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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개론 · 4강

중세 교회와 라틴 기독교 세계의 발전

4강. 중세 교회와 라틴 기독교 세계의 발전

기독교의 성장
ㅇ교회의 개혁과 교황권 강화: 교회의 정치세력화 (권위의 확립)
ㅇ십자군: 기독교의 외적 팽창
ㅇ이단과 탁발수도사: 기독교의 사회적 확산 (기층의 기독교적 신앙심 확산)
1. 교회의 개혁과 교황권 강화
1) 교회 개혁
ㅇ교회의 위기와 클뤼니 수도원의 개혁
- 정치·사회적 혼란기: 성직자와 세속권력자들 간에 긴밀한 관계 형성
- 성직매매 및 성직자 혼인풍습 → 클뤼니 수도원을 중심으로 교회개혁 시작 (10세기 말)
ㅇ교회의 개혁: 세속권력에 의한 서임권에 대한 반발
- 교황권 약화와 더불어 황제 및 제후들이 지역 성직자들을 지명 및 임명의식 시행
: 세속권력의 성직자 서임 개입 이유 → 교회와 수도원에 하사한 토지 등 물질적 지원들
- 교회의 대내외적 독립: ‘교황(교회황제)’의 등장
⦁1054년 동·서 교회분리: 로마총대주교와 콘스탄티노폴리스 대주교의 상호파문
⦁1059년 로마 공의회: 로마귀족 및 황제 개입 배제, 추기경단에 의한 교황 선출 규정
-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 (1073-85): 교회 개혁을 철저하게 추진하기 시작
⦁성직매매와 성직자 결혼풍습(축첩제도) 금지 및 성직자의 독신생활 규정(1074)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각지에서 세속권력들은 자신들의 가신 성직자들을 지지
➔ 그레고리우스 7세 개혁은 현실정치 속에서 실제 효력을 지니지 못하게 됨

  • 교회는 신앙심의 공동체인가? 정치조직인가?
    • 예전엔 십자군을 침략 전쟁이라고만 봤었는데 지금 어떤 특정 제국주의랑 비교해서는 안 됨
    • 5세기~10세기 매드맥스의 시대에 교회는 "너네 그러면 안 돼~"
      • 이 시대에 교회를 유지한다는 것 자체가 힘듦
      • 교회가 타락되었다는 상태로 빠져드는데...
      • 성직자들 입장에서는 "내가 왜 타락이야?"
        • 교회의 토지, 유물 등을 지키려고 함
        • 가장 중요한 2가지. 교회를 특정 가문의 재산으로 여기고, 그것을 자녀에게 물려주는 것...

2) 서임권 투쟁
ㅇ서임권 투쟁: 교황 그리고리우스 7세(1073-80) 대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4세(1056-1106)
- 밀라노 시 통치권을 쥐고 있던 주교 서임권을 둘러싸고 교황과 황제가 대립
- 교황의 파문 위협과 카노사의 굴욕(1076년) ➔ 일단은 교황권의 승리로 막을 내림
- 이후 하인리히 4세는 황제파세력을 구축하고 3년간 친교황 반황제파와의 전쟁에서 승리
- 타협안의 모색
⦁1107년 잉글랜드왕 헨리 1세와 캔터베리 대주교 안셀무스 간에 타협안이 마련되어 교황이 승인
→ 원칙적으로 교회에서 주교 선출, 하지만 취임 전 국왕은 신서의식으로 주교 선출에 찬반 표명
⦁보름스 화약 (1122년): 황제 하인리히 5세(1086-1125)와 교황 칼릭스투스 2세(1119-24)간 체결
ㅇ서임권 투쟁의 결과
- 주교선출 기준 강화를 통한 교황권위 신장: 교황의 영적 권위 확보
➔ 교황 중심의 교회 중앙집권화를 위한 법과 제도의 발전에 있어서 이데올로기적 근거 확보
- 세속권력과 교회권력의 보편통치 이원론이 뚜렷하게 자리잡음.
- 교황에 의한 황제 파문과 제후들의 반란: 중앙집권화 억제, 신성로마제국의 제후분권 가속화
- 신성로마제국 내 권력의 삼각관계 형성: 황제, 교황, 지방분권세력

  • 왜 성직자가 세속 군주를 임명하느냐?
    • 클뤼니 수도원: 왜 가문의 권세로 신부를 임명하느냐
    • 교회는 누가 뽑느냐? 기둥들은 추기경(기둥 추), 지붕은 교황
    • cardi라는 말이 기둥이라는 뜻
    • 추기경단에 의한 교황 선출
  • 이 당시의 신성로마제국 황제는 말이 황제인 거지 진짜 아님
    • 제후들이 자기 땅 다스리고 있음
    • 하인리히 4세 vs 그레고리우스 7세 - 파문장 (카노사의 굴욕)
    • 파문장 철회하고 나서, 교황의 존재를 각인시킴
    • 하인리히 4세 돌아가서, 반란 일으키려던 제후들 혼내주고, 다시 로마로 내려옴 > 그레고리우스 7세는 남부 이탈리아로 도망감
    • 하인리히 5세 아들을 중심으로 제후들이 규합함 -> 아들 폐위시키고 황제에 즉위함 -> 진정한 승자는 지방 제후들
    • 독일 통일이 안 되는 이유: 교황 때문에, 교황이 지방분권화된 세력들에게 명분을 주니까

2. 십자군 전쟁의 배경과 전개
1) 지중해 지역에서 기독교 서유럽의 팽창: 지중해 지역에서 성·속의 협력
ㅇ동로마 제국과 이슬람이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던 지중해 세계에 처음으로 기독교 게르만 문명이
진출하기 시작: 종교적 동기와 사회경제적 동기가 복합적으로 뒤섞여 있음.
→ 세속권력의 팽창이 교회와의 대결보다는 반대로 기독교의 확장 및 교황권의 성장과 연결
ㅇ이베리아 반도의 ‘재정복(reconquista)’: 레온, 카스티야, 나바라, 아라곤, 바르셀로나 백작령
- 에스파냐의 기독교 왕국들은 11세기 초-12세기 초 동안 코르도바 칼리프국의 분열을 기회로
이베리아 반도 북부에서 남부로 팽창
- 13세기 중엽까지 그라나다 지방만 남기고 이베리아 반도의 대부분을 기독교 왕국들이 점령. ㅇ시칠리아와 남부 이탈리아
- 9세기 경 이슬람 세력이 시칠리아 장악, 이탈리아 남부를 장악하고 있던 동로마제국과 투쟁
- 11세기 초 노르망디 귀족 일부가 이탈리아 남부와 시칠리아를 정복
→ 12세기 전반 루지에로 2세(1103-1154)가 두 영토를 병합, ‘두 시칠리아 왕국’을 선포

2) 십자군의 배경과 발단
ㅇ서유럽 세계의 활력
- 경제적 배경: 유럽사회의 전반적인 안정과 농업생산력 발전, 인구증가 등 새로운 활기와 에너지
- 심리적 동기: 성전과 성지순례의 이상화
ㅇ동부 지중해-서아시아의 세력 변동
- 10세기 이후 아바스의 분열과 쇠퇴: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축소, 할리파 칭호만 유지
- 튀르크(서돌궐)인들의 서진: 9-10세기 위구르 멸망 이후
- 맘루크 제도: 9세기 전반기 아바스 제국이 실시한 이민족 출신 노예로 구성된 술탄 근위대
⦁시간이 지나면서 중앙 정치 핵심세력으로 부상, 술탄 선출에도 관여, 권력 강화
⦁맘루크 지휘관들이 서아시아 각 지역에서 독자적인 세력들을 구축해 나감
- 튀르크 계 이슬람 술탄국들의 당장: 카라한(840-1212), 가즈나(977-1186) 등
- 셀주크 튀르크(1037-1194): 서돌궐(오구즈 튀르크)의 부족장 셀주크가 다스리는 왕국의 급성장
⦁페르시아계 사만 왕조(819-999) 치하의 군사 세력, 11세기에 사만 몰락 후 급성장
⦁1055년 아바스 왕조의 수도 바그다드에 입성: 셀주크 술탄이 아바스 할리파 보호
⦁12세기 말 내분으로 해체, 13세기 각 부족들은 몽골 지배에 들어감
ㅇ동로마 제국의 상황
- 바실레이오스 2세 황제 사후 동로마 제국의 약화와 셀주크 튀르크의 팽창
- 동로마 황제 알렉시오스 1세(1081-1118)가 교황 우르바누스 2세에게 셀주크 튀르크에 대항할
원군을 요청(1094).
→ 동로마 제국은 로마 가톨릭을 자신들 세력 하에 끌어들이기 위해 원군을 제안
→ 동·서 교회분리(1054) 및 카노사의 굴욕(1076) 직후
ㅇ클레르몽 공의회 (1095년)
- 교황 우르바누스 2세가 성지탈환과 교황권 강화, 기독교 세계의 통합을 목적으로 십자군 제창
- 이슬람 상인들의 부유함과 순례자들에 대한 박해를 과장하고 강조
: 서남 아시아 지역의 정치적 상황에 대해서는 무지/ 오로지 이슬람 세계 전체를 악마화.
- 성전선포, 전사자는 모두 천국에 간다고 설교.
- 프랑스를 순회하면서 십자군 제창, 봉건기사들의 성전 참가 권유

  • 클레르몽 공의회는 정기 공의회가 아님
  • 9차를 8차의 일환으로 볼 것인가 독립된 것으로 볼 것인가..
    • 전체에서 프랑스 사람들이 차지하는 역할이 70퍼센트...
    • 프랑스 vs 시리아-팔레스티나 지역 사람들의 싸움
    • 프랑스 사람들을 부르는 프랑키... 를 십자군이라고 부름
    • 무장 순례자들, 기사단도 무장을 한 수도사들
  • 종교적, 정치적, 사회적 동기들... 다양하게 복합적인 이유...

3) 십자군 전쟁의 전개
ㅇ은자 피에르의 십자군(1096 봄)
ㅇ우르바누스 2세의 정규 십자군(1096 가을)
-북부 프랑스 대귀족들의 참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거쳐 소아시아의 니카이아를 함락(1097.5)
- 십자군 제후국의 건설: 에데사 백작령, 안티오크 제후령, 트리폴리 백작령, 예루살렘 왕국
- 예루살렘 함락 (1099.7): 대학살 수반
ㅇ십자군 기사단의 창설: 성지수호의 임무를 맡은 성지수호군(성전, 병원, 튜튼 기사단 등)
- 세속 기사와 수도사의 혼합: 수도사처럼 청빈, 정결, 복종을 서약/ 성지 방어
- 십자군 운동 약화 이후에는 금융업에 종사하면서 막대한 부를 소유
ㅇ제2차 십자군(1147-49): 1144년 에데사 백작령이 Mosul의 태수 잔기에 의해 함락 당한 이후
- 프랑스 왕 루이 7세와 신성로마제국 황제 콘라드 3세 참가, 실패
ㅇ제3차 십자군
- 12세기 후반 아이유브 왕조의 술탄 살라흐 앗 딘의 예루살렘 함락 (1187년)
- 3차 십자군 조직(1189-92): 신성로마제국 프리드리히 1세, 프랑스 필리프 2세, 잉글랜드 리차드
1세 참가 ➔ 리차드 1세와 필리프 2세의 반목 지속, 프리드리히 1세의 익사로 제국군 철수
- 1191년 영불 연합 십자군이 아크레를 점령: 필립 2세 귀국, 리차드 1세는 예루살렘으로 진격
그러나 살라딘과 협상하여 순례자들의 자유로운 예루살렘 출입을 보장받고 귀국
→ 유럽의 쟁쟁한 군주들로 구성된 십자군의 초라한 성적
ㅇ4차 십자군
- 인노켄티우스 3세의 호소: 13세기 초 교황권의 절정을 이루었으나 왕들의 반응 미온적
→ 어렵게 북불 기사들로 구성된 십자군 발족, 재정 부족
- 운송비용의 문제: 베네치아 상인들이 제시한 수송비용이 십자군의 지불능력을 초과
→ 베네치아는 돈 대신 헝가리가 점령한 옛 베네치아 영토 자라市의 회복을 요구
→ 십자군은 자라市를 점령하고 약탈(1202년) ➔ 인노켄티우스 3세의 십자군 파문
- 동로마제국 점령: 자라시 점령 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점령, 약탈
→ 라틴제국 수립 후 대귀족들이 영토를 봉건제에 따라 분할 통치 (1204년)
→ 소아시아의 니카이아 제국과 본토인들의 저항 속에 1261년 멸망, 동로마 제국 재건.
- 이후 13세기 말까지 5-9차에 걸친 십자군이 조직되었으나 성공하지 못함
4) 십자군의 의미와 결과
ㅇ십자군의 의미
- 서유럽 라틴 기독교 세계의 팽창력과 그 한계, 통일성과 분열성을 동시에 보여줌.
- 기독교도로서 단합하여 이교도에 대항했지만 결국 각국 또는 각 귀족의 이해관계에 따라 분열
- 종교적 구원과 세속적 명예심 등이 강력한 동기로 작용. ㅇ십자군의 결과
- 십자군이 세운 정치체들의 등장: 성지 제후국, 키프로스 왕국, 라틴 왕국, 튜튼 기사단 영지
- 기독교 유럽인들의 지중해 지역 장악: 동방과의 교역 가속화
- 이슬람 문화의 수용과 고대 그리스 문화의 유입
- 가장 후진적이었던 서유럽 문명의 팽창력과 야만성을 처음으로 대외에 표출
- 장기적인 차원에서 교황권 쇠퇴에 일조: 후반 십자군에서 교황의 주도권 쇠퇴
ㅇ아시아에 대한 관심: 기독교에 호의적이었던 원나라와의 연합으로 이슬람 정복을 희망
- 13세기 수도사들의 원나라 선교 활동: ‘사제 요한’에 대한 신화 등
∙다신교 사회인 원나라에 대한 정보가 과장됨
∙13세기에 원나라가 평정한 교역망들을 이용 → 안정적인 교역로 확보
- 수많은 도미니코, 프란체스코 수도사들의 원나라 방문과 개종 및 기독교 유럽과의 연대 실패
➔ 기독교 서유럽이 최초로 지중해 세계를 넘어 비기독교 세계에 대해 각성하기 시작

  • 십자군들 거의 산적들처럼 됨... 헝가리군하고 싸움....
  • 교황의 요청이나 승인이 있고, 목표가 예루살렘이어야 하고, 이교도랑 싸워야
    • 예루살렘과 교황이라는 두 요소가 있어야 정규 십자군임
  • 에데사 백작령, 안티오키아 공국, 예루살렘 왕국...
    • 하나로 합쳐서 예루살렘 와국하지 왜 그렇게 했을까?
    • 봉건제라서! 그런거임
    • 네 십자군이 모여서 가는데, 왕이 없음. 다 제후들임. 서로 간에는 위아래가 없음
    • 어떤 제후는 먼저 가서 자기가 쳐버림...
  • 난징 대학살 6주 동안 30만 명 죽은 거
    • 일본의 수정 주의 학자들,,, 그건 과장이다... 10만이다...
    • 10만은 정상임?
  • 이슬람을 위협하는 건 십자군이 아니라 몽골임...
    • 그래서 몽골이랑 친구 될 줄 알고... 얘기 들어줌...
    • 들어는 주는데 개종은 안 함
  • 13세기 말인지 14세기말에도
  1. 교황권의 강화와 시토 수도회의 등장
    1) 인노켄티우스 3세의 시대
    ㅇ세속권력에 대한 교황권과 교회의 개입이 증대
    -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제국 등 전 유럽에서 결혼, 성속대립, 반교권주의 등에 개입
    - 세속권력 행사에 교회윤리를 강제하면서 교황의 영적 권위(교황의 정치력) 증대
    - 신정정치론(Theocracy): 볼로냐 법학자 후구치오(Huguccio)의 이론, 인노켄티우스가 정식화
    ⦁교황은 신의 대리인으로 모든 이들의 영혼을 지도(로마황제권에 대한 법적근거들을 적용)
    ⦁권력의 이분론: 전능주권 (auctoritas)과 정치권력 (potestas) authority와 power
    ➔ 세속관련 문제들에 대해서는 교황보다 세속귀족들의 권력행사가 우선한다는 점을 인정
    ➔ 교회가 간섭할 수 있는 세 가지 예외: 군주의 대죄, 세속권력의 찬탈에 맞선 교황령 보호
    교회의 재판권에 호소해야 하는 긴급한 사항
    ㅇ로마교황청의 중앙집권화와 서유럽 사회에서 기독교 권위의 확립
    - 교회 행정망의 발전과 교황 재정의 증대, 세속 군주들간의 분쟁시 중재자로 자처
    - 교황은 서유럽 기독교 사회의 목자로서 그 통일성을 유지하여 다가 올 신국을 준비
    - 비기독교 사회에 대한 기독교화 투쟁: 에스파냐와 유럽 동부지역
    ㅇ1215년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 일상생활에서의 교회 권위 확립과 기독교적 생활방식의 정착
    - 가톨릭의 기본교리 재확인 (예수의 성육화, 삼위일체 등)
    - 일반 세속인에 대한 주기적인 고해성사 도입
    - 알비 카타르파 및 발데스파에 대한 탄압과 프란체스코 교단의 인정
    è 교황권은 스스로가 영적 권력이라고 자임하였지만 현실적으로 거대한 세속적 정치권력으로 성장
    è 세속 사회에 대한 교회 권력의 증대 속에서 새로운 종교운동이 등장: 시토 교단과 이단 운동
    2) 시토(Cîteaux) 수도회와 성 베르나르
    ㅇ시토 수도원의 설립
    - 1098년 성 베네딕투스의 계율을 추종하는 일단의 수도사들이 부르고뉴 시토에 수도원 설립
    : 세상과의 철저한 단절 추구, 청빈, 침묵, 노동, 종교 유물 탐색, 성사
    - 1112년 귀족 출신 베르나르 드 퐁텐(Bernard de Fontaine)이 동료 수십 명과 함께 입회
    ㅇ베르나르 드 클레르보
    - 1115년 베르나르는 클레르보(Clairvaux)에 새로운 수도원을 세우고 수도원장에 취임
    ∙보다 엄격한 청빈 원칙에 입각하여 모 수도원인 시토를 중심으로 시토 교단 설립
    ∙12세기 말까지 에스파냐에서 폴란드까지 530개의 분원으로 확대
    ∙ 기부토지의 수취거부와 황무지 개간 ➔ 농경지 확장을 통한 농업생산량 증대에 기여
    (➔ 세속권력으로부터 독립했으나 귀족적인 생활방식을 고수하던 클뤼니 수도원과의 차별점)
    - 철학과 합리적 지식은 신앙의 시녀라 생각: 당대 파리대학 교수였던 피에르 아벨라르와 대립
    ➔ 파리대학의 합리주의적 태도를 오만하다고 비판하고 신비주의에 경도
    ㅇ시토 수도회 및 성 베르나르의의 모순
    - 이단과의 투쟁: 세상과의 단절이라는 원칙에 위배 ➔ 세속세계로 나선 수도원
    - 부의 축적: 청빈과 고행의 결과 거부를 축적, 새로운 문제를 제기 ➔ 12세기 말부터 쇠퇴 시작
  2. ‘이단’운동과 탁발수도회
    1) ‘이단’운동의 물결
    ㅇ모든 이단들의 공통점: 세속권력이 된 교회 비판과 청빈한 삶이라는 기독교 본래의 모습 추구
    - 교회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되는 입장이 중세 내내 지속됨
    ⦁신의 대리인인 강력한 교황권을 중심으로 조직된 성직자들의 제도
    ⦁신 앞에 동등한 신자들이 예수와 사도의 행적을 본받아 형성한 모임
    ㅇ발데스Valdès파 (보데스Vaudès 파)
    - 1170년 리옹의 거상이었던 피에르 발데스가 시작
    - 극단적인 청빈 및 고행, 가톨릭 위계제 비판: 1184년 파문
    - 일부는 도미니코 수도회에 흡수. 일부는 이탈리아와 중부 유럽으로 흩어짐
    ㅇ카타르파
    - 1150년 경 제 2차 십자군에서 귀환한 기사들이 도입하여 유럽 전역에 퍼짐.
    - 특히 카탈루냐 지방과 남불지역의 알비(Albi)에 집중 (프랑스에서 ‘알비파’라고도 지칭)
    - 교의: 세계는 선과 악, 영혼과 물질 세계의 영원한 투쟁 → 극단적인 청빈 추구
    ∙ 교회 위계제 없이 완덕자(Parfait)들이 평신도들의 신앙을 평등한 입장에서 인도
    - 남불 귀족들의 지지로 교세 확장
    ㅇ교회의 대응
    - 인노켄티우스 3세: 이단에 대한 설교 활동 ➔ 도미니쿠스 (1170-1221)의 설교 활동
    - 1208년 교황 대사 피에르 드 카스텔노 암살사건 발생
    - 알비 십자군의 조직 : 프랑스 왕 필리프 2세와 교황의 합작
    ∙ 베지에 대학살 (1209), 레몽 6세와 아라곤 왕 피에르 2세에 맞서 뮈레 전투 승리 (1213)
    ∙ 툴루즈 백작령이 시몽 드 몽포르에게 이양되고 남불이 프랑스 왕국에 본격적으로 통합됨
    - 이단심문 시작: 1215년 제 4차 라테라노 공의회에서 원칙이 제시됨. ㅇ14-15세기 새로운 종교운동(devotio moderna)으로 이어짐
    - 세속어 성서의 확산,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독서 : 성서근본주의를 바탕으로 교황권 비판
    - 피에르 발데스의 후계자들: 위클리프, 얀 후스, 사보나롤라, 루터 등
    2) 13세기 탁발수도회의 등장 : 도미니코 수도회와 프란체스코 수도회
    ㅇ도미니코 수도회: 카탈루냐 출신의 오스마 주교 도미니쿠스(1170-1221)가 설립(1216)
    - 카타르 이단에 대한 설교활동으로 시작, 종교재판에 주로 관여
    - 신학 및 법 학습과 논변, 설교를 중시
    ㅇ프란체스코 수도회: 이탈리아 출신의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1182-1226)가 설립(1209)
    - 단순소박하고 청빈, 금욕적인 생활: 교리 외에 실천적 측면에서는 다른 이단들과 마찬가지로
    기존 교회와 교황권을 비판할 잠재력을 지님
    ∙교회에 흡수됨으로써 교회불만 세력은 교회체제 안에서 해소
    - 이후 수도회 중 급진적 청빈파는 교황을 비판, 기독교 본래의 모습으로 회귀할 것을 촉구
    ㅇ탁발수도회의 영향: 이단 운동에 대항하여 교회와 교황권을 정당화, 신학 연구 발전
    - 도시의 발전, 이단의 등장, 세속인들의 종교활동 확대 및 심화
    ⦁세속세계의 발전과 더불어 세속인의 종교생활에 대한 보다 직접적인 지도와 관리가 요구됨
    ⦁탈속 수도가 아닌 재속 복음전파: 도시에서 세속인을 상대로 설교
    - 무력을 이용한 십자군이 아닌 설교와 설득을 통한 개종 활동: 아시아/아프리카 선교활동
    → 원나라 방문 및 사제 요한의 왕국 탐색
    - 13-14세기 옥스포드와 파리 대학 내에서 신학 및 철학을 주도
    ⦁도미니코 수도회: 알베르투스 마그누스, 토마스 아퀴나스
    ∙프란체스코 수도회: 로져 베이컨, 성 보나벤투라, 둔스 스코투스, 윌리엄 오캄
    ➔ 13세기 전반기에 대학 내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재속 사제들과 충돌
    - 14세기에 아퀴나스의 신학이 가톨릭의 공식 신학으로 정착된 후 도미니코 수도회와 프란체스코
    수도회는 서로 길을 달리하기 시작
    → 현실 교회와 교황권을 정당화 하는 도미니코회와 이를 비판하는 프란체스코회
    è 13세기가 지나가면서 기독교 세계는 점차 유연성과 탄력성을 잃고 경직성과 폐쇄성 강화
    - 기독교도만이 인간으로서 인정을 받을 수 있음
    -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을 중심으로 한 교리 체례화 → 사상적 경직성 심화
    - 거대하고 복잡한 교회제도의 발전과 경직화 → 점차 세속권력의 하나로 기능하기 시작
  • 라테라노 공의회
    • 로마가 아니라 라테란노까지 민듦
    • 진정한 기독교 신자가되며 증가
  • 고해성사를 통해 집안의 속성을 다 알고 이쓴 사람은 신부님이 됨
  • 알비 카타르파
    • 카타르파는 종교도 다름
    • 남부 프랑스 지역에 퍼져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