다. 아들을 얻지 못한 수철의 실망감으로 오목이는 이름 없이, 출생신고 없이, 4년을 살았다.

6·25 전쟁. 한남석 일가도 피하지 못했다. 7살 수지는 두 살 터울의 동생 오목이에게 매번 음식을 빼앗기는 것을 참지 못하고 피난길에 동생의 손을 놓아 버린다. 수지는 전쟁 중에 부모를 잃었으나, 은행원이었던 아버지의 유산으로 오빠 수철과 함께 여유롭게 살아간다.

수지가 오목이 손을 놓쳤는지 그 한계는 모호했고 그걸 알고 싶어하는 사람도 처음부터 없었다. 수지는 자기 자신만 속여먹을 수 있으면 속 편할 수 있었다. (1권, 한 옛날에)

| 숨바꼭질

성인이 된 수지는 오목이를 찾기 위해 전쟁 고아가 생활중인 ‘오누이의 집’을 1년에 한 번 찾아간다. 수지는 ‘목이’라는 이름으로 생활하고 있는 아이를 발견했음에도 자신의 신분과 체면을 이유로 동생을 외면하고 지내다가 ‘오누이의 집’은 문을 닫는다.

그동안의 헛된 찾아 헤맴이 남의 눈을 속일 수 있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자신의 비인간성에 대한 절망감은 일생 동안 지울 수 없을 것 같았다. (1권, 숨바꼭질)

‘오누이의 집’이 사라지며 함께 살던 아이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오목이는 영광학원 중입반 상담실에서 일하게 된다. 오목이는 학원에서 만난 미순이를 착실히 돌보며 미순이의 집에 ‘최오목’으로 입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핏줄에 대한 오목이의 타는 갈망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부모와 자식은 어떻게 닮았나? 부모와 자식을 맺어주고 있는 혈연의 끈이 사랑이라는 걸까? 부모가 자식에 의해, 자식이 부모에 의해 어느 만큼 더 행복해질 수 있는 걸까? 대강 이런 것들이 알고 싶었지만 그녀가 반짐작이라도 할 수 있는 건 자식에게 있어서 부모야말로 무서운 악운일지도 모른다는 것 하나뿐이었다. (1권, 숨바꼭질)

| 명암(明暗)

수지는 대학에서 오랫동안 관계를 이어온 이인재와 결혼을 고려하다가, 인재의 가난함을 직면하고 수철이 맺어준 남기욱과 약혼한다. 우연히 인재와 오목이 함께 있는 자리를 본 수지는 오목이 고아라는 사실을 폭로한다. 이를 계기로 오목은 가출한다.

어제 일이 낱낱이 떠올랐다. 재수 나쁜 날이었다. 그러나 곧 새날이 밝아오리라. 오목이는 어둠 속에서 익숙하게 옷을 챙겨 입고 필요한 걸 찾아서 가방에 쑤셔 넣었다. 늘 떠나기를 준비해온 것처럼 필요한 것은 단 한 서랍 속에 정리돼 있었다. (1권, 응달)

오목은 집을 나와 ‘오누이의 집’에서 함께 자란 유일환을 찾는다. 5년 전, 우연히 만난 일환이 ‘우리가 고아를 면하는 길은 우리끼리 가족이 되어 새로운 가족을 늘리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다음날, 오목과 일환은 차고에 살림을 차리고 결혼한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오목은 일환의 가정폭력에 시달린다.

그는 오래지 않아 아이를 보퉁이처럼 안고 돌아왔고 그때부터 산기가 있어 오목이는 새벽녘에 계집애를 낳았다. “재수 나쁘게 딸년이야?” 아기를 비릊는 동안 제법 신바람이 나서 들락날락 뭔가를 도와주려고 애쓰던 일환이가 아기가 딸인 걸 알자 이렇게 화를 냈다. 그의 화는 오래 갔고 그들의 생활은 한층 곤궁해졌다. (2권, 미리 온 아이, 148쪽)

반면, 수지는 기욱과 결혼하여 두 명의 아이를 낳고, 자선사업을 하며 화려하고 부유한 삶을 산다. 종종 오목을 떠올리고 죄책감을 느끼며…. 세월이 흘러 수지와 오목은 우연히 재회한다. 우연한 만남으로 수지는 내부의 혼란을 몸살로 앓았으나, 오목은 이미 다섯의 아이를 낳고 병색이 짙어진 상황. 수지는 오목이 죽음에 이르러서야 참회하며 수인에게 용서를 빈다.

어쩌면 수지가 꺾은 것은 무릎이 아니라 이기로만 일관해온 그녀의 삶의 축이었다. 마침내 그것을 꺾으니 한없이 겸허하고 편안해지면서 걷잡을 수 없이 슬픔이 밀려왔다.

“오목아, 아니 수인아, 넌 오목이가 아니라 수인이야. 내 동생 수인이야. 내가 버린 수인이야. 내가 너를 몇 번이나 버린 줄 아니……?”

이렇게 목멘 소리로 시작해서 길고 긴 참회를 끝냈을 때 수인이는 이미 죽어 있었다. 그러나 수지는 용서받은 것을 믿었다. 수인의 죽은 얼굴엔 남을 용서한 자만의 무한한 평화가 깃들어 있었으므로. (2권, 부드러운 겨울, 339쪽)

| 부드러운 겨울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는 6·25 전쟁 이후 물질적 풍요를 이룩한 남한 사회의 중산층의 도덕성을 고발하고, 한국 사회의 추악한 속물성을 파헤친다. 이 작품을 통해 박완서 작가는 6·25 전쟁 이후 이룩해낸 비약적 경제 성장이, 실은 전쟁의 죄책감 위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책을 읽으며 여러 번 주어진 참회의 기회를 놓아버리고 마는 수철과 수인의 모습 보았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어두운 진실을 기피하고 외면하는 그들이, 그들 자신에 의해 고통받은 자들의 아픔을 절대로 통감(痛感)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절망감을 느꼈다. 수철과 수인은 자신의 것을 움켜쥐고 결코 놓으려 하지 않으며 그것을 삶의 방식이라고 자위(自慰)한다. 오목이 죽음에 이르고 나서야, 비로소 수인은 참회하며 자신이 용서받았다고 믿는다.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의 6·25 전쟁, 그 이후의 이야기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열병(熱病)과 중첩된다. 작가는 진실을 외면하고 위선(僞善)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지금 당장’ 참회함으로써 용서 받기를 역설한다. 무엇보다 속죄와 통회(痛悔) 없이는 스스로 구원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직면하길 요청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 ―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본다. (병원, 윤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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