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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한 글 · 서평

『윤동주 연구』

『윤동주 연구』는 故 마광수 교수가 1983년에 발표한 윤동주에 관한 최초의 박사 논문으로서 윤동주 연구의 초석을 다진 논문으로 평가된다. 마광수 교수가 박사학위논문을 발표하기 전까지는, 윤동주의 시를 극단적인 저항시로 보는 태도와, 시인의 창작 체험과 의도를 무시하고 지나치게 형식주의적 입장에서 분석하려는 극단의 태도로 나뉘었다. 마 교수는 이러한 부분적 시각에서 탈피하여 작품의 문맥에 나타나 있는 상징적 표현 체계를 분석하고, 그와 관련된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여 윤동주 시의 본체를 파악하려고 했다.

마광수는 윤동주 시의 상징 체계를 고찰함에 있어 반드시 준열한 윤리의식을 내포한 저항 정신을 전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윤동주가 처절한 자기 분석을 통해 자아의 변증법적 발전을 시도했다고 평가하며, 윤동의 시에 나타나는 자학적·자기 부정적 이미지를 볼 때 그의 저항 대상은 외부가 아닌 내부, 즉 자기 자신에 있었다고 분석한다.

또한 윤동주는 무언가를 부르짖거나, 가르치거나, 과장적으로 흐느끼는 대신 스스로를 '발가벗김'으로써, 문학사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고 평가한다. 그러면서 그는 스스로에 진짜로 '솔직한' 시인이었으며, 윤동주의 저항은 자기 내면이나 본능적 자의식과의 끊임없는 투쟁이었으며, 진정한 '저항'이라고 확신한다.

마광수는 윤동주 시의 상징 표현의 유형을 다섯 가지로 구분했다. ①자연, ②시대 및 역사 상황, ③독특한 내면 공간을 형성한 소외와 갈등, ④이웃에 대한 연민과 사랑, ⑤종교적 표상으로서의 상징 표현이 그것이다.

그중에서도 두드러지는 것은, 마광수가 윤동주의 시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부끄러움'에 집중하여 그 심상을 총체적으로 파악했다는 점이다. 그에 따르면 윤동주 시 세계의 '부끄러움'은 양심을 인간의 본능으로 생각하는 이가 가지는 윤리적·신앙적 의미의 부끄러움, 또는 절대도덕·절대선에 대한 것이다.

그는 윤동주의 시를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청년의 자기 고백으로 격하시키는 이들에게 내면적 갈등과 방황의 표출은 '시인이 지닌 집요한 추구의 정신과 정신적 성장을 확인하는 증표'라고 주장하며, 이것이 시적 표현으로 승화됨으로써 창조적 저항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마광수에 따르면, 윤동주의 '부끄러움', 즉 '소외의식에 넘친 절망적 몸부림'은 시대상황 속에 식민지 지식인으로서 '창백하고 무기력한 자기 자신을 한탄하는 처절한 고백'이다. 이 부끄러움은 시인의 '치열한 윤리의식과 끊임없는 자성(自省)을 반증하는 것'이며, 자아분열에 가까운 집착적 의식구조는 '실존의 본질을 확인하려는 노력의 극한'인 것이다.
따라서 마광수는 시인이 깊은 애정과 이해로 인간을 긍정하면서도 실제로는 회의와 혐오로 자신을 부정한, 일종의 강박에 가까운 휴머니스트(Humanist)라고 말하며, 윤동주를 '저항 시인'이 아니라 순수한 '휴머니스트'라고 본다.

나는 문학은 문학일 뿐 그것이 문학 이상의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엄청난 힘'이란 문학이 혁명가나 사제의 역할까지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문학은 문학 나름대로의 '힘'을 어찌됐든 가지고 있다. 그 힘은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이요, 정신 중에서도 이성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감성이나 감각 또는 본능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학이 정치나 이데올로기처럼 단기간에 효력을 나타낼 수는 없다. 문학의 효력은 서서히 나타나 인간의 의식 자체를 변모시킨다. 여기서 말하는 '의식'이란 이성과 감성, 본능과 도덕이 합쳐서 이룩되는, 더욱 통제적인 직각의 양태를 가리킨다.

윤동주는 옥사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절대로 '총각 귀신'이 되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이상하게도 '용감한 투사'보다는 '유약하지만 솔직한 사람'을 한 시대의 상징적 희생물로 만드는 일이 많다. 윤동주는 바로 그런 역사의 희생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들은 일제 말 암흑기, 우리 문학사의 공백을 밤하늘의 별빛처럼 찬연히 채워주었다. (14~15쪽)

故 마광수 교수는 생전 『즐거운 사라』 필화 사건으로 낙인 찍힌 후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주장한 '야한 정신'은 "정신보다는 육체에, 과거보다는 미래에, 국수주의보다는 세계적인 보편성에, 집단보다는 개인에, 관념보다는 감상에, 명분보다는 실리에, 교조주의보다는 다원주의에 가치를 두는 세계관'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성경 구절을 두고, 진리는 오히려 폭력, 권력, 도그마(Dogma)가 되기 쉽다며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고 말해야 한다고 새롭게 해석했던 마광수 교수. 세상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개인의 온전한 자유를 부르짖었던 그를 더럽다고 비웃었지만, 사실 그는 윤동주 시인과 같은 순수한 영혼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을까? 끝내 사회와 화해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지만, 나는 마광수 교수를 진정한 자유주의자이자 휴머니스트라고 믿으며, 그렇게 기억하고 싶다.

참고문헌
송희복. (2017). 윤동주의 삶과 시를 보는 관점의 확대와 심화. 국제언어문학,(36), 355-385.
유성호. (2018, 2). 사랑과 낭만의 ‘시’를 향한 열정과 직관과 논리 - 마광수 선생을 생각하며. 계간 시작, 17(1), 202-214.
지승호. (2005, 2). 인터뷰: 마광수 교수전체보다 개인, 질서보다 자유이다. 인물과사상,, 66-101.

마광수 교수, 시인, 소설가, 화가

  • 마광수는 1951년 서울에서 태어나 대광중고등학교를 거쳐 연세대학교 국문학과 및 동대학원을 나와 '윤동주연구'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76년 26세에 대학강의를 시작으로 28세에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를 지낸 후, 1984년부터 연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92년 10월 '즐거운 사라'필화사건으로 전격 구속되어 두 달 동안 수감생활을 한 후 95년 최종심에서 유죄가 확정되어 연세대에서 해직되고 98년 복직됐으나 2000년 재임용탈락의 우여곡절 끝에 연세대학교 교수로 있다가 2016년 8월 정년퇴임했다. 2017년 9월 5일 타계했다. 1977년 『현대문학』에 시 「배꼽에」, 「망나니의 노래」, 「고구려」 등 6편의 시가 추천되어 시단에 데뷔, 1989년 『문학사상』에 장편소설 「권태」를 발표하여 소설가로도 데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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