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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안암동 블루스』 고려대학교의 역사, 문화 그리고 정신을 돌아보다

[인터뷰] 『안암동 블루스』고려대학교의 역사, 문화 그리고 정신을 돌아보다 - 교육신문

| 안녕하세요, 먼저 이번에 명예퇴직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지난 학기 퇴임 준비로 바쁘신 와중에 책을 두 권이나 출간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교수님께서 그동안 차곡차곡 발표하신 비평문을 모은 비평집 『내가 사랑한 가난한 아름다움』, 그리고 이 책인 『안암동 블루스』입니다. 『안암동 블루스』라는 선생님의 고려대학교 인생이 담긴 책을 출판하셨는데, 이 책을 출판하게 되신 계기를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오래 몸담았던 고려대학교를 떠나며 제가 겪은 모교의 정서와 정신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이를 통해 대학의 본질과 가치에 대해서도 돌아보고 싶었어요. 고대 역사를 기록한 책은 있지만 그것은 단순히 사실을 기록하고 설명한 것이어서 구성원들이 관념적 지식으로 받아들입니다. 저는 고대의 풍물과 인물을 다룬 문학 작품을 통해 고대의 역사와 문화의 내면을 투명하게 들여다보고 감각적으로 느끼게 하고 싶었습니다. 또 제가 생활 속에서 체험한 고려대의 유·무형의 자산을 에세이 형식으로 적어 그것의 소중한 가치를 일깨우고 싶었습니다.

| 『안암동 블루스』라는 책 제목을 정하게 되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블루스(Blues)’는 19세기 미국 남부 아프리카계 미국인(African-American) 사회에서 발생한 느린 박자의 애상적인 댄스곡입니다. 우리나라에선 70년대와 80년대에 성행했지요. 기성세대에게 ‘블루스’라는 음악 장르는 서정적, 애상적, 낭만적, 회고적 이미지를 지닙니다. 지난 시대 모교의 낭만적 정서를 추억하는 의미에서 이런 제목을 붙였습니다.

| 『안암동 블루스』는 ‘1부 문학의 고향 고려대학교’와 ‘2부 고려대 연가’로 구성되었습니다. 1부에는 고려대학교 출신 문인의 28편 작품과 해설이 담겨있는데요. 이 작품들을 선정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이 책에 실린 28편의 작품은 고려대학교의 풍물과 인물을 소재로 다룬 것들입니다. ‘기념 시’는 제외했습니다. ‘기념 시’들은 대체로 관념적이고, 설명적이어서 역사서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제 의도는 고려대학교 역사를 설명하려는 게 아니라, 대학 생활 속에 스며 있는 고려대의 정서와 문화를 정서적으로 느끼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려대의 풍물과 인물을 소재로 한 문학성 짙은 작품들을 선정한 것입니다.

| 『안암동 블루스』 수록 작품 중에서 선생님께서 가장 애정하시는 문학 작품을 꼽으신다면요.

좋아하는 작품이 있고, 뛰어난 작품이 있을 수 있는데, 그런 점을 떠나 고대를 소재로 한 작품들을 아우르는 대표작 하나를 꼽는다면 오탁번의 「고려대학교」를 들 수 있을 겁니다. 이 시는 고려대학교의 정체성을 압축적으로 드러낸 작품입니다. 고려대학교 정문에는 다른 대학과 달리 문패가 없고, 고려대 구성원들은 그런 사실조차 모르고 지낸다는 것이 이 시의 핵심 내용입니다. 시인은 이런 현상을 두고 고려대학교를 ‘흰밥’의 이미지를 지닌 대학으로 표현하고, 이를 통해 고려대학교를 특정 집단의 대학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대학이자 우리나라 전체를 대표하는 대학이라고 말한 겁니다. ‘민족의 대학’으로서 고려대학교의 정체성을 정문을 소재로 잘 드러낸 작품입니다.

고려대학교 정문에는 문패가 없다
서울대학교나 연세대학교 정문에는
커다란 동판 문패가 구릿빛 찬란하게 붙어있어서
누구나 그 대학의 이름을 쉽게 알 수 있지만
고려대학교 정문에는 문패가 없으니
이 대학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중략)…
그런데 정말로 더 이상한 일은
문패가 없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고 있다는 것
…(중략)…
고려대학교
이 무명의 콧대 높은 선비들의 갓끈
아침 점심 저녁 때의 우리나라 흰 쌀밥처럼
아무 빛깔 없으면서도 모든 맛을 다 지닌
고려대학교 우리 대학교 그냥 대학교

최근 학교 곳곳에 ‘고려대학교’라는 명패와 팻말을 다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이것이 얼마나 촌스러운 일이고, 고려대학교의 정체성을 오히려 좁히는 일인지를 이 시가 잘 일깨우고 있습니다. 명패를 달지 않은 것은 겸손함과 자신감을 두루 갖춘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또 고대는 명패를 달지 않음으로써 모든 것을 받아들여 더 큰 하나로 만들어내고 있지요. 마치 ‘흰밥’이 맛을 내지 않음으로써 모든 반찬과 어울려 무한히 맛을 넓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 이 책의 2부에서 놓칠 수 없는 부분은 전설처럼 내려오는 정한숙 교수님과 오탁번 교수님의 이야기인데요. 먼저 ‘내 가슴 속 문학과 교육의 현장 교과서’라고 표현하신 정한숙 선생님은 어떤 스승님이셨나요?

정한숙 선생님은 소설가이지요. 제가 대학 다닐 때 「금당벽화」라는 소설이 국어책에 실려 있어 고등학교 때부터 그 명성을 알고 있었습니다. 당시엔 지금과 달리 국어 교과서가 국정으로 한 종류밖에 없어서 권위가 매우 높았습니다. 대학에 와서 그분으로부터 직접 수업을 듣는 것이 큰 영광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작가답게 소설의 창작기법을 알려주셨고, 작가들의 사생활을 재미있게 전해주셔서 소설의 배경을 실감 나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문학적 부분과 함께 선생으로부터 배운 매우 인상적인 점은 그의 외적인 차림입니다. 선생은 작가여서 옷차림이 자유롭고 분방할 것 같은데, 사실은 그 반대였습니다. 특히 강의실에 들어오실 때 한 번도 넥타이를 안 맨 적이 없었습니다. 셔츠도 항상 흰색이고 슈트도 주로 파란색이었고, 당시론 흔치 않게 슈트에 헹커치프도 자주 꽂았습니다. 거의 결혼식 예복 차림으로 강의하셨습니다. 저는 처음에 최대한 멋을 내려고 했던 것으로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교육자로서의 격식과 예의범절을 갖추기 위한 것이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제가 대학원에 가서 학위를 받고 강의할 때, 그 당시에도 젊은 사람들은 캐주얼하게 옷을 입곤 했는데, 그러면 선생이 “정장을 입고 강의 하라”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또 수업 시간에 단 1분도 늦으신 적이 없었어요. 언제나 정시에 정확히 강의실에 들어오셨어요. 그리고 당신보다 늦게 들어오는 학생들은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학생과 교수의 약속이기에 규칙을 정확히 지켜야 한다는 것이죠. 선생은 술을 좋아해서 술을 자주 드셨는데, 그래도 다음날 어김없이 8시에 출근하셨어요. 선생으로부터 대학교수 생활의 엄정함을 배웠습니다.

| 그렇다면 ‘영원한 청년 시인’이라고 표현하신 오탁번 선생님은 어떤 스승님이셨는지요.

오탁번 선생님로부터는 문학의 관찰력과 창의성에 대해 많이 배웠습니다. 오 선생님은 <현대시선독> 중간고사 시험에 도서관 앞에 은행나무가 몇 그루인가, 이런 문제를 냈고, 매미를 그려오는 것이 기말과제였어요. 학생들이 기가 막혔죠. 이런 시험 문제를 접한 학생들은 그 후 캠퍼스의 수종들을 모두 조사해서 완벽하게 시험 준비했는데, 선생은 학생들의 대비를 눈치챘는지 한동안 그런 문제를 안 내다가 어느 학기에 갑자기 중앙광장에 분수대가 몇 개인지를 묻는 문제를 냈습니다. 학생들은 다시 아연실색했죠. 지식을 암기하는 게 능사가 아니고, 평소 자신이 발 딛고 사는 세상과 주변 사물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관찰하며 지내라는 뜻으로 그런 문제를 냈을 겁니다.

현대시 수업도 문제의식 중심으로 진행했어요. 가령 윤동주의 「서시」의 마지막 구절은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친다”로 끝나는데, 이 구절이 이상하다는 것이죠. “어떻게 별에 바람이 스치냐, 별에 바람이 있긴 하냐, 무중력 상태의 우주에 무슨 바람이 있겠냐, 이게 말이 되는 소리냐”라는 식이죠. 그전까지는 유명 시인의 시를 무조건 받아들였는데, 비로소 시 구절을 하나하나 따지며 보게 되었죠. 그러다 보니 새로운 시의 세계가 보이기 시작했고, 시와 인접 학문을 연결하며 시 비평의 재미를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 교수님께서는 『정본 백석 시집』을 포함해 『백석 시 바로 읽기』, 『백석 시를 읽는다는 것』, 그리고 『백석 시의 물명고』라는 시어 사전까지 편찬하시며 백석 연구의 최고 권위자로 자리매김하셨습니다. 2부의 ‘고려대학교 도서관과 나의 백석 연구’에서 백석 연구의 공(功)을 고려대학교 도서관에게 돌리셨습니다. 고려대학교 도서관은 선생님께 어떤 존재였나요.

1937년에 세워진 고려대학교 도서관(현재 대학원 도서관)은 학교의 오랜 역사와 전통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건물입니다. 도서관은 모든 대학의 중심이겠지만, 고려대학교 도서관은 특히 남다릅니다. 우선 건축물의 미학이 뛰어나고, 그 외관이 고대인의 정신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딕 양식으로 지은 이 건축물은 매우 웅장한데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중앙의 탑입니다. 탑의 평면은 정사각형이고, 측면은 직사각형인데, 탑의 모서리에 팔각 평면의 돌출된 터릿(Turret)이 본체보다 더 높이 세워져서 하늘로 치솟는 느낌을 줍니다. 그리고 그 터릿과 본체의 상단에 여장이 처리되어 있죠. 여장은 성벽 위에 설치한 낮은 담장으로 적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고 적을 효과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구조물입니다. 높이 치솟은 탑 위에 여장이 놓여 있어 이 건축물은 거대하고 단단한 성채 같습니다. 그래서 그 도서관 외관이 그 안에서 공부하는 우리를 외압으로부터 막아주고, 우리에게 자유롭게 목소리를 내며 학문의 자유를 구가할 수 있겠다는 믿음을 줍니다. 요새같이 크고 단단한 도서관 건축물이 고대의 강한 학풍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건축물은 건축미가 뛰어난데, 사실 이 고딕 양식은 서양식 건물로 미국의 유명 대학에서 흔히 보게 되는 건물 외관입니다. 이 도서관 건물은 듀크 대학교(Duke University)의 퍼킨스 도서관과 외양이 비슷합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크게 다릅니다. 미국의 대학 건물들은 멋있지만, 고려대학교의 도서관 건물은 멋도 있고, 그에 더해 아름답습니다. 미국의 고딕 양식 대학 건물에서는 느낄 수 없는 지극한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이 건물은 고딕 양식의 전형적인 외관인 뾰족 창을 둘러싼 곡선이 서양 건물보다 더 우아하고 부드럽습니다. 또 건물 뒤에 개운산이 받치고 있어 건물의 박공지붕에 난 도마 창들이 마치 산 속에 지은 운치 있는 별장처럼 보입니다. 산을 배경으로 집을 짓는 것은 서양의 대학 건물에서는 볼 수 없는 전형적인 한국식 건물의 배치입니다. 서양의 고딕 양식을 한국의 건축물 설계 양식에 접맥시켜 이렇게 아름다운 건축물을 탄생시킨 겁니다.

이 도서관 장서의 양과 질도 압도적입니다. 고려대학교는 우리나라에 최초로 설립된 고등 교육 기관이기에 특히 1900년대부터 1920~1930년대 시기에 발행된 중요 도서가 모두 고대 도서관으로 들어왔고, 이때 기증받은 도서도 많습니다. 그리고 당시 인촌 선생이 도서관의 중요성을 일찍 간파했기에 책들을 많이 구매했습니다. 백석의 시집 『사슴』의 원본은 대학도서관 중 유일하게 고려대학교 도서관만이 소장하고 있는데 백석이 직접 기증한 겁니다. 제가 백석에 대해 마음껏 연구할 수 있었던 건 모두 고대 도서관의 방대한 장서에 힘입은 것입니다.

| 2부의 ‘운초우선교육관과 미당의 「동천」’에서는 학생들을 향한 사랑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2015~2017년 간 고려대학교 사범대학장과 교육대학원장직을 맡으며 행정적으로 많은 기여를 하셨습니다. 지금 다시 그 자리에 앉게 된다면, 특별히 하시고 싶은 일이 있으신지요.

제 업적을 얘기하는 것은 쑥스럽지만 재임 2년 동안 일을 많이 했어요. 재임 중에 교원 양성기관 평가가 있었는데, 사범대학과 교육대학원 모두 양성기관 가운데 최고 등급을 받아 교육부 장관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사범대학 주변의 외부 환경과 실내 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했습니다. 제가 부임하기 전까지 운초우선교육관 앞과 사범대학 신관 앞은 매우 좁고 지저분했는데, 이곳을 깨끗하고 넓게 만들고 쉼터도 조성했어요. 그리고 나무를 심고, 간접조명을 설치했습니다. 조명 설치는 야간에 수업하는 교육대학원생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운초우선교육관 앞에는 두 개의 달빛 조명을 설치했는데, 이것은 미당의 시 「동천」에서 영감받아, 수업 끝나고 귀가하는 학생들에게 지상의 달을 선사하고 싶은 마음에서 그렇게 한 겁니다.

그리고 학부생들의 숙원 사업이었던 임용고사 준비실과 교과서 자료실을 만들었습니다. 임용고사 준비실엔 ‘공선사후원(公先私後園)’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이것은 인촌 선생의 좌우명으로 제가 좋아하는 말입니다. ‘공선사후’는 말 그대로 “공적인 일을 먼저하고 사적인 일은 나중으로 미룬다‘는 뜻인데 사회 생활하는 사람에게 중요한 삶의 태도라고 생각하고, 교직에 있는 분들에겐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공간을 만들자 학생들이 환호하며, ’공선사후‘를 ”공립학교 임용시험(임용고사) 준비를 먼저하고, 안되면 사립학교에 가자“라고 해석하더군요. 학생들의 재치에 흐뭇했습니다.

다시 그 자리에 앉으면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물으셨는데, 짧은 재임 기간 중 크고 중요한 일부터 하느라 구상만 하고 실천하지 못한 것 중의 하나는 사대와 교육대학원 구성원들이 일주일에 하루 정도 모여서 문화 행사를 하는 것이었어요. 교육대학원은 야간에 수업이 있으니 교수와 직원 선생들이 늦게까지 학교에 있잖아요. 그래서 가령 ’이브닝 포에트리(Evening Poetry)‘같은 행사를 일주일 한 번 저녁 시간에 갖고 싶었어요. 제가 안식년 때 미국 버클리 대학(Berkeley University)에 1년 있었는데 그 대학에 “런치 포에트리(Lunch Poetry)” 행사가 있었습니다. 매주 수요일 점심에 도서관 메인 홀에서 교수와 직원들이 함께 모여 샌드위치를 먹으며 자기가 좋아하는 시인을 소개하고 이어서 시를 낭송하는 행사였는데, 이와 유사한 행사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이러한 문화 행사를 통해 교육대학원 수업을 위해 저녁에 남아 있는 서로 다른 전공의 교수와 직원들의 친목도 도모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 이 책은 교수님의 문학 인생이 담겨있는 것만 같습니다. 교수님은 대학에서 문학을 어떻게 생각하셨는지요, 또 고려대학교 학생들은 어떤 마음으로 문학을 대하길 바라시는지요.
저는 대학에 오기 전부터 대학은 문학 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입학식 때 당시 김상협 총장의 연설을 듣고 무릎을 쳤습니다. 당시 총장님의 연설은 이렇게 끝났습니다. “여기에 로도스의 섬이 있다 / 여기에서 춤추어라 / 여기 장미꽃이 피어 있다 / 여기에서 춤추어라” 이 말이 헤겔의 『법철학』의 서문에 나오는 것이란 건 대학에 입학한 후에 알게 되었는데, 그런 사전 지식이 없더라도 이 말이 비유적인 표현이란 걸 단박에 알 수 있었죠. 저는 이 말을 듣고 고려대학교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고, 대학이 문학 하는 곳이란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되었습니다.

문학 작품 속엔 정치·경제·역사·사회·문화가 다 녹아있고, 인간의 내면에 대한 통찰까지 담겨 있습니다. 세상과 인간을 이해하는 데 문학만큼 중요하고 효율적인 과목은 없습니다. 그러기에 문학 작품 속엔 교육적인 요소도 많이 담겨 있습니다. 문학을 통해 관념적 지식이 아닌 실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교육적 지혜와 방법을 자연스럽게 터득할 수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실 예비 독자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고려대학교를 다니면서 고려대학교 캠퍼스에 스며 있는 고려대학교의 역사적 자산과 문화와 정신을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 책을 통해 고려대학교를 더 정확하고 깊이 있게 이해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대학이 점점 세속화하고 화려해지는 오늘날, 대학의 본질과 가치에 대해 성찰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 고형진은 1982년 고려대학교 국어교육과 학사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국어교육과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04년 9월 고려대학교에 취임한 이래로 한국어문교육연구소장, 사범대학장, 교육대학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또한 2001년 김달진 문학상을 수상하였고, 19년 6개월 간의 재임기간 동안 석탑강의상과 우수강의상을 수상했다. 학교 밖에서는 한국근대문학회 대표, 한국문학이론과 비평학회 회장, 한국시학회 회장 등 다양한 연구와 대외활동을 해왔다. 최근까지도 한국문학번역원 번역상 운영위원장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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