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스탈린
– 스탈린 테러와 러시아인들의 기억 -
철학과 남지선
김남섭 (2004). 우리 안의 스딸린: 스딸린 테러와 러시아인들의 기억., 러시아연구 (Russian Studies) 14.
우리는 스탈린과 스탈린 테러를 절대 악(惡)이라고 묘사한다. 그렇기에 스탈린과 스탈린 체제의 직간접적 피해자인 국민은, 반드시 스탈린과 그 체제에 반감을 가지고 있을 것이며, 압도적 규모로 대테러가 단행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자 김남섭은 「우리 안의 스탈린 – 스탈린 테러와 러시아인들의 기억」을 통해 “스탈린의 테러에 대한 사회적 망각”에 대해 서술하며 우리의 예상과는 반대로 소련인들이 체제에 동조했고, 거대한 저항 의식을 갖고 있지 않았으며, 테러의 규모도 과장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스탈린의 테러와 망각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글라스트노스트 시기 시작되었던 스탈린 테러와 스탈린주의에 대한 논의는 소련의 붕괴와 동시에 사라져버렸고, 심지어 스탈린은 무자비한 독재자와 같은 악(惡)의 이미지 아니라 자본주의 국가의 위협 속에서도 공업화를 이룩한 국가 영웅의 이미지로 형상화되고 있다. 인권 시민 단체인 “메모리알”이 추진한 테러 희생자를 위한 기념비 사업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희생자들에 대한 보상도 그들의 고통에 비해 충분하지 않았다. 국민들은 테러를 향한 가해자인 스탈린에 대해서도 적극적 관심이 거의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러시아인들에게 소련 시대의 테러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이자,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저자는 위와 같은 스탈린의 테러에 대한 공공적 관심의 부재를 몇 가지 측면에서 설명하고 있다. 첫 번째, 제2차 세계 대전, 기근 등과 현대사의 비극 속에서 예외 없이 직간접적으로 죽음을 겪었다. 따라서 러시아인들에게 테러로 인한 희생은 새롭거나 충격적인 것이 아니라 그저 또 다른 하나의 비극에 불과하다. 두 번째, 소련의 붕괴가 러시아 국민의 자존심에 치명상을 입혔기 때문에 테러에 대한 언급을 불편해하며 과거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자존심을 찾고자 한다. 세 번째,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비자발적으로 범죄에 참여하였기 때문에 개인적 이유, 국가의 명예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인해 테러에 대한 언급을 회피한다.
필자가 주목하고자 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러시아인들의 대다수가 스탈린 테러 및 스탈린 체제의 희생자들을 추모해야 하는 반인류적 비극으로 생각하고 있는가? 마치 홀로코스트처럼 무고한 인민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하고 강제 수용소로 내몬 국가적 폭력으로 인식하고 있는가? 혹은 인민의 적, 계급의 적, 파시스트들로부터 신생 사회주의 국가를 방어하기 위한 영웅적 투쟁으로 기억하는가?
저자는 스탈린 테러에 대한 무관심 자체가 테러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반증이라고 여겼으며, 이러한 인식이 테러가 행해지던 1930년대에 이미 광범위하게 형성되었으며, 억압적 스탈린 체제의 “유보적 수용”이 퍼져있었다고 분석한다. 저자는 스탈린 범죄에 대한 당대의 인식과 인식을 형성한 배경을 살펴보고, 스탈린 테러에 대한 무관심과 집단 망각을 설명하고자 한다.
스탈린 테러와 관련한 기존 연구 및 연구 경향
저자는 본격적 논의에 앞서 스탈린 테러의 기존 연구 및 연구 경향을 살펴본다. 첫 번째는 1950~70년대 전체주의 시각이다. 이 시각에 따르면 소련 체제가 자국의 국민들로부터 소련의 선전에 세뇌되어 범법 행위를 묵인하거나 소련 체제를 찬양하는 태도를 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테러 국가인 볼셰비키 국가가 폭력적으로 사회를 통제하는 데 성공하면서 절대적 국가 권력, 즉 전체주의 국가를 수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체주의 사회 속에서 개인의 주체적 자아는 말살되었으며, 일부 소련인들이 스탈린 체제의 본질을 깨달았다 하더라도 침묵하거나 사적 영역에서만 그 사실을 발설하였을 뿐 공적 영역에서는 표현할 수 없었다.
두 번째는 1980년대 자유주의 계열의 수정주의 시각이다. 수정주의 시각은 전체주의 시각과는 달리 “아래로부터의 관점”을 강조하며, 스탈린 체제를 조금 더 복합적으로 파악한다. 예를 들어, 대테러 기간 제거된 공백을 메운 ‘진급자들’은 1930~40년대 신계급의 핵심을 이루며 볼셰비키 체제의 새로운 시스템의 혜택을 전면적으로 받은 만큼 긍정적으로 소련 체제의 가치 실현을 위해 노력하였다. 이처럼 수정주의 시각은 대테러 시기 계층 상승과 관련된 “자기 이해(Self-interest)”를 바탕으로 체제의 공포 정치로 자의식이 말살된다기보다 능동적 주체로서 스탈린 테러 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였다고 본다.
마지막으로는 1990년대 형성되기 시작한 수정주의 이후 시각이다. 수정주의 이후 시각의 핵심 연구자로는 스티븐 코트킨과 요한 헬벡이 있다. 코트킨은 스탈린 체제가 국가 기구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일상 생활을 규제하는 지극히 평범한 것들에 의해서도 유지되었다고 주장한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노동자들은 작업장, 기술 습득 프로그램, 문맹 퇴치 강좌 등 일상 생활에서 볼셰비키의 의식을 접할 수 있었으며, 노동자들은 농민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고 새로운 소비에트 노동자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더 나아가 노동자와 그 가족까지도 새로운 정체성을 바탕으로 “볼셰비키처럼 말하기(Speaking Bolshevik)” 시작하고, 사회주의 문명에 능동적으로 통합되었다고 본다. 헬벡은 코트킨의 연구를 바탕으로 하여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모두에서 소련인들이 국가 권력의 공식 담론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주체성을 형성했음을 입증하였다. 헬벡의 연구 대상인 포들루부늬는 국가의 이데올로기를 적극 수용하면서 자신의 새로운 자아를 형성해나감은 물론이고 숙청과 테러도 국가의 합리적 행동이라 여긴다. 저자는 헬벡의 연구를 통해 스탈린 체제에 대한 포들루부늬의 태도는 보편적인 것이며, 테러의 위험 속에 테러를 합리적 행위라고 이해하지 않는 이상 생활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추론한다.
테러에 대한 일반적 인식
저자는 테러에 대한 일반적 인식을 알아보기 위해 로버트 서스턴의 연구를 참고한다. 서스턴의 연구에 따르면 1930년대 후반 소련인들의 국가 테러에 대한 반응은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1) 체제의 적을 사냥하기 위한 일환, (2) 사냥 자체는 정당하지만 실수, (3) 무고한 사람들에 대한 당국의 고의적 공격. 서스턴의 연구에 따르면 대부분 사람들이 (1), (2)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소련인들은 대숙청이 인민의 적을 겨냥한 국가의 정당한 행동으로 보았으며, 대기근도 적의 탓이라고 여겼다. 저자는 이를 바탕으로 1930년대 소련인들이 가진 불만은 체제나 테러에 대한 불만이 아니라 생활 수준의 하락에 대한 불만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테러의 규모
앞서 설명했듯 당대 소련인은 스탈린 테러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며, 볼셰비키 담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그렇다면 테러의 규모는 어떠했을까?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전후 강제 수용소 수감자 수를 최고 2000만 명으로 추산하였으나 학자들은 이보다는 낮은 숫자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한 굴라그 수감자 역시도 모두 정치범은 아니었으며 1930년대까지는 수감자의 상당수가 단순한 범죄자였다. 저자는 “과잉 사망자(excess deaths)”의 수를 비롯한 연구 결과를 제시하며 대부분의 추산치보다 적은 숫자의 사람이 테러의 희생자임을 밝히고 있다.
스탈린 테러의 신화
저자는 글 전반에 걸쳐 잘못 형성되어 있는 기존의 스탈린 담론을 부수고 새롭게 바로잡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첫 번째로, 대다수의 노동자와 소련인의 압도적 다수가 테러에 희생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자기 이해를 바탕으로 체제의 공식 담론을 적극 흡수하면서 내면화하고 있었음을 밝혔다. 두 번째로, 정치 사회적으로 주변화되어 있는 대다수의 국민들은 테러를 인민의 적으로부터 국가를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하고 필수적인 대응이라고 생각했으며, 테러의 정당성을 의심하지 않았음을 밝혔다. 마지막으로, 테러의 규모와 관련하여, 테러가 온 국민에게 무차별적으로 가해졌고 2차 세계 대전 이후 소련인 10~15명 중 한 명이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었다는 주장은 의심해볼만 하며 상대적으로 훨씬 적은 숫자가 테러에 희생되었을 것임을 밝혔다.
우리 사회의 기억과 망각
스탈린 체제와 그에 의해 자행된 테러를 떠올릴 때 그 규모와 세뇌된 국민과는 별개로, 그것은 반드시 기억되어야 하며 외면하기보다 오래도록 반추(反芻)하며 과오를 되짚어가는 것만그 시대의 피해자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보상이자, 미래 세대를 위한 바른 존중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스탈린 시대의 이야기를 차용하고 있지만, 사실은 소련인의 “사회적 망각”을 핵심으로 다루고 스탈린 시대를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스탈린 시대와 완전히 같지는 않더라도 우리 사회가 기억해야만 하는 “사회적 기억”이 존재한다. 저자의 글을 통해 한 가지 알 수 있는 점은 “사회적 기억”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만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위한 길이라는 것이다.
현재 안타깝게도 사회적 기억을 망각하고 스탈린 시대와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는 러시아에 치열한 논의를 통한, 올바른 사회적 기억이 형성되고 유지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