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소연, 「중동 석유의 정치적 역할에 대한 재고찰: 중동과 미국 관계를 중심으로」, 『한국이슬람학회 논총』 35권 1호, 20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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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 본 연구는 냉전 시대부터 현재까지 미국 외교 정책을 형성하는 데 있어 중동 석유가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 중점적으로 고찰하였다. 특히, 에너지 안보가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과 같은 중동의 주요 산유국들과 우호적 관계 구축을 비롯하여 지정학적 전략 구축에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지 살펴보았다. 자원 저주 이론과 지대 추구 이론 등을 기반으로 석유 자원의 정치 및 경제 역학 관계를 분석하여 석유 자원이 중동 국내외 정치 구조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중점적으로 분석하였다. 1970년대의 오일 쇼크, 걸프전, 9·11 테러 이후의 상황 등 주요 역사적 사건들을 살펴봄으로써 중동 석유 자원 통제라는 명분이 미국의 대중동 정책 구축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중동 석유 자원의 정치적 의미에 대해 재고찰할 수 있었다. |
I. 서론
냉전과 석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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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루먼 대통령의 석유 거부 정책(oil denial policy)
- “소련이 만약 침공한다면 최후의 수단으로 석유 관련 시설 및 정유 시설은 불 타게 될 것이며 소련이 석유 자원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유전은 폐쇄될 것이다.”
- 냉전 시대 동안 미국은 자국의 적대 세력이 중 동 페르시아 만에 위치한 석유 자원을 장악하는 것을 막고 서방 국가들을 위해 안정적인 석유를 공급하는 것이 미국 정부의 핵심적인 목표 중 하나
- 다시 말해, 적대적인 정부의 손에 중동 석유가 넘어 가는 것을 막겠다
- 지미 카터(Jimmy Carter) 대통령
- 1980년 1월 연설에서 미국은 군사 적인 힘을 포함한 모든 방법과 수단을 동원하여 걸프 지역의 주요 자산을 보호 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 이는 1979년 소련의 아프간 침공에 대응한 것. 소련이 중동 내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함.
- 중동의 석유 자원에 대한 통제력 확보는 미국의 대중동 정책의 핵심.
- 특히, 냉전 시기 동안 중동 내 석유 자원을 확보하려는 소련의 시도를 억제하는 것이 쟁점.
미국과 2차 세계 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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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은 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석유가 전략적 자원으로서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음
- 2차 세계 대전 동안 석유는 국가 전략의 주요한 요소로 부상(Yergin, 2008).
- 필연적으로 미국은 해외 석유 공급망 확대에 주력
-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갈 무렵 미국 내 증가하는 석유 수요와 유럽의 에너지 위기에 대응하는 것이 미 정부에게 중요한 사안이었다(Yergin, 2008, 169).
- 동시에 소련의 유럽 내 영향력을 억제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추진된 마샬 플랜(Marshal Plan, 유럽 재건을 위한 회복 프로그램)에서 중동의 석유 자원을 확보하는 것이 핵심.
- 즉, 유럽에 대한 원조 제공, 미국 내 피크오일에 대한 대비, 소련의 영향력 억제가 미국 정부의 중동 석유 접근의 핵심이었음
2010년대 이후 미국의 셰일 개발 붐에 따른 셰일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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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동의 전략적 중요성은 점차 줄어들고 있음
- 이러한 관점에서 중동과 미국의 관계에 있 어서 석유가 어떠한 역할을 해왔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음
Ⅱ. 이론적 분석의 틀:
석유 자원을 둘러싼 정치·경제 간 상호 역학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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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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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유의 중요성
- 가장 많이 소비되는 주요 에너지원 중 하나
- 석유 및 석유제품: 일상 생활을 비롯하여 산업 발전의 주요 원자재로 사용됨, 인류 발전에 가장 기본적인 에너지원
- 석유의 한계
- 석유의 유한성, 편재성이라는 특성으로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은 국가의 사활이 걸린 사안이 됨
- 석유를 중심으로 주요 에너지원을 확보해야 인류의 일상 생활 및 산업이 움직일 수 있음
-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는 것은 국가의 핵심 전략 중 하나
- 에너지 안보와 중동
- 적절한 가격으로 에너지를 차질 없이 공급받는 것
- 따라서, 세계 석유 매장량의 절반 가량을 보유하고 있는 중동은 주요 에너지 공급처로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
- 중동의 막대한 석유 자원: 내부적으로 주요 경제 소득원, 대외적으로도 외교 관계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
풍부한 천연자원의 존재는 축복인가 저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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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긍정적 요인: 경제의 주요 소득원
- 부정적 요인: 다양한 정치적 갈등을 낳음
- 자원의 저주 이론(Resource Curse Theory)
- 풍부한 자원을 보유한 국가일수록 정치 발전이 더뎌질 가능성이 높다(Cuaresma et al., 2011; Wright et al., 2015).
- 석유 판매 수익을 통한 부의 창출은 권위주의 정권이 지배 엘리트 계층을 포섭하고 일반 시민들에 대한 광대한 복지 제공을 통해서 정권에 대한 불만 을 완화하고 장기 집권을 가능하게 한다(Wright et al., 2015)
- 지대추구 이론
- 왜 풍부한 천연자원을 가진 나라가 권위주의 정권이 될 가능성이 높은지 설명함
- 석유 부국은 외국으로부터 대규모 외부 석유 지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대중에게 세금을 부과할 필요가 없다(Mahdavi, 1970).
- 따라서 정치적 책임성을 묻지 않는 대신 세금 부과 없이 높은 경제적 인센티브를 국민들에 제공할 수 있게 때문에 권위주의 정권이 유지될 가능성이 더 크다.
- 또한, 국민들에 세금을 부과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국민들이 정부에 정치적 책임을 요구하지 않아도 대중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Lisa, 1987).
- 루시아니(Luciani, 1990)가 "세금 없이는 대표성도 없다"라는 논쟁을 통해 민주주의에서 세금의 중요성을 강조한 만큼 국민들에게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 국가에서는 민주주의 제도가 발전하기 어렵다.
산유국의 정치 안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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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에너지 위기: 1970년대 1, 2차 오일쇼크, 산유국의 석유 산업 국유화 흐름
- 석유를 보유한 국가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산유국의 정치적 안정성의 중요성이 부각됨
- 따라서 오히려 권위주의 정권이 유지되더라도 우선적으로 산유국의 정치적 안정 유지가 선호되는 현상이 등장함
- 외부 세력들이 억압적인 권위주의 정권의 정치적 행보를 묵인한 채 산유국과 우호적 관계 유지를 통해 안정적 석유 공급에 더 우선순위를 두면서 산유국의 권위주의적 행보가 심화되는 원인이 되었다고 볼 수도 있음
- 권위주의적 중동 산유국과 서방 민주주의 국가들 간 우호적 관계
- 특히, 냉전 종식 이후 서구와 연계성(linkage)이 비민주적인 행위에 대한 반감을 증가시켜 권위주의 정권의 민주화를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는 연구가 등장하였다(Levistky and Way, 2002).
- 그러나 서구와 연계된 국가들이 민주주의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은 권위주의 산유국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 오히려 산유국 권위주의 국가들 은 석유 거래라는 접점을 통해 미국을 포함한 서방 및 비서방 민주주의 국가와 높은 연계성을 갖게 되었다.
- 하지만 이러한 민주주의 국가와 높은 연계성에도 불구하고 산유국이라는 이유로 민주화에 대한 외부 압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 냉전의 종말 이후 민주주의 국가들(미국 및 유럽 국가)은 국제질서에서 지배 세력이 되었음
- 이와 같은 세계 정치 구조에서 민주주의 국가들이 권위주의 산유국으로부터의 석유 공급에 대한 높은 의존성은 산유국 권위주의 통치자들이 민주화를 요구하는 국제적 압력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안전망이 되었다.
- 특히, 미국 주도 단극 체제로의 국제 질서 속 변화 속에서 세계 최대 패권국인 미국과 의 강력한 연계는 권위주의 국가들이 민주화에 대한 국제적 압력을 피할 수 있게 하였다(Ambrosio, 2009; Bader, 2015; Cameron & Orenstein, 2012).
- 실제로 많은 걸프 산유국 왕정 국가들은 정치적 억압과 인권 침해의 강도가 높은 국가들이다. 하지만 이들 국가의 정치적 억압이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석유 공급에 있어서 차지하는 이들 국가의 중요성 때문에 묵인되고 있다.
- Levitsky와 Way는 광범위한 언론, 정부 간 조직, 그리고 NGO에 대한 견제와 같은 권위주의 정권의 정치적 탄압은 오히려 서구 국가들에 의해 노출될 가능 성이 높다고 강조했다(Levitsky & Way, 2002).
- 하지만 오히려 국제기구나 언 론은 산유국 권위주의 정권의 억압을 묵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아랍의 봄 당시, 이집트와 튀니지와 같은 여러 국가에서 권위주의 지도자들이 축출되었으나, 걸프 산유국 왕정 국가들은 군대와 경찰력을 동원하여 시위를 억제하는 외국의 지원 덕분에 생존할 수 있었다(Girod et al., 2018).
- 강력한 서구 국가들 이 시위를 진압하는 데 도움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권위주의 산유국 지도자들은 세계 강대국으로부터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낮다는 점을 지도자들 스스로 인식하고 있었다(Girod et al., 2018).
Ⅲ. 냉전 시대 중동 석유의 중요성 부상: 1940년대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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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 대전 이후 석유의 중요성 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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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상황
- 1919년~1923년 사이 미국 내에서 차량 사용량이 14배나 증가(Yergin, 2008, 178).
- 이에 따라, 가솔린 수요도 함께 증가하였다.
- 1915년 지질 조사: 15-20년 내에 석유 부족 사태가 도달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됨(Venn, 2012)
- 윌슨 대통령: 국내 및 국외에서 필요한 석유 공급을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이 더 이상 없는 것 같아 보이며 미국인들의 자동차에 대한 사랑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고 경고함(Yergin, 2008)
- 해외에서의 석유 자원 개발 필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함
- 2차 세계 대전: 석유가 주요 연로로 자리 잡게 된 시점
- 군대는: 석유를 사용하여 군사 차량, 탱크 가동
- 1945년 이후 미국: 대중교통 수단 감소, 개인 차량 사용량 ㅈ으가
- 서유럽, 일본 등 : 석탄에서 석유로 에너지 전환 시작(Painter, 2012).
- 미국 국내 경재 비롯해 전후 동맹 국가들의 복구 과정에 있어서 중요한 자원
- 마셜 플랜의 실현을 위해서 석유 자원은 필수요소
- 마셜 플랜: 전후 냉전 시기 미국의 외교 정책 중 핵심 전략
- 서유럽 국가들이 직면한 위기 중 하나: 에너지 위기
- 석탄의 효율성 감소하면서 산업 동력이 석탄에서 석유 자원으로 대체되고 있었음
- 1948년 마샬 플랜 원조의 20퍼센트 가량이 석유와 관련 제품의 수입이기도 하였다(Yergin, 2008)
- 1948~1951년 사이 마샬 플랜은 원유 및 정제 제품 구입에 12억 달러 가량의 지원을 제공하였다 (Painter, 2009, 164).
- 석유 자원: 미국에서 생산되지 않아도 미국 석유 회사에 의해 운영되고 생산되어 공급될 수 있다는 특징이 있음
- 경제협력법 112조: 미국 국내 석유 자원 고갈 방지를 위해 해외에서 석유 자원 확보할 필요성 고조됨
- 중동으로부터의 석유 자원 확보가 미국 외교 전략의 핵심 중 하나였음(Painter, 2009, 165).
- 전 국무부 차관 로버트 A. 러벳(Robert A. Lovett)은 “중동 석유의 손실은 미국으로 하여금 유 럽에 석유를 공급하기 위해 국내 석유 소비를 대폭 줄이거나, 심각한 어려움, 혹은 마셜 플랜의 실패라는 선택을 강요받게 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등 중동 석 유 자원 확보의 필요성을 피력하였다(Painter, 2009, 168)
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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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군사 및 경제 강대국, 석유 통제권 확보하게 되면 미국 국내 에너지 소비 충족과 동시에 서유럽 경제 재권 지원을 통해 소련의 영향력 확대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음
- 공산주의(진영 국가들)에게 중동 석유 자원의 통제권을 수호하는 것이 중요했음
- 미국은 이전에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유럽 국가들이 제국주의적 야망을 가지고 중동 국가들에게 접근했던 것과는 다른 방법을 택하였다(Jones, 2012)
- 산유국과의 우호적 관계, 적세적 세력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임
- 중동에서 안정적인 석유 공급을 보장받고 친미 정권을 보호하며 국제석유 시장에서 안정적인 석유 공급과 가격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Jones, 2012).
- 1945년 루즈벨트&사우디 압둘 아 지즈 이븐 사우드 국왕: USS 퀸시호 만남
- 미국의 안보 보장을 대가로 낮은 가격의 사우디 원유의 안정적인 공급을 약속한 사우디와 미국의 동맹의 첫 시작이었다(Lons, 2024).
-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중요성은 1960년대 후반 영국이 걸프 지역에서 철수하면서 커지기 시작함
- 미국이 우려했던 것은 영국의 공백을 소련 이 채우고 미국의 이익을 위협할 수 있다는 가능성
- 닉슨 대통령: 1969년 자유가 위협받는 국가들에 군사 및 경제적 지원을 제공하는 대신 그 국가들 이 자신의 방위를 스스로 책임지도록 한다는 내용의 닉슨 독트린을 발표함
- 이러한 닉슨 독트린은 걸프 지역에도 적용이 되었다(Bell, 1990).
- 미국은 새로 운 안보 파트너인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안보 유지 및 강화를 위해 군사 지원을 제공하였다. 닉슨 정부는 이란의 군사력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재정적 부를 결합하면 역내에서 미국의 우방국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 미국에 있어서 이란은 소련의 영향력을 저지하기 위한 핵심 국가
- 1941년: 소련은 이란 석유 공급을 통제하고자 이란을 점령(Cooper, 2011)
- 또한, 소련은 이란의 석유 채굴권을 장악하고자 하면서 북부 아제르바이잔 지역을 점령하여 석유 자원을 통제하려 함(Cooper, 2011).
- 당시 이란의 샤 왕정은 소련에 대한 신뢰가 없었으며 이란 의회도 소련에 석유 채 굴권을 제공하는 것을 거부함
- 미국 정부: 소련의 후원을 받는 이란 공산 당(투데당)을 경계하면서 이란을 소련 영향권으로부터 방어하고자 함(Pelletiere, 2004).
- 특히, 세계 석유 주요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소련의 부 대가 점령하는 시나리오는 미국에 가장 큰 위협으로 다가왔다.
- 소련에 대한 견 제와 함께 미 정부는 석유 공급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이란 내부 세력에 대해서 도 강력한 압박을 감행하였다.
- 1953년 무함마드 모사데크 총리가 이란 석유 국 유화를 선포하자 미국 CIA의 협력과 함께 모사데크 총리를 전복시킨 것이다.
- 특히, 모사데크가 이란 공산당인 투데당과 소련의 정치적 연대를 강화하고 이로 써 소련의 이란 유전 장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증폭되었다.
- 이에 따라 미국 정부는 모사데크를 축출하기 위한 쿠데타를 기획하여 친미 성향의 국왕 모하마드 레자 샤 팔라비가 다시 왕위에 오르게 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Jones, 2012)
미국과 이란 왕정의 관계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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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은 이란에 대한 재정 지원을 확대하였으며 상호 안보 및 기술 지원 프로그램 자금을 제공함
- 새로운 이란 정권은 왕권 유지, 군대 및 정권에 충성도가 높은 인물들에 대한 재정적 지원
- 친미 왕정 등장: 미국은 이란의 석유에 대한 영국의 통제를 견제
- 미국은 앵글로 이란 석유회사의 일부 지분을 확보(Luciani, 2009).
- 또한, 샤 왕정은 이란의 석유 수익으로부터 확보하는 자금을 미국 군사 및 정보 서비스를 활용에 이용하겠다고 약속(Pelletiere, 2004).
- 닉슨 집권 시기
- 닉슨 행정부: 이란에 대한 무기 판매 해제, 이라크 반란 진압을 위한 CIA 지원군 제공 등 왕정의 요구사항 충족
- 미국: 이란의 정치 부패 묵인, 이란 왕정과의 관계 유지를 위해 안정적 석유 공급망 확보를 우선시함
- 1977년 국제앰네스티 사무총장은 이란이 세계에서 가장 사형 집행률이 높은 나라이며 민간 법원 시스템이 없으며 상상을 넘어서는 고문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며 이란의 인권 상황에 대한 강도 높은 비난(Chomsky and Herman, 1979).
- 하지만 미국 정부는 이러한 이란 샤 왕정의 부패와 부정을 묵인한 채 이란 왕정 유지를 후원함
- 한편, 미국은 영국보다 뒤늦게 걸프 지역 석유 개발에 진출함
- 걸프 지역에서 석유 개발권을 가장 최초로 획득한 미국 석유회사는 스탠다드 오일 캘리포니아(Standard Oil California)로 1928년 바레인에서 석유 개발을 시작함(Vitalis, 2006)
- 이후 캘리포니아 아라비아 스탠다드 오일 컴퍼니(California Arabian Standard Oil Company, CASOC)로 이름을 변경하고 1938년 사우디에 서 첫 원유 발견에 성공하였다(Pelletiere, 2004)
- 그리고 1944년 회사 이름을 아람코(Arabian American Oil Company)로 변경하였다(Pelletiere, 2004).
- 사우디에게 미국은 석유 개발, 국가 안보 유지를 위한 중요한 파트너
- 공산주의 세력은 이집트, 예멘과 같은 주변국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었음
- 공산주의는 종교적 신념에 대한 적대감을 기반으로 함.
- 이슬람 수호자 역할을 자처하는 사우디에 있어서 공산주의는 가장 큰 위협(Bronson, 2008, 26)
- 따라서 종교성이 강했던 사우디는 공산주의를 배척하고 미국에 더욱 편향됨
- 미국에게도 사우디는 경제/지정학적으로 중요한 국가
- 아람코: 사우디아라비아 석유 생산량을 1947년 8,980만 배럴에서 1951년 2억 7,790만 배럴로 증가시키는데 기여하였다(Painter, 2009, 165).
- 또한, 메카의 수호자라는 종교적 입지를 지닌 이븐 사우드 국왕은 이집트 대통과 같은 아랍 민족주의 지도자에 대항할 수 있는 인물로 평가됨(Hill and Telhami, 2002).
- 지정학적으로 사우디는 홍해와 인도 및 극동 지역으로 향하는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도 전략적인 중요성을 높이는 요인이었음(Bronson, 2008, 24).
- 사우디의 도시 다흐란(Dhahran): 1955년 체결한 바그다드 조약의 안보 전략에 있어 후방 지역으로 잠재적 가치 를 지니고 있었음
- 1980년대 다흐란: 아프가니스탄으로 향하는 미국 무기 중개 허브 역할(Bronson, 2008, 24).
- 미국군이 사우디 영공을 통과하고 아라비아만에 물자를 사전 배치할 수 있는 권한을 보유하는 것은 중동 지역을 통제하는 데 있어서 핵심.
- 즉, 석유가 미국과 사우 디를 연결시키는 가장 중요한 고리였지만 경제, 정치, 군사 분야에서도 미국과 사우디는 다양한 이익을 공유하고 있었음.
- 또한, 아람코는 석유 개발에만 그치지 않고 사우디의 현대화에 기여하였으며 왕권 유지에도 큰 공을 세웠음(Lippman, 2008, 6).
Ⅳ. 석유의 무기화 시대: 1970년대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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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프 지역 석유 개발의 주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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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래, 미국/유럽 석유 회사들이 주도했음
- 1960년, 석유 수출기구 설립: 산유국에게 주도권이 넘어가기 시작함
- 초기: 주요 해외 석유 회사들이 석유 생산 및 가격 책정에 대한 통제권 행사
- 해외 석유사들의 독점적 지배에 대응: 산유국들, 석유수출기구(OPEC) 설립 합의
- OPEC 영향력은 확대됨, 1973년 오일 쇼크 발생에 가장 큰 역할
- 오일 쇼크: 미국 정부가 중동 산유국의 중요성을 재확인하는 계기
- OPEC은 1960년 수립되었으나 오일 쇼크 이전까지는 주목을 받지 못함
- 1973년 석유 금수 조치로 OPEC의 영향력 주목받기 시작
오일 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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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유 금수 조치
- 1973년 아랍-이스라엘 전쟁: 미국의 이스라엘 지원을 계기로 금수 조치 결정, 석유의 무기화를 동의하지 않았던 사우디도 동참함
- ① 감산을 시행 하고 이후 매달 추가적으로 5프로씩 감산을 추진하는 점진적인 생산 제한(Yergin, 2008, 595)
- ② 석유 수출을 전면 금지
- 처음에는 미국과 네덜란드를 시작으로 이후 포르투갈, 남아프리카 공화국, 로디지아로 확대(Yergin, 2008, 595)
- 중동 석유 공급 중단이 세계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사실 증명
- 이란, 베네수엘 라 및 기타 비 아랍 OPEC 회원국들이 동참하지 않았음에도 유가는 네 배 이상 올랐음
- 대부분 석유 수입국은 경제적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Venn, 2002)
- 미국 경제 유지를 위해서 연료 사용량을 18% 줄여야 할 것이라는 분 석이 제기되었다(Cooper, 2011, 134).
- 또한, 경제학자들은 금수 조치가 지속될 경우 대공황 이후 유례없는 높은 실업률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Cooper, 2011, 134).
- 서유럽 국가들에서는 인플레이션율이 두 배 이상 상승하 기도 하였다(Cooper, 2011, 134).
- 미국의 대응
- 국무장관(Kissinger)의 셔틀 외교 등장
- 당시 사우디 파이살 국왕: 미국이 아랍-이스라엘 분쟁 해결에 진지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한 금수 조치를 해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Bronson, 2008, 120).
- 키신저는 카이로, 예루살렘, 제다를 정기적으로 방문하였으며 사우디의 경우 11차례 방문한 것으 로 알려졌다(Bronson, 2008, 120).
- 그는 이스라엘-이집트, 이스라엘-시리아 간 분쟁을 해결하고자 노력했다
- 1974년 3월 닉슨 대통령: 파이살 국왕에게 금수 조치를 종결하고 미국-사우디 관계의 새로운 장을 여는 조건으로 석유 수출 재개, 생산 증대, 가격 안정 유지를 조건으로 장기 군사 및 경제 동맹 체결을 약속(Bronson, 2008, 157)
- 1974년 3월 18일: 석유 금수 조치는 해제(Bronson, 2008)
- 의의
- 석유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중요성과 아랍 산유국과 강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 석유: 단순한 천연 자원이 아닌 정치적 노력을 통해 확보해야만 하는 전략적 자원
- 미국과 걸프 산유국 간의 새로운 국면을 여는 전환점
오일 쇼크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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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걸프 산유국: 유가 상승으로 이익
- 수익 재투자할 필요성: 석유 자금 서구에 재투자, 서구 신제품 구매, 미국산 무기 구매
- 1970년대 미국: 이란에 220억 달러 이상의 무기 판매, 이란 무기 구매량의 4분의 3에 해당하는 것(Jones, 2012)
- 사우디아라비아: 미국 무기 구매에 35억 달러 지출(Jones, 2012)
- 미국-사우디아라비아 공동 경제 위원회(US-Saudi Arabian Joint Economic Commission, JECOR) 설립
- 사우디가 석유 판매를 통해 얻은 달러를 미국에 투자하는 공식 경로를 만들었다(Jones, 2012).
- 이 위원회는 사우디의 오일 머니를 산업화, 무역, 인력 훈련, 농업, 과학 및 기술 프로그램에 투자하는 것을 촉진하고자 했다(Jones, 2012).
- 오일 쇼크는 미국과 중동 산유국 왕정 관계의 새로운 시작을 의미
- 산유국으로부터 안정적 석유 공급 보장, 산유국들이 확보한 오일 머니가 미국 시장에 재투자되면서 상호적 경제적 이익이 확대되었음을 보여줌
- 사우디아라비아: 세계 석유 시장에 막대한 영향력 행사
- 스윙 프로듀서(Swing Producer): 세계 시장에서 공식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생산량을 조정할 능력을 보유한 생산자
- 공급량을 늘릴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잉여 생산 능력(spare production capacity)로 30일 내에 가동할 수 있고 최소 90일 이상 유지할 수 있는 생산량을 의미함
- 미 에너지정보청(US Energy Information Agency)에 따르면 사우디는 평균 하루 150만-200만 배럴 이상의 잉여 생산 능력을 유지 해왔음
고유가에 대한 두 나라의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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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우디: 고유가에 대한 부정적 입장
- 고유가로 인한 물가 상승은 서유럽 경제 파괴하여 소련을 경제하려는 미국의 노력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 판단(Yergin, 2008, 122)
- 하지만 OPEC 회원국인 이란은 오일 쇼크를 통해 얻은 막대한 석유 수익이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추가적인 가격 인상을 꾀했음
- 반면, 사우디는 고유가가 유지될 경우 사우디의 국제적인 평판 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판단하였다(Yergin, 2008, 122)
- 즉 석유 소비자들의 신뢰를 잃고 대체 에너지 수요의 증가로 이어져 장기적 관점에서는 산유국 경제에 타격을 줄 것이라는 입장
Ⅴ. 석유 공급 안정에 새로운 위협 등장: 1990년대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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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과 산유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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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 목표: 소련의 중동 석유에 대한 통제 확대를 견제
- 사우디아라비아, 이란과의 우호적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안정적으로 석유를 공급받고 석유시장의 안정을 꾀하고자 했음
- 미국: 두 왕정 국가의 권위주의적 행보를 묵인, 서로 상이한 정치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는 특이점에도 불구하고 우방국으로 상호 관계를 유지했음
- 1979년 이란의 이슬람 혁명: 미국의 우방국 양대 산맥이 무너지고 사우디가 중동 내 미국의 최대 우호국으로 부상하는 계기
- 1979년: 소련 아프가니스탄 침공 → 중동 정세 불안정
제2차 오일 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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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9년 이란의 이슬람 혁명: 석유 공급이 불안정해지면서 오일 쇼크 발생
- 1978년 이란 유전에서 파업 → 1979년 1월 원유 생산량이 일일 480만 배럴 가량 감소함
- 이는 당시 석유 생산량의 7%에 달하는 수준(Gross, 2019)
- 1979년 중반 배럴당 13달러였던 유가 - 1980년 중반에는 배럴당 34달러로 상승(Gross, 2019)
- 사우디: 유가 상승을 억제하려고 했음
- 공식 석유 가격을 낮추는 입장을 유지함
- 이란: 미국에게 적대적인 국가로 전환
- 사우디: 중동 내 미국의 최대 우방 국가, 석유 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로 자리매김
석유 개발의 필요성 부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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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차 오일 쇼크
- 대체 자원 개발의 필요성
- 북해, 알래스카와 같은 새로운 비 OPEC 회원국 지역에서의 석유 개발 필요성
- 미국: 걸프 지역의 중요성 재확인
- 카터 독트린 선언: 걸프 지역을 장악하려는 외부 세력의 시도는 미국의 핵심 이익을 공격하는 것으로 간주, 이에 해당하는 공격은 군사력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격퇴할 것
이란 이슬람 혁명 이후 중동 정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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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 이라크 사담 후세인의 이란 침공
- 1980~1988년: 이란-이라크 전쟁
-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3국: 중립지대에서 생산되는 원유를 차관 형식으로 이라크에게 제공하여 이라크 지원함(최영철, 2013)
- 쿠웨이트시: 이라크가 아라비아해로 나갈 수 있는 주요 항구 역할
- 8년간 지속된 전쟁은 이라크에게 많은 외채를 떠넘김(장성일, 2008)
- 이라크: 이웃 걸프 국가들이 차관 형태로 남아있는 외채 탕감에 인색하다는 부정적 인식 갖기 시작
- 이라크: 석유 수출 쿼터 감축을 통한 유가 인상으로 쿠웨이트에 대한 부채 상환 시도
- BUT 쿠웨이트: 석유 생산량 증가 - 유가 하락
- 루마일라(Rumaila) 유전: 이라크-쿠웨이트 국경에 위치
- 이라크: 쿠웨이트가 이라크쪽 원유를 탈취하여 채굴했다고 주장함
- 이러한 이유를 근거로 1990년 쿠웨이트 침공함
- 이라크-쿠웨이트 전쟁
- 사담 후세인의 쿠웨이트 침공: 베를린 장벽 붕괴, 냉전 종결되는 새로운 국제 질서 분위기 속 이라크에 유리한 정치적 구도를 만들고자 했다는 분석도 존재함
- 탈냉전 시기 국제질서 재편: 미국은 걸프 지역 석유 통제를 강화할 것이라고 사담 후세인 정부가 평가했다는 분석 제기
- 이라크: 쿠웨이트가 유가하락을 꾀하는 것 같아 미국, 영국 등의 서방 강대국이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한 음모라는 믿음(최영철, 2013)
- 미국 정부로 하여금 석유 통제권이 후세인에게 넘어가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발생하는 것을 우선시 여기게 만들었음
- 1981년: 이스라엘, 바그다드 외곽 오시라크 원자로 폭격
- 서방 국가에 대한 사담 후세인의 의심 증가
- 조지 부시 대통령의 우려 표명
-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집어 삼키도록 허용하면 경제력과 군사력까지 갖추게 될 것이며 이웃 국가들, 즉 전 세계 석유 매장량의 가장 많은 부분을 통제하고 있는 이웃 국가들을 위협하고 강압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중요한 자원이 무자비한 자에 의해 통제되는 것을 용인할 수 없다”
- 미국: 석유 통제 상실에 대한 우려, 이라크-쿠웨이트 전 개입 결정
- 1991년 1월 12일: 이라크에 대한 군사력 사용 승인안 가결
- 1월 17일: 사막의 폭풍 작전
- 이라크 공중 폭격
- 3월 2일: UN 안보리 휴전 조건을 결의한 686호 통과
- 이라크: 경제 제재 및 전쟁 피해에 대한 배상급 지불 등을 포함한 결의안 조항 수용
- 1차 걸프전 일단락
- 2001년 9월 11일: 알카에다에 의한 9.11 테러
- 1993년 출범한 클린턴 행정부: 봉쇄에 집중, 군사적 대응 자제
- 부시 행정부: 이라크 후세인 정권은 걸프 지역 안보를 위협하는 최대 요인, 이라크 문제를 외교/안보 분야에서 우선순위에 두워야 함(최영철, 2013)
- 미국: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단극 질서가 위협에 처했다고 판단, 이라크가 이러한 질서를 위협하는 상징적 요인으로 주목됨(Stieb, 2003)
- 대중동 정책 마련에 있어 우선시 되었던 석유도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었음
- 이라크의 막대한 석유 자원이 악의 축에 의해 통제됨을 우려(Steib, 2003)
- 부시 대통령: 취임 2주 만에 국가 에너지 정책 개발 그룹(National Energy Policy Development Group)을 설립
- 2007년 이라크 주둔 미 중부사령부 및 군사작전 책임자였던 존 아비자이드 장군: "2003년 이라크전은 물론 석유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부인할 수 없다"
-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도 이에 동의,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 "이라크 전쟁은 주로 석유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인정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불편하다는 사실이 슬프다"
- 결론: 이라크 전쟁의 요인 중 하나는 석유 자원 통제권 확보였음(Arikat, 2015).
Ⅵ. 결론: 미국의 셰일 혁명과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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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의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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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유 자원: 중동 지역의 국내외 정치 및 경제 구조에 상당한 영향, 국제 관계 구조 형성에도 주요 요인으로 작용
중동 석유에 대한 미국의 관심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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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동 석유 자원 통제: 미국 정부의 대중동 정책의 핵심 기틀
- 시대별로 중동의 석유 자원 통제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요인에 대한 미국 정부의 견제 노력
- 냉전 시대, 냉전 종식 이후 시대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입장: 안정적 석유 확보
- 2010년 이후 미국의 대중동 정책 변화
- 이라크 전쟁을 교훈 삼아 중동에 대한 관여 축소
- 오바마 정부: 2012년 인도-태평양으로의 회귀 전략 발표, 중동에 대한 에너지를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옮겨 중국의 부상에 대응하겠다는 속내 드러냄(Lons, 2024)
- 셰일 혁명: 미국이 주요 산유국으로 등장하게 만듦, 중동의 석유 자원이 차지하는 입지가 더 이상 예전만큼 중요하지 않음
- 미국의 타이트 오일, 셰일가스, 캐나다 오일 샌드 등의 비 전통적 석유 및 가스 생산의 급증은 북미를 에너지 자급 지역으로 부상하게 함
- 이와 같은 변화 속에서 미국은 2013년 6,870억 입방미터의 천연가스를 생산하며 러시아를 제치고 세계 최대 생산국으로 변모하였다(IEA 홈페이지).
- 즉, 셰일 혁명은 미국에게 안정적이고 신뢰할 수 있으며 경제적인 에너지 공급 원을 제공하여 에너지 위기에 대한 취약성을 낮췄음(Westphal et al., 2014).
- 2019년 트럼프 대통령: 이란이 사우디 인프라 공격한 이후에도 개입을 거부했음(Lons, 2024)
- 중국과 러시아의 부상 및 이에 따른 세계 질서의 다극화 변화도 중동을 둘러싼 국제 관계의 변화에 영향
- 중국이 중동 석유의 주유 수입국으로 변모
- 중국: 중동의 주요 외부 행위자, 기후 변화의 위기 속에서도 중국의 석유 수요는 증가 추세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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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동의 석유 자원이 미국 대중동 정책 마련에 어떠한 역할을 해왔는지 역사적 흐름을 고찰하는데 중점
- 미국의 탈중동 정책이 지속되는 상황 속에서 석유 자원과 중동이 미국 간 관계 형성에 어떤 식으로 작용했는지 살펴보는 것은 향후 중동을 둘러싼 국제 질서 변화를 예측하는 데도 상당 부분 기여할 수 있음
- 중동의 석유 자원이 미국의 대중동 정책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시점까지를 집중적으로 분석
- 따라서 셰일 혁명 이후 줄어든 중동 석유 자원의 입지가 중동을 둘러싼 국제 질서 변화에 어 떠한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한 후속 연구를 지속할 필요가 있음
- 특히, 본 논문 은 중동의 석유 자원이 미국의 대중동 정책에 미친 영향에 대해 초점을 맞췄음
- 하지만 2010년대 이후 나타난 미국의 셰일 혁명 이후 달라진 미국의 입장과 미국을 대체하는 새로운 역외 국가들의 대중동 정책 마련에 석유 자원이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 새롭게 고찰할 필요가 있음.
- 이를 통해 석유 자원이 중동의 대내 외 정치 질서에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에 대한 연구를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