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강 로마: 공화정에서 제국으로
- 로마 공화정의 탄생과 발전
1) 에트루리아와 로마의 기원
ㅇ이탈리아 반도의 주요한 두 정치세력 : 남부의 그리스인과 북부의 에트루리아인
ㅇ에트루리아인: 소아시아 출신의 그리스 문명을 지닌 도시국가 연맹체
- 기원전 6세기에는 로마 지배: 로마식 알파벳을 비롯한 여러 문화활동을 라틴인들에게 전수
ㅇ로마의 시작
- 기원전 8~7세기 말: 인도유럽어족 일파인 라틴족이 티베르강 하류 지역에 정착, 소도시 건설.
- 기원전 509년: 에트루리아 왕을 내쫓고 독립 공화국 건설. 로마 역사의 시작.
- 추정컨데, 시리아-팔레스티나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
- 미노아 문명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 됨
2) 로마 공화정의 형성
ㅇ공화정의 수립: 기원전 509년 귀족들이 에트루리아 왕을 몰아내고 귀족들 중심의 공화정 수립.
- 로마의 국호: SPQR (Senatus PopulusQue Romanus, 로마의 원로원과 평민)
- 공화정: 권력의 분배와 상호 견제 – 왕정(집정관), 귀족정(원로원), 민주정(민회)
➔ 그리스 역사가 폴리비오스가 이상화 함
- 왕을 선출하는 방식이 아니라, 왕이 없는 체제를 만듦.
- Res(=Thing) Publica -> 공적인 것이라는 뜻
- 중세가 되면 뜻이 두 개로 갈림 - 공공선, 공공재
- 국가라는 의미로 쓰이게 될 때, 공공선을 지향하는 국가로 볼 것인가, 공공재(공익)으로 이야기할 것인가
- 공공선이라고 밀고 나가는 사람이 헤겔
- 공공재로서의 국가를 보는 사람은 영국 사람들, common wealth(국가)
- 나중에 되면 Repulic으로 압축됨
- 로마는 SPQR: 티투스 개선문에 있음
- 로마에서는 U와 V의 구분이 없음.. 더블 유: UU=W
- 근데 왜 U랑 V 둘 다 썼을까?
- 황제도 군림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표면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개선문을 세움. 티투스가
- 로마에서는 U와 V의 구분이 없음.. 더블 유: UU=W
- Res(=Thing) Publica -> 공적인 것이라는 뜻
- 기원전 509년이면 그리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 곧 그리스-페르시아 전쟁 벌어짐
- 중국: 춘추전국시대
- 로마는 언덕들, 7개를 끼고 그 사이에 있는 지역에서 번성함
- 카피놀리누스 언덕 - Capital의 기원
- 팔라티노스 언덕 - Palace의 기원
- 권력의 분배와 상호 견제: 왕정(집정관), 귀족정(원로원), 민주정(민회)
- 여기서 진짜 권력자는 누굴까? - 원로원
- 왜냐하면 집정관들이 보통 나이가 40~50대, 원로원들은 60~70대
- 그러다보니 실질적으로 로마를 이끌어나가는 세력은 원로원이고, 공화정이라고 할 지라도.
- 원로원이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하느냐, 안 하느냐가 중요함
- 원로원 세력들끼리 다투지 않아야 함(???????????)
- 전쟁으로 로마는 번성함. 원래 구세력인 원로원 외에 신흥 장군들 등장, 이 사람들이 또 원로원을 위협하는 세력들로 성장하게 됨.
- 중국은 번영할 때 이민족의 침입을 받지만, 로마는 그렇진 않음. 자기들끼리 닫힌 공간 내에서 권력 문제를 해결하게 됨. 그러다가 한 사람이 권력을 독점하는 사태(제정) 등장.
- 공화정이 팽창해서 공화정이 이끄는 제국이 됐다가가 제정이 됨..
ㅇ기원전 5세기 이후 평민세력의 신장과 신분투쟁
- 중장보병 밀집대형 전술 채택에 따른 새로운 군대 편제: 평민의 역할 증대
➔ 그리스 민주정 발전과 유사한 배경
- 494년 성산사건: 평민 전체가 로마시에서 철수하여 ‘성스러운 산(아벤티누스 언덕)’에 집결
- 호민관 설치: 정무관들의 결정에 거부권veto 행사, 신체와 생명 불가침권 지님
- 12표법 설치: 귀족의 자의적 법적용 철폐(451년), 귀족과 평민의 통혼이 법적으로 허용(445년)
➔ 광장에 세워진 열두 개의 동판에 법전의 내용을 새겨 넣음.
- 리키니우스 법(376년): 집정관 중 한 사람이 평민으로 선출될 것을 규정
➔ 이후 기원전 300년까지 모든 고위정무관직이 평민에게 개방됨
- 호르텐시우스 법(287년): ‘평민 철수’를 다시 감행, 원로원 승인 없이 평민회 결정 입법화 추진
➔ 이후 실질적 입법 기능을 담당하는 민회가 정착.
- 신분투쟁의 결과
⦁귀족과 평민 간의 형식적 평등 인정: 공화국 일체감 조성, 시민군에 의한 로마 팽창
⦁실제로는 구 귀족과 부유한 평민, 즉 신흥귀족 위주의 통치체제
⦁200년 동안 점진적인 개혁/ 귀족-평민간의 격차 상존
cf. 아테네에서 이루어진 민회 중심의 ‘급진적’ 민주주의(민주정)와 달리 로마에서는 원로원과 귀족이 실권을 지니는 한에서 민회가 성장(공화정)
- 귀족들에 대항해서 농민들이 파업함
- 이리 오너라 했는데,,, 아무도 없네...? 뻘쭘한 그 상황
- 아벤티노스 언덕: 7 언덕 중 가장 신성하다고 여겨지는 언덕
- 헤겔: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 주인은 노예에게 모든 걸 시켜서, 노예는 모든 걸 할 줄 앎.
- 결국 주인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됨.
- 노예는 주인이 없어도 잘 살게 됨. 주인은 노예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함.
- 마찬가지, 평민이 철수하니까 귀족들이 할 수 있는 게 없음
- 타협하면서 등장하는 게 호민관이라는 직책
- 라틴어로 Tribunus(트리브누스)라고 함. 영어로 바꾸면 tribune(트리뷴)
- 거부권을 veto(베토)라고 함. 베토권을 갖고 있음
- 귀족들이 호민관을 꼴보기 싫어할 수 있음. 죽일 수 있음.
- 로마에서는 호민관에게 신성불가침권을 줌.
- 문제는 이게 나중에 깨진다는 것.
- 법을 성문화시킴 - 12표법
- 원로원 승인 없이도 평민회에서 독자적으로 결의하여 법 제정 가능
- 법이 만들어졌다고 하더라도, 관례적으로 원로원에게 보고는 했다
- 그 다음 내용 놓침
- 평민이 세운 공이 있으니까 이 사람들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음
- 원로원 귀족들도 배제되는 것이 아니니 권리를 내어주게 됨
- 구 귀족과 부유한 평민(후에 신흥 귀족으로 성장)
- 노빌리스=신흥 귀족
- 아테네 민주정은 짧은 기간: 100년
- 로마 민주정은 지금까지의 과정만 200년, 굉장히 점진적임
- 여전히 귀족/평민 간 격차 있음
- 전통/신흥 귀족간 격차도 있음
- 아테네 중심의 급진적 민주정과 달리, 원로원과 ooo이 실권을 갖는 체제
ㅇ공화정의 제도들: 권력의 상대적인 분리와 기관들의 상호통제
- 민회의 종류들: 형식적으로 민주적이지만 귀족층과 부유층에 좌우됨
∙쿠리아회comitia curiata: 초기 씨족사회에서 귀족들의 회의
∙백인대회comitia centuriata
➔ 전시민의 병역의무를 전제로 구성, 재산에 따라 조직(기병, 중장보병, 경장보병 백인대)
➔ 고위 정무관 선출, 전쟁과 강화의 결정, 기타 입법
∙평민회 comitia tribute: 호민관 선출, 호민관이 의장직 담당
➔ 기원전 287년 평민세력 신장과 더불어 입법권 지님
- 정무관: 모두 1년 임기, 무보수, 민회에서 선출
∙집정관(consul): 정무관 중에서 최고의 지위를 차지/ 행정 및 최고군사권(imperium)을 장악/
원로원과 협의 하에 민회 소집/ 2인을 선출하여 상호견제와 균형을 유지/
국가비상시에는 집정관 중 1인이 6개월 한정의 독재관(dictator)이 될 수 있음
∙법무관(praetor): 사법을 관장, 법무관을 거쳐야 집정관 후보가됨
∙아이딜레(aedile): 공공건물 관리 경기 및 축제 관장
∙재무관(quaestor): 국가수입 관장 (이상의 네 개 관직은 출세의 위계를 이룸)
∙감찰관(censor): 징병을 위한 인구 및 재산 조사, 시민의 도덕과 풍기 감독
- 원로원 senatus : 실질적인 공화정 최고권력기관(종신임기, 300여명으로 구성)
→ 초기에는 씨족장으로 구성, 후에는 정무관을 지낸 자들로 구성
- 호민관 tribunus : 494년 평민투쟁의 결과로 설치
⦁평민의 이익을 옹호하며 정무관이나 원로원 결정에 대한 거부권(veto)을 지님.
⦁1년 임기, 신체와 생명에 대한 불가침권
- cursus honorum - 영광의 사다리
- 예외적 직위: Dictator
- 콘술이 2명, 군사/행정적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게 한 명을 딕타토르로 임명
- 로마 황제가 불리게 되는 사람들이 딕타토르 직위를 갖는 사람들
- 임페리움: 군사지위권만 가짐
- 안 좋은 이미지가 쌓이면서 스스로를 imperitor라고 부름
- 학술원
- 은퇴한 교수님들 모여서
- 죽으면 지명이 됨 - 수는 정해져있고
- 호민관이라는 직위가 따로 있음 - 정무관 라인에 들어감
3) 이탈리아 반도의 통일
ㅇ기원전 509년 로마 독립당시 이탈리아에는 여러 부족들과 여러 부족들이 산재.
- 이탈리아 반도 전통 부족: 사비니, 볼스키, 아이쿠이, 삼니움 등의 부족들
- 외부민족들: 마그나 그라이키아의 그리스인들(남부)/ 갈리아 켈트인(북부)
ㅇ라틴동맹: 로마팽창의 첫 걸음
- 기원전 493년 라틴 도시 간 동맹 결성, 이후 이탈리아 중서부 장악
- 기원전 387년 북방의 갈리아인 침입, 방어
- 기원전 340-338 보다 독립적인 권한을 주장하는 동맹시의 반란 평정
➔ 라틴동맹이 해체되고 로마로 병합됨 (그리스가 마케도니아에 병합된 시기)
ㅇ이탈리아 반도 정복·통일
- 기원전 343-282년: 이탈리아 대부족인 삼니움족 중심의 반로마 세력을 정복
- 기원전 272년: 마그나 그라이키아(Magna Graecia) 정복
- 이탈리아 정복의 동력
⦁시민군의 단결력: 평민들의 신분투쟁의 결과가 군사적 성공으로 나타남
⦁로마인의 현실적이고 군사적인 재능 (ex. 삼니움 전쟁 당시 건설된 아피아Appia 가도)
⦁정복지역에 로마 식민시 건설: 새로운 토지분배로 자영농층 창출, 무산자 감소(시민군 육성)
⦁시민권 확장: 식민시 주민들에게도 차등적으로 시민권 부여(그리스보다 개방적)
⦁동맹관계 형성: 각 피정복 부족과 개별적 동맹을 맺고 군사적 조력과 경제적 이득을 교환.
동맹부족 간의 협정, 전쟁 불가
- 이탈리아 정복의 동력
- 시민들의 투쟁이 군사적 재능으로 나타남
- 이탈리아 팽창 때 만들어진 게 군수물자 조달을 위한 아피아 가도가 만들어짐
- 아피우스 라고 하는 사람이 만듦 (~~아로 끝나면 여자)
- via가 원래 라틴어로 길이라는 뜻 (여성형)
- 실용적인 사람들
- 정복 지역에 식민시 건설
- 새로운 토지 분배, 자영농층 창출
- 공화정이 정복한 땅이기에 무산자들에게 땅을 나누어줌
- 자영농층으로 성장하고 다시 군대로 로마에 기여함
- 시민권 확장: 차등적 시민권 부여, 아테네는 준 시민권이 없음
- 사회경제활동은 할 수 있으나 정치 활동은 제한되는..
- 그리스의 폴리스들보다 개방적임
- 시민들의 투쟁이 군사적 재능으로 나타남
- 로마가 카르타고와 마주하는 상황이 등장하게 됨...
4) 포에니Phoeni 전쟁: 서부 지중해를 둘러싼 패권투쟁 - 카르타고 대 로마
ㅇ카르타고의 발전
- B.C. 814년에 현재의 튀니스 부근에 건설된 페니키아 식민시
- 농업, 특히 해상무역으로 급속히 발전, 서부지중해 패권 장악
- 정치체제: 2명의 최고집정관, 귀족 평의회, 민회 (로마와의 유사점)
- 정치와 군사의 엄격한 구분: 군대는 직업적 용병이 대다수 (로마와의 차이점)
ㅇ전쟁의 발단: 시칠리아의 그리스 식민도시 메시나(메싸나)가 시라쿠사의 공격을 받을 때 로마와 카르타고 모두에게 군사지원을 요청 → 로마와 카르타고 간 전쟁으로 발전
- 1차 (B.C. 264~241년): 지중해 장악의 교두보인 시칠리아 쟁탈 전.
전쟁에서 이긴 로마는 시칠리아를 속주로 만들어 로마의 곡창지대로 삼음.
- 로마의 영토확장: 사르디니아, 코르시카(BC 237년), 갈리아(Gallia Cisalipina) 정복(BC 202).
- 2차 (B.C. 218~202년): 한니발의 코끼리부대가 알프스를 건너 이탈리아를 유린.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이베리아 및 카르타고 역습. 급히 본국으로 귀국한 한니발은 자마 전투에서 패배. 로마의 지중해 패권 장악과 카르타고의 쇄락.
- 3차 (기원전 149~146년): 카르타고 멸망, 로마의 아프리카 속주가 됨.
- 로마는 정치가 곧 군사
- 카르타고는 정치와 군사 활동이 구분됨
- 시라쿠스에서 활동한 과학자: 아르키메데스
- 계속해서 참주가 다스리는 곳이었음
- 시라쿠사가 메사나를 침입함
- 메사나는 카르타고, 로마와 동시에 동맹을 맺고 있어, 둘 다에게 도움을 요청함
- 알렉산드로스의 사촌 되는 사람(피로스)이 카르타고, 로마와도 싸우고 물러났었음
- 그때 처음으로 카르타고, 로마가 서로를 의식하게 되는 계기
- 로마는 지면 지는대로 적의 능력을 흡수하는 능력이 있음
- 로마가 반전을 거듭하고 전쟁에서 승리함 - 시칠리아 흡수
- 북부 이탈리아에는 갈리아인들, 켈트족이 살고 있음
- 프랑스 지역을 갈리아라고 부르는데, 저기도 알프스 이남의 갈리아 지역이라고 불렀음
- 기원전 202년까지 계속 영토 확장
- 2차 포에니 전쟁의 발발
- 카르타고 세력은 이탈리아 지역에서 물러나고, 이베리아반도를 더 차지함.
- 이베리아반도에서 계속해서 북상함.
- 이탈리아: 에보로강 넘어서지 마, 사군툼도 니네한테 둘러싸여 있지만 건드리지 마. 여기 건들면 우리 동맹이니까 싸우는 거야.
- 비슷한 것: 칼리닌그라드(칸트 고향), 티베트, 홍콩 등
- 카르타고 코끼리 군대: 피레네 산맥을 넘어 옴... 알프스를 넘진 않겠지... 근데 알프스도 넘어옴
- 스키피오는 어린데도 집정관 직을 맡게 됨. 능력이 좋아서 카르타고에 치명타를 입힘
- 카르타고의 패배로 끝난 전쟁.. 카르타고는 로마에 어마어마한 배상금을 치르고, 배도 다 뺏기고.. 이런 상황
- 서부 지중해는 로마가 장악하게 됨
- 3차 전쟁
- 로마: 카르타고 군대 움직일 때 우리한테 말하고 움직여
- 주변에 있는 나라들한테 카르타고 계속 공격하게 만듦
- 카르타고가 컨디션 좋을 때 맞서 싸움
- 구실로 로마가 쳐들어 가서 카르타고를 붕괴시킴
- 지상에서 싹 지워버림...
5) 헬레니즘 세계의 정복: 동부 지중해 패권 투쟁
- 해적소탕과정에서 마케도니아와 충돌.
ㅇ3차에 걸친 마케도니아 전쟁 발생
- 1차 (기원전 215~205년): 2차 포에니 전쟁 중 소규모 충돌
- 2차 (기원전 201~197년): 로마의 승리, 마케도니아로부터 그리스 폴리스 해방
- 3차 (기원전 171~168년): 마케도니아 멸망, 속주화.
ㅇ동부 지중해 장악
- 2차 마케도니아 전쟁 직후,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3세 격파
➔ 소아시아의 시리아 영토를 친로마적인 페르가뭄 왕국에 할양.
- 기원전 146년, 반란을 일으킨 아카이아 동맹 진압, 주동 폴리스인 코린트를 무자비하게 진압.
- 기원전 133년, 페르가뭄왕의 사후, 다시 로마에 기증된 시리아는 로마의 ‘아시아’속주가 됨.
➜ 기원전 146년, 지중해 2대 무역도시인 카르타고와 코린토스의 멸망
: 로마의 전 지중해 패권 장악/ 지중해의 별칭 - ‘우리의 바다(Mare nostrum)’
➜ 로마에 헬레니즘 문화 유입, 새로운 로마문화의 원동력으로 작용
⦁그리스 신화의 유입으로 신에 대한 관념들이 유연해지기 시작.
⦁스토아 철학의 유입 ➔ 로마 귀족들의 철학으로 자리잡기 시작
⦁헬레니즘적인 향락문화 유입
- 로마는 포에니 전쟁과 동시에 동부 지중해를 장악하고 있었음
- 해적 소탕을 문제로 지중해 지역의 여러 사람들과 만나게 됨
- 기원전 146년, 카르타고도 로마, 그리스도 로마
- 정치체제는 공화정이지만 제국.
- 페르가몬의 왕이 죽을 때 유언으로: 우리 페르가몬도 받아주세요...
- 페르가몬의 유적은 모두 베를린에 있음
- 서부/동부 지중해가 모두 로마에 편입하게 되면서
- 로마는 지중해를 '우리의 바다'라고 부름
- 서부 지역은 카르타고와 관련해서 로마가 부러워할 게 없었는데
- 그리스는 우리보다 잘났는데... 이런 생각을 갖게 됨
- 로마와 귀족들이 향락과 퇴폐 풍조를 즐기게 됨
- 로마 귀족층들의 생활도 많이 바뀌게 됨
2. 공화정의 위기와 몰락
1) 사회의 변화와 그락쿠스의 개혁
ㅇ영토의 팽창에 따른 로마사회의 변화
- 자영농의 몰락: 지속적인 전쟁, 대농장과의 경쟁에서 패배, 부유층의 압력
➔ 시민군의 약화, 빈부 양극화, 사회불안 조성, 퇴폐향락 풍조 만연
- 라티푼디움의 등장: 노예노동에 입각한 대농장경영
- 부의 편중: 부익부 빈익빈 –소수 신흥귀족과 부유층의 정복의 열매를 독점
- 신흥 관직귀족층(nobiles)이 폐쇄적이고 배타적 성격을 지니면서 토지 및 정치력 독점
ㅇ그락쿠스 형제의 개혁: 자영농 부흥, 사회불안 일소, 로마 시민군의 회복
- 티베리우스 그락쿠스: BC 133년 호민관으로 선출, 불법점유 대토지를 무산자에게 분배하려는
개혁안 제시 ➔ 원로원 반대파에 의해 암살됨.
- 가이우스 그락쿠스: BC 123년 호민관으로 선출, 원로원 고립화 정책. 무산자 식민지 이주 정책
및 저가의 곡물 판매 등을 계획. 이탈리아 동맹시에 대한 시민권 부여 문제로 지지세력 분열
➔ 이후 원로원 등 반대파의 공격에 몰려 자살 (기원전 121년).
ㅇ그락쿠스 형제 개혁 이후
- 개혁의 실패, 공화정의 위기 심화 ➔ 전례 없는 폭력개입과 유혈사태의 연속
- 두 파벌 사이에 내란에 가까운 치열한 정권투쟁 전개됨
⦁옵티마테스(귀족파): 원로원 중심으로 부유층의 기득권을 유지
⦁포풀라레스(평민파): 민중의 이익 옹호
- 이탈리아 가까이 있는 땅들에 로마 평민들이 이주해서 살 수 있나?
- 원로원 귀족 가문이 이 땅을 갖게 됨
- 팽창해서 싸운 대부분의 군대는 일반 평민들.. 시민군
- 귀족들은 주로 지휘관 - 안 죽음
- 100년 넘게 전쟁하며 평민들은 더이상 받을 게 없음
- 받더라도 귀족들이 거느리는 땅덩어리에 비하면 새발의 피
- 평민들은 더 몰락하게 됨
- 귀족들이 거느리는 농장: 라티푼디움
- latus 넓다 funduc 랜드 = 라티푼디움: large land
- 빈익빈부익부 현상 심화됨
- 이러한 상황의 원상복귀가 로마를 지속시킬 수 있는 힘이다
- 원로원에게 공격적인 법안 제정 - 그라쿠스 형제들
- 원로원은 그라쿠스 형제를 싫어함 - 이런 발칙한 것!
- 결국에는 여기서 문제가 생김. 티베리우스 그라쿠스는 관례를 어긴 것은 아님.
- 그러나 원로원은 암살자를 보냄... 불가침 법을 어겼음.
- 티베리우스 그라쿠스가 신변의 위협을 느껴서 수백명을 데리고 다님..
- 이 사람들 다 죽음
- 원로원에서 카이사르가 죽음.. 국회의사당에서 의원들이 칼을 들고 죽인 것과 다름 없음.
- 티베리우스 그라쿠스가 신변의 위협을 느껴서 수백명을 데리고 다님..
- 공화정의 위기와 몰락
1) 사회의 변화와 그락쿠스의 개혁
ㅇ영토의 팽창에 따른 로마사회의 변화
- 자영농의 몰락: 지속적인 전쟁, 대농장과의 경쟁에서 패배, 부유층의 압력
➔ 시민군의 약화, 빈부 양극화, 사회불안 조성, 퇴폐향락 풍조 만연
- 라티푼디움의 등장: 노예노동에 입각한 대농장경영
- 부의 편중: 부익부 빈익빈 –소수 신흥귀족과 부유층의 정복의 열매를 독점
- 신흥 관직귀족층(nobiles)이 폐쇄적이고 배타적 성격을 지니면서 토지 및 정치력 독점
ㅇ그락쿠스 형제의 개혁: 자영농 부흥, 사회불안 일소, 로마 시민군의 회복
- 티베리우스 그락쿠스: BC 133년 호민관으로 선출, 불법점유 대토지를 무산자에게 분배하려는
개혁안 제시 ➔ 원로원 반대파에 의해 암살됨.
- 가이우스 그락쿠스: BC 123년 호민관으로 선출, 원로원 고립화 정책. 무산자 식민지 이주 정책
및 저가의 곡물 판매 등을 계획. 이탈리아 동맹시에 대한 시민권 부여 문제로 지지세력 분열
➔ 이후 원로원 등 반대파의 공격에 몰려 자살 (기원전 121년).
ㅇ그락쿠스 형제 개혁 이후
- 개혁의 실패, 공화정의 위기 심화 ➔ 전례 없는 폭력개입과 유혈사태의 연속
- 두 파벌 사이에 내란에 가까운 치열한 정권투쟁 전개됨
⦁옵티마테스(귀족파): 원로원 중심으로 부유층의 기득권을 유지
⦁포풀라레스(평민파): 민중의 이익 옹호
2) 공화정의 위기와 군벌의 발호
ㅇ공화정의 핵심인 원로원의 무능력화와 부패
- 정복전쟁의 결과물 향유와 더불어 현상유지에 급급할 뿐 새로운 상황에 대한 대처능력 상실.
➔ 각 파벌과 연관된 장군들이 공화정의 규칙을 무시하고 정권을 장악
ㅇ 군벌 세력의 등장
- 마리우스의 군사개혁: 무직자, 무산자 중심의 직업군 편성 (민중세력에 기댄 군벌 형성)
→ 군대의 사병화: 군인들이 국가보다는 군사개혁의 주체인 장군에 대해 충성
- 마리우스(Marius, 기원전 157~86년): 민중파 장군
⦁북아프리카 누미디아왕 유구르타의 반란을 진압(BC 105), 게르만족의 침입 격퇴 (BC 102)
⦁동맹시 전쟁 (BC 91~88년): 동맹시들이 시민권을 요구하며 반란을 일으킴
➔ 마리우스는 시민권을 부여하면서 반란 진압. 로마시민권이 이탈리아 전역으로 확대.
- 술라(Sulla기원전 138~78년): 귀족파 장군, 초기 마리우스 휘하 장군
⦁북해지역 미트리다테스 왕국 토벌
⦁마리우스와의 폭력적 투쟁, 마리우스 사후 정권 장악
⦁공화정의 전통을 깨고 종신독재관(dictator)에 취임 (기원전 82년)
⦁평민회/호민관의 권한을 최대한 축소, 원로원의 확대(600명), 군벌 장악 후 친귀족 정책.
- 폼페이우스(B.C. 106~48년): 술라 휘하의 부하장군
⦁이베리아에서 독립을 계획 중인 마리우스파 장군 세르토리우스 진압 (기원전 76~72년).
돌아오는 길에 스파르타쿠스 잔당 토벌.
⦁스파르타쿠스의 난: 당시 빈번하게 일어나던 노예와 검투사 반란 중 가장 대규모.
술라 부하장수였던 크라수스(Crassus)가 토벌대 지휘, 스파르타쿠스가 BC 71년 사망,
남은 잔당이 폼페이우스에게 토벌당함.
⦁BC 70년 크라수스와 함께 집정관이 되어 공화정 제도를 원상복귀시킴.
⦁BC 67~63년: 해적 소탕, 미트리다테스 격파, 시리아와 팔레스타인 속주화, 동방세계 장악
3) 카이사르의 시대와 공화정의 몰락
ㅇ제1차 삼두정치 시작 (BC 60년)
- 술라와의 차별성을 보여주기 위해 폼페이우스는 군대를 해산한 후 제대병을 위한 토지분배를
원로원에 요구. 폼페이우스를 믿지 못하는 원로원의 거부.
- 카이사르(BC 100~44년)는 폼페이우스와 크라수스를 설득하여 3두 정치를 성립시킴.
- BC 58~51년 카이사르의 갈리아 정복: 카이사르의 정치적 발판, 로마문명이 유럽 북부로 확산
- 정복사업에 의한 자영농 창출, ‘빵과 서커스’에 의한 빈민문제 해결.
- 삼두정치 해체: 크라수스 사망과 폼페이우스와 결혼한 카이사르 딸 율리아의 사망
➔ 원로원은 카이사르를 위험하게 생각, 폼페이우스에게 단독 집정관직을 부여하여 카이사르를
제거코자 함. ㅇ공화정의 종식: B.C. 49년 초 원로원은 갈리아에 있는 카이사르에게 본국 소환명령을 하달
- 군대를 이끌고 루비콘강 도하, 로마 정국 장악: 폼페이우스와 다수 원로원들은 그리스로 도주.
- B.C. 48년: 이탈리아 안정화, 에스파니아 진압, 그리스에서 폼페이우스 진압.
- 이집트로 건너간 폼페이우스는 살해당하고 카이사르는 이집트에서 클레오파트라와 동맹 구축.
- 이후 폼페이우스와 원로원 잔당들을 토벌, 카이사르는 로마제국의 유일무이한 지배자가 됨.
- 카이사르의 통치: 정적을 처단하기보다는 관용을 베풀고 로마의 재건과 개혁에 착수
- 카이사르 암살(기원전 44년): 원로원에서 공화정 지지자인 브루투스가 암살. ㅇ제2차 삼두정치: 카이사르 부하 안토니우스/레피두스, 양자 옥타비아누스 (B.C. 63~A.D.14년)
- 원로원 비롯한 반 카이사르파 숙청
- 레피두스 사망 후, 옥타비아누스가 제국 서부지역을, 안토니우스가 동부지역을 장악, 대립 격화.
- 기원전 31년 악티움 해전에서 옥타비아누스 승리, 안토니우스 자결.
➔공화정의 종말, 제국의 본격적인 시작- 제정의 성립과 로마의 평화
1) 제국의 구조
ㅇ로마 팽창이 초래한 정치적 경향성의 변화: 공화정을 붕괴시킨 흐름들
기존 공화정의 경향
➜
급격한 영토팽창:
경제적 이득에 따른
귀족 파벌 형성과
상호 경쟁
➜
영토 팽창 이후 새로운 경향
원로원과 민회를 통한 통치
: 공동체적 질서와 자유, 평등
군지휘관 개인의 역량에 따른 군사독재
: 독재권력에 의한 안전망 구축과 이를
대가로 한 복종관계
공동체 통치의 정치적 형평성
: 공직 선거제 및 임기제
제국 통치의 일방성
: 황제 중심의 정밀하고 복잡한 관료제
ㅇ프린켑스(Princeps): 옥타비아누스는 공화정 형식을 형식상 존중. 스스로 제1시민이라는 뜻으로
사용. 이후 원로원이 아우구스투스(Augustus, 존엄한 자)라는 칭호 부여.
- 권력의 정당성: 속주 통제권, 호민관의 권한, 원로원 수장으로서의 권위, 군대와 재정 관련 권한
➔ 로마 전체에 대한 Imperium 장악.
- 실질적인 지배 체제의 두 원천: 군대와 재정의 일인 장악
⦁군대: 군개혁과 더불어 모든 군 통솔권이 황제에게 집중.
⦁재정: 국가재정의 상당부분이 황제 개인재산에 의존 → ‘빵과 서커스’로 민중지지 획득
2) 로마의 평화
ㅇPax Romana: 200년간 지속된 로마제국의 평화와 번영 ➔ 황제권 중심의 관료제 발전
- 아우구스투스에 의한 질서의 회복, 티베리우스, 칼리굴라, 클라우디우스 즉위
- 네로: 문화와 예술 장려, 로마 대화제 이후 귀족들의 정치적 공격을 받기 시작, 기독교 박해
- 혼란기: 1년 동안 네 명의 황제 교체(갈바, 오토, 비텔리우스, 베스파시아누스)
- 베스파시아누스: 로마에 콜로세움 건립
- 티투스, 도미티아누스 : 베수비우스 화산 폭발로 폼페이 함몰
- 5현제 시대(96~180년): 로마제국의 최절정기
네르바,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안토니누스 피우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ㅇ로마제국의 구조: 제국 내 서로 다른 민족들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가운데 제국의 단일성을 유지.
- 제국의 범위: 유럽뿐만 아니라 아시아와 아프리카까지 포함.
- 로마와 황제의 보호 아래 지역과 도시들이 연맹을 맺으면서 자율성을 유지, 동시에 제국에 통합 - 문화적 다양성: 종교와 언어
- 제국 내 여러 민족들간의 차별 약화 ➔ 로마 중심의 통합과 로마문명의 공통적 수용.
- 로마를 모델로 한 속주 도시들 건설: 공공 기념물, 광장, 공중 목욕탕, 도로망, 수로, 신전 등
ㅇ경제구조: 정치적 평화는 정복사업의 경제적 이득(전리품, 공납, 자원)에 의존
- 근본적으로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경제기반
: 새로운 기술개발에 의한 획기적인 생산력 증대를 기대할 수 없는 전근대 사회의 성격 공유
- 농업기술의 후퇴와 대농장(라티푼디움)의 소작제화
- 활발한 상업활동: 해적 소탕, 도로 건설, 도량형과 화폐의 통일, 보편적인 로마법 확립.
⦁사치품을 중심으로 한 국제교역의 활기, 동아시아까지 교역로가 이어짐.
⦁로마제국의 통일성과 평화가 경제활동의 가장 중요한 기반이 됨
➔ 로마의 평화기가 끝나가면서 내수무역은 침체기로 진입, 자급자족적 성향으로 파편화- 서로마 제국의 쇠퇴와 기독교의 확산
1) 군인황제시대
ㅇ 군인황제시대 (180~284년)
- 코모두스, 세베루스, 카라칼라, 마크리누스, 엘라가발, 세베루스 알렉산데르
- 이후 50여년간 26명의 황제들이 교체됨
- 제국 내 무력을 동반한 군인정치가들의 유혈투쟁 심화: 중앙정부 기능 쇠퇴
ㅇ 제국 내 정치적 무질서 증대
- 내적 평화와 질서에 대한 위협과 외국의 위협 (사산조 페르시아, 게르만족).
- 군대유지를 위한 국가재정부담 증대 ➔ 증세: 결국 소농과 소작농에게 무거운 짐에 됨.
- 화폐의 질 저하, 인플레이션, 상공업 및 도시 자치권 쇠퇴. 기독교의 확산
2) 제국의 재편: 무질서와 혼란 수습/ 사회 경직화와 고착화
ㅇ디오클레티아누스 (284~305년)
- 사제통치(tetrarchy): 군인황제시대 종식, 4인공치제: 정황제(Augustus) 2 + 부황제(Caesar) 2
- 지방행정의 체계적 조직, 변경주둔군 설치(게르만 군인들의 진출)
→ 국가재정 압박, 중세부담 증대, 직업 고착화
- 경제침체: 물가와 보수의 인플레이션 ➔ 모든 조치가 무위로 돌아감.
- 자영농 신분 포기, 콜로누스라 불리는 예속농 증대
ㅇ콘스탄티누스(306~347년)
- 밀라노 칙령(313년): 기독교 공인, 니케아 공의회 소집, 황제를 중심으로 한 기독교교리 정리
- 대립황제들을 패배시킨 후 유일한 황제로 등극(324년)
- 330년 콘스탄티노폴리스 건설, 천도.
→ 기독교 일신교에 기대어 보다 강화된 전제군주정 확립: 제국의 경직화
ㅇ테오도시우스 (379~395년)
- 기독교 국교화, 제국 유지에 절치부심: 고트족 및 다른 제국 내 반란 진압
- 392년 서부 황제 발렌티니아누스 2세 사후, 전 제국의 유일한 황제로 즉위
- 로마제국의 동·서분리: 테오도시우스 사후 통합되지 못하고 서로 다른 정치체로 분할, 고착
3. 서로마 제국의 쇠퇴와 기독교의 확산
1) 군인황제시대
ㅇ 군인황제시대 (180~284년)
- 코모두스, 세베루스, 카라칼라, 마크리누스, 엘라가발, 세베루스 알렉산데르
- 이후 50여년간 26명의 황제들이 교체됨
- 제국 내 무력을 동반한 군인정치가들의 유혈투쟁 심화: 중앙정부 기능 쇠퇴
ㅇ 제국 내 정치적 무질서 증대
- 내적 평화와 질서에 대한 위협과 외국의 위협 (사산조 페르시아, 게르만족).
- 군대유지를 위한 국가재정부담 증대 ➔ 증세: 결국 소농과 소작농에게 무거운 짐에 됨.
- 화폐의 질 저하, 인플레이션, 상공업 및 도시 자치권 쇠퇴. 기독교의 확산
- 군사력을 유지하는 건 제정, 제정이 확보하는 방안은 영토를 차지하는 것
- 로마를 번성하게 한 것이, 로마를 망하게 함
- 이슬람은 원래 정치 공동체가 아니라 종교 공동체 - 왕조 아님
- 게르마니아 - 게르만족 - 게르마니아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
- 화폐의 질이 저하됨 - 순수한 금화가 아니라 합금인 화폐를 만들고 가격은 그대로 파는...
- 그 와중에 로마 사람들이 자기도 힘들고 뭐... 하니 기독교로...
- 아우구스투스 대는... Iesus...
- 로마는 서로 사랑하자는 개념이 없음. 내가 잘되기 위해 남을 패버리는 게 그리스 로마여..
- 시에나라는 도시를 가면, 시에나 광장에서 말 경주를 1년에 한 번씩 하는데...
- 로마식의 전통을 따르는 경주는 채찍으로 내 말도 때리고 남의 말도 때릴 수 있음 - 로마적 방식....
- 종교도 사실 똑같음 (?) 희생 제물 바치고, 내가 잘 되게 해주세요.. 혹은 망하게 해주세요....
- 3세기부터 기독교가 로마 제국 저넻에 퍼지게 됨
2) 제국의 재편: 무질서와 혼란 수습/ 사회 경직화와 고착화
ㅇ디오클레티아누스 (284~305년)
- 사제통치(tetrarchy): 군인황제시대 종식, 4인공치제: 정황제(Augustus) 2 + 부황제(Caesar) 2
- 지방행정의 체계적 조직, 변경주둔군 설치(게르만 군인들의 진출)
→ 국가재정 압박, 중세부담 증대, 직업 고착화
- 경제침체: 물가와 보수의 인플레이션 ➔ 모든 조치가 무위로 돌아감.
- 자영농 신분 포기, 콜로누스라 불리는 예속농 증대
ㅇ콘스탄티누스(306~347년)
- 밀라노 칙령(313년): 기독교 공인, 니케아 공의회 소집, 황제를 중심으로 한 기독교교리 정리
- 대립황제들을 패배시킨 후 유일한 황제로 등극(324년)
- 330년 콘스탄티노폴리스 건설, 천도.
→ 기독교 일신교에 기대어 보다 강화된 전제군주정 확립: 제국의 경직화
ㅇ테오도시우스 (379~395년)
- 기독교 국교화, 제국 유지에 절치부심: 고트족 및 다른 제국 내 반란 진압
- 392년 서부 황제 발렌티니아누스 2세 사후, 전 제국의 유일한 황제로 즉위
- 로마제국의 동·서분리: 테오도시우스 사후 통합되지 못하고 서로 다른 정치체로 분할, 고착

- 동부 지역이 훨씬 더 잘 사는 모습... 이집트 작물 생산량 압도적임
- 디오클레티아누스: 4제 통치, 4인 공치제, 테트라르키
- 혼자 통치하기 힘드니까 믿는 3명의 장군에게 나누어줌
- 자기는 제일 좋은 땅인 동부를 가짐...
- 게르만을 막기 위해서 로마화된 게르만을 쓰는 정책도 시행함
- 세금을 거두던 대로 거두기 위해서 직업이 고착화됨
- 아버지가 목수면 아들도 목수여
- 행정 편의주의, 황제의 통치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가긴 갔지만, 사회 활력은 떨어져있는 상태
- 당장에는 무질서나 폭력 사태를 예방하는 경우는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사회적 활력은 떨어짐
- 규제나 법규가 많아질수록 힘들어짐
- 어떻게 보면 매뉴얼이 많은 게 정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사회 활력이 떨어질 수 있음
- 교수님의 라떼는... 맞구... 마는거지... 벌점이 되고 생활기록부에 남고.... 그런 건 아니었음
- 각자 자기가 커온 방식이 가장 합당하다고 생각함
- 소작농, 예속농...
- 이런 와중에 디오클레티아누스 사망
- 중세에 베네치아 사람들이 탈취해 온 4제 통치 동상,,, 산 마르코 성당 위에 금 전차도 떼온 거....
- 콘스탄티누스
- 이른바 밀라노 칙령을 반포했다더라...! 칙령이 남아있지 않음. 진짜 칙령인 건지, 다르게 얘기한 건지 모르겠음. 사료로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음
- 이제는 기독교 믿어도 된다!
- 니케아 공의회: 지금의 우리가 알고 있는 개신교, 가톨릭의 근간인 기본 교리
- 삼위일체, 성육화
- 예수는 신인데, 굳이 고통을 당하려고,,, 속죄하기 위해서... 육체를 갖고 태어나서 사람들한테 죄의식을 심어주고.... 숭고하게 죽고.. 다시 부활을 했다는....
- 니케아 공의회에서는 삼위일체를 지지하는 아타나시우스파가 승리를 거두는데 사실 콘스탄티누스는 아리우스파
- 그때는 정통이라는 게 없음. 중구난방.
- 인도에서 도 닦는 문화가 들어와서, 인도에서 요가하는 사람들처럼 있음.. 나무 만들어 놓고 그 위에서 도만 닦는 사람
- nova roma: 콘스탄티노폴리스 -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도시
- 근데 왜 비잔티움 제국이라고 할까?
- 1453년에 콘스탄티누스 몰락하고 나서, 르네상스 연구하는 사람들이 로마가 진짜 로마야~
- 옛 명칭이 비잔티온, 콘스탄티노폴리스 제국이라고 하든가,,, 비잔티움 제국이라고 하니까 애들이 어안이 둥둥하쥬....
- 건설하기 시작한 거고 완성한 것은 아님
- 신 밑에 황제, 황제, 황제 밑에 총대주교가 있는 모양
- 테오도시우스
- 공인, 국교화는 현실 속으로 들어가면 전혀 다른 의미가 됨
- 국교화: 실제로 모두가 기독교인이 되었는지는 모름
- 생활 속에 자기가 들어가서 상상을 해봐야 됨... 누가 395년에 국교화가 됐다!!! 그러면 틀린 책...
- 황제 밑에 기독교를 황제 숭배용으로 이용해 먹으려고 함
- 5군데 총대주교: 로마, 콘스탄티노폴리스, 안티오키아, 예루살렘, 알렉산드리아
-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 학문과 관련한 로마의 신: 무사(뮤즈), 무사 여신 중 한명이 역사의 신, 무사 여신에게 바친 집(um자가 들어가면 집이라는 뜻), 무사이온 - 뮤지엄... 박물관의 원래 뜻은 도서관이라는 뜻
- 파피루스 모여있고...
3) 기독교의 등장과 확산: 탄압받는 종교에서 탄압하는 종교로
ㅇ초기 기독교의 형성: 예수스(Iesus), 페트루스(Petrus, ?-64), 파울로스(Paulos, 5-67)
- 아우구스투스 치세 시절 BC 5년경에 나사렛에서 예수스 탄생, 30세까지 평범한 목수로 살다가
이후 3년 동안 새로운 삶의 태도를 종교적으로 가르침: fides, spes, caritas + 가난함, 겸손 등
- 초기 기독교
∙예수스를 메시아로 믿는 유대교 내 소종파: 가난하고 약한자들을 중심으로 한 연민의 종교
∙파울로스: 초기 기독교 신학의 정립자, 기독교를 유대교 분파가 아닌 보편 종교로 재정비
- 기독교에 대한 로마인의 거부감: 2-3세기 수많은 박해사건 발발
∙기독교인들의 국가행사와 황제숭배 거부/ 로마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기독교 교리
: 신의 육화, 고행, 수난, 부활 등의 ‘기적’들과 유일신, 원죄와 속죄 개념들
- 기독교의 팽창과 다양한 기독교 종파들의 등장
∙제국의 위기상황과 더불어 기독교가 기층 민중들을 중심으로 확장해 나가기 시작
ㅇ기독교 공인(313)과 국교화(380이후): 기독교의 성격 변화
- 기독교는 박해받던 종교에서 박해하는 종교로 변화: 형식적 기독교 신자들의 증대
- 보편종교로서의 기독교 확립: 파울로스의 교리들이 제국종교에 걸맞는 것으로 선택됨
→ 헬레니즘적인 보편주의 (유태인 선민사상 배격): 신 아래 만민평등
∙그리스 및 헬레니즘 철학의 영향: 신학적 체계화와 스토아적 금욕주의의 도입
→ 로마인들이 이해하지 못하던 여러 삶의 태도들을 형이상학적으로 정당화, 이론화
∙로마제국의 신학적 의의: 기독교 전파를 위한 지리적 기반 형성(신의 뜻에 따른 역사전개)
- 황제숭배로 변화: 황제는 전 기독교인들을 이끄는 신의 대리인(제2의 예수스)
∙제권 아래 5개 총대주교좌 설립: 로마, 콘스탄티노폴리스, 안티오쿠스, 예루살렘, 알렉산드리아
- 380년 기독교가 공식 종교로 선포: 기독교의 정치권력화
∙391년부터 비기독교(이교) 탄압 시작, 392년 전 제국에 걸쳐 탄압 본격화
∙로마제국의 위계제와 행정구역을 따르는 교회 계서제와 교구체계
∙지방 공의회를 통해 주교 중심으로 기독교화 강행
- 새로운 신앙생활들: 사막에서 은둔하며 고행하는 수도사들의 증가, 각종 분파들의 성장
- 점차 로마제국과 기독교 공동체가 일치되는 것으로 인식됨
- 현재의 기독교로 만든 사람은 파울로스
- christos -크리스토스: 기름부은자
- 라틴어로 ch를 x라고 씀 X-mas: 크리스토스의 날
- fides, spes, caritas - 믿음, 소망, 사랑
- 우리나라 교회들 되게 이단적임...
- 교회에서만 하나님 만남?
- 예수는 왜 신이어야 하는가?
- 반인반신하면 안 되나? 아브라함, 모세처럼... 헤라클레스, 아킬레우스...
- 그리스어로 ecclesia 아테네 민회를 뜻함
- 평등한 사람들의 모임을 뜻함 christiana - 교회?
- 로마가 교회를 국교화 하고 나서는? 위계화가 만들어짐, 사제, 평신자 간에 구분이 이루어짐
- 초기 교회에는 성직자, 평신도 없음.
- 나중에 이 구분 없애자... 하는 게 종교개혁
- 원래 목사는 성직자가 아님. 스님이나 가톨릭 신부님과 같은 성직자가 아님. 평신도 중에 조예가 깊어서 다른 사람들을 이끌어가는 존재..
- 행정 기능을 예전에는 교회가 담당했음
- 19세기에 프랑스에서는 교회에서 갖고 있던 걸 가져오기 위해서 투쟁함
- 공의회 열면서 주교 중심으로 강행하게 됨
- 각 마을마다 수호신/정령이 있고... 앞으로는 수호성인으로 부르렴.
- 성모 마리아 - 예수랑 운명이 바뀌게 되는 사람.. 신인데 사람으로 죽음
- 성모 마리아는 인간으로 태어나 신이 되는 것
- 성모 마리아가 에수를 바라보는 장면은 되게 비극적인 것
- 지모신 숭배에서 나온 게 성모 마리아
- 땅이 가장 중요함. 하늘보다 땅. 뱀 숭배..
- 인도 사람이 로마로 옴 : 소신 공양을 알려줌
- 기원전 1세기 아테네에서 있었던 일
- 인도에서 도 닦는 문화가 불교에서 합쳐져서 아시아로 온 것만 생각하는데, 서유럽에도 전해져감
- 유대교에는 지옥 없음
- 로마는 기독교, 기독교는 로마
- 서로마 제국이 사라지고 나서, 사람들은 로마의 유산을 이어받자고 생각함 - 기독교를 이어받자는 것
- 로마 제국과 기독교 공동체는 하나!
4) 서로마의 소멸
ㅇ게르만족의 이동과 훈족의 침입
- 375년 이후 훈족의 압박으로 로마로 유입된 여러 게르만 부족이 제국 내에 정착, 왕국 건설
→ 378년 아드리아노폴리스 전투에서 황제 발렌스 사망
- 로마제국 정부와 동맹조약 결성: 영토부여와 관습법 인정 ⇄ 로마제국 군대에 합류
→ 서고트, 반달, 수에비 왕국들의 등장
- 410년 서고트족의 알라릭이 로마를 약탈/ 로마의 무력한 대응
- 449-450년 아틸라 왕이 이끄는 훈족이 서진하기 시작, 서로마로 진격
→ 로마 아에티우스 장군은 게르만 군대와 연합, 훈족을 격파 → 훈족 세력 약화
- 440년대 브리타니아에 앵글로족과 색슨족이 침입: 브리타니아 켈트인들의 디아스포라
ㅇ서로마의 몰락과 소멸(450-476)
- 454년 황제 발렌티아누스 3세와 아이티우스 장군 사이의 내분
- 로마의 제권이 게르만 출신 로마장군들에 의해 장악됨 → 20여 년간 꼭두각시 황제들의 연속
- 476년 훈족 출신 장군 오도아케르가 서로마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를 폐위, 추방.
→ 곧 이어 동고트족이 유입, 오도아케르의 세력을 몰아내고 이탈리아 반도 장악. - 서로마제국 지역에 제위는 사라지고 다양한 게르만 왕국들과 이주 부족들만이 남게 됨
⦁ 수에비, 반달, 서고트, 동고트, 프랑크 왕국, 부르군트족, 알레마니족, 바타비아족, 헬베티아족 등
ㅇ로마제국 쇠퇴의 원인: 로마 번성의 원인이었던 ‘군사 정복’이 쇠퇴의 원인.
- 황제권 중심의 정치체계과 제국의 경제체계가 항구적 제도화가 아닌 정복사업에 과도하게 의존
➔ 정복사업이 한계에 도달하자 정치, 경제가 동요.
- 정복사업 속에서 군대문제가 황제권에 유착: 군대가 황제권 계승에 개입하여 유혈투쟁 산출,
군대의 사병화 및 게르만화
- 정복사업 종식으로 인한 노예공급 차단은 콜로누스제(소작제) 산출, 사회 경직화와 상업의 쇠퇴
- 경계에 살던 게르만족들은 라틴어 쓰고 로마화되어 있음
- 게르만도 야만인으로 봤는데 훈족은 더 야만인
- 훈족의 수장: 아틸라라는 사람 - 지금은 흉노족의 일파로 봄
- 3세기 한나라 이후 기록에서 사라짐
- 그 일파로 보이는 훈족이 다시 규합하면서 서쪽으로 감
- 게르만족은 로마를 구했음
- 그리고 났더니 아이티우스의 인기 급상승
- 서로마의 황제였던 발렌티니아누스 3세가 시기 질투...
- 아이티우스를 발렌티아누스 3세가 목 졸라 죽임
- 로마가 2~30년 동안 군인 황제시대처럼 죽고 죽이는 시대가 도래함
- 마지막 장군이 오레테스라는 장군인데, 오도아케르를 용병으로 고용해서, 자기 아들을 황제에 올림.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
- 오도아케르가 반란 일으키고,,, 동로마 제국 황제한테... 어쩌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