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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개론 · 5강

중세 사회의 안정화와 각국의 정치적 변화

5강. 중세 사회의 안정화와 각국의 정치적 변화

1. 9세기 이후 사회의 변화
1) 농촌사회의 안정화
ㅇ농업생산 증대 및 인구증가
- 개간사업으로 인한 농지확장: 농기구 발전과 같은 요인보다 농업생산력 증대에 더 결정적
- 농지확장(산술급수적 증가)과 인구증가(기하급수적 증가)의 선순환 관계
→ 토지에 비해 인구가 매우 희박하여 13세기 말까지 이 관계가 유지됨
- 유럽인구: 950년, 2천 2백만 ➔ 14세기 초, 5천 4백만(인구의 절대다수가 농민)
ㅇ농촌: 모든 파편화된 지방분권적 권력자들의 근거지(지배층의 파편화, 농촌화)
- 영지: 성채와 장원을 중심으로 하는 영주권(lordship)의 지배지역
- 구성: 영주직영지 + 농노보유지 + 삼림 및 공터 등
ㅇ영주권: 영지 내 인민들에 대한 행정·입법·사법권의 총체
- ban권: 영주권 중 영주가 농노들에게 일방적으로 강제와 금지를 강요하는 권력
예) 상품세, 시장세, 민박권, 성채관리세, 인두세, 방앗간/화덕/압착기사용료 등
- 관습법(custom): 영주권에 대한 농노들의 항의 수단

  • 중세를 가르는 것: 교회, 농민들?
    • 생각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장원이라는 말 자체가 일본어임
    • 중국에서 봉건제 얘기할 때 장원제 안 나옴
  • 데인로, 잉글랜드랑 프랑스에서 중요한
    • 잉글랜드는 통합 왕국으로 진전되어가고 있었음
    • 프랑스는 중앙 분권화과 되어가고 있었음
    • 공작과 백작의 차이
    • 공백작의 차이는 중국 거...
    • 듀크랑 카운트는 위계가 없음
    • 카운트는 카롤루스 대제 때 만들어 놓은 행정 관직
    • 프랑크 왕국에 있는 행정 단위가 꼬메스
    • 꼬메스에서 파견된 게 카운트
    • 온전한 백작령은 아닌데 급이 떨어지는 급작령 - 비꽁뜨, 비스카운트 - 부백...
    • 이민족이 만든 제후령 - 듀크럼, 더치, 공작이 다스리는 곳, 라틴어 두께레(이끌다), 이민족을 이끌던 사람
  • 영아 사망률이 높던 시기
    • 13세기에 가면 1인당 보유 면적도 주렁들고, 영양 상태도 안 좋아지게 됨
    • 자연의 제약을 뚫는 시대는 산업혁명 이후
    • 17세기까지 인구는 6천명 - 흑사병 때문에
    • 서유럽 시기의 퓨덜리티가 발전한 것도 - 인구가 적어서
  • 숲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 - 뗄감, 약초, 요즘 말로 쉽게 하면 다이소... 영주는 거기서 사냥도 하고
    • 영주가 행사하는 권력: 영주권

2) 도시와 교역의 발전
ᄋ중세도시의 두 원천: civitas와 burgus
ᄋCommune운동: 도시민들 사이의 동등한 연대를 바탕으로 도시 자치권 획득
- 농촌의 수직적 위계관계와 다른 수평적 연대에서 출발: 자유롭고 평등한 도시의 분위기 형성
- 시간이 지나면서 도시 내에서도 빈부격차에 의한 계급적/신분적 차별 등장
⦁도시귀족(부르주아): 귀족에 가까운 생활을 누리는 거대 상인가문들 - 도시 권력 장악
⦁일반 도시민: 수공업자들, 각종 전문직업인들, 소상인
⦁도시빈민: 농촌인구증가와 더불어 도시로 유입된 ‘부랑 임금노동자’
- 도시와 농촌: 농촌은 도시경제 성장의 필수요소 → 농촌의 곡식 수탈, 저임금 인구 유입
ᄋ거대상인 자본의 축적과 도시 내 사회갈등
- 거대상인 자본의 축적: compania 및 각종 상회들
- 상인자본이 생산에 개입하기 시작: 양모산업(플랑드르, 이탈리아) → 노동의 분업화, 전문화, 계층화
- 13세기 중반부터 도시빈민 또는 저임금노동자들의 봉기와 반란 빈발
ᄋ도시자치권: 파편화된 권력으로 점철된 유럽의 특수한 상황에서 등장
- 도시의 자율적인 법치와 무장, 경제활동 상에서의 특권들
- 인근 소귀족들에 대항하여 대제후나 왕과 상하 주종관계 형성: 도시보호 ⇆ 재정기여
→ 상하관계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목적은 도시 자치권 및 부르주아 기득권 유지
- 부르주아(도시귀족)들의 정치권력화: 서유럽 도시의 가장 독특한 요소
→ 도시 정책결정 주도/ 이후 보다 큰 단위의 정치체 경제정책에 개입하기 시작
→ 이후 국가재정 정책의 주도권 지님, 신분회의의 주요 구성원
예 1) 북부이탈리아 도시국가들: 형식상 신성로마제국에 포함되지만 황제의 직접통치 시도에 맞서 자신들끼리 또 교황과 연대를 맺고 저항, 황제의 시도를 좌절시킴
2) 북유럽 한자동맹: 자신들과 충돌한 덴마크왕의 군대와 전쟁을 하여 승리
- 13세기 경 도시의 규모: 아시아의 도시들에 비해 매우 작음

  • 아우구스티누스: 데 끼비타티 데이 - 신의 우르부스가 아니라,, 레스 포블리카로 번역됨
  • 시민 사회 운동에서의 시민 - res publica
  • 창고업을 하는 사람들이 도시에 생겨남
    • 풍년이 들어서 너무 많은 곡식이 생산됐는데 농촌에는 그걸 둘만한 곳이 없음
  • 탕진잼은 봉건 영주스러운 거
  • 거대 상인들이 등장해서 교역하는 회사들(상회)
    • compania - company
    • 가장 돈이 많은 상인 집안이 있고 항상 친교 관계를 맺으며 이해 관계를 공유하는 가문들이 만들어지게 됨
    • 가문들간의 연합
    • com + pan + ia(y라는 뜻)
      • cum(with) + pam(빵) = 한솥밥 먹는 사람들, 식구
  • 이때 사람들은 면직물을 모름
    • 모직물을 사고 파는 것을 떠나 일종의 모직물을 만드는 공장에도 투자를 해서 그걸 돌아가게 만듦

⦁서유럽 내 최대의 도시: 파리, 베네치아 - 인구 10만
3) 서유럽 세계의 교역 확대
ᄋ초창기 교역 범위
- 시장의 종류: 지역시장과 해외시장 → 국가규모의 내수시장은 가장 나중에 등장
- 지중해 지역: 이탈리아 도시들 - 향신료, 보석 등 고부가가치 상품들
- 북해-발트해 지역: 플랑드르 및 북부독일 도시들 - 목재, 식량, 가죽 등 저부가가지 상품들
- 정기시(fair/foire)들: 지중해와 북유럽을 연결하는 유럽대륙 교역 근거지
ᄋ13세기 세계교역권: 동아시아 ~ 동로마제국
- 원제국에 의한 유라시아 교역로 안정화(몽골 침입에 의한 큰 충격 이후)
- 가장 큰 수혜자: 이제 막 이 교역권의 연쇄에 진입한 서유럽 교역권
⦁상인들의 교역활동에 필요한 치안비용 절감
⦁마르코 폴로로 대변되는 서유럽 상인들의 다양한 활동
ᄋ도시 간 경쟁체제
- 북부 이탈리아 도시국가들 사이의 경쟁과 균형: 제노바와 베네치아
- 플랑드르 지역 및 북부독일 도시들 사이의 경쟁과 균형
→ 중세 말 압도적인 영토국가의 팽창 이전에 자신들 사이의 끊임없는 경쟁·균형 유지
ᄋ서유럽에서 자본주의적 운동이 국지적으로 시작됨(하지만 ‘자본주의 사회’는 아님)
- 시장경제/교역 ≠ 자본주의(독점체계): 시장과 교역은 어느 문명에서나 있었던 일반적인 현상,
반면 자본주의는 중세 후기에 본격적으로 서유럽에서 등장한 특이한 현상
→ 18세기까지 세계교역의 중심지는 중국, 인도, 이슬람
- 자본(Capital): 추상적 화폐가치로 표현되고 투자를 통해 이윤을 획득하기 위한 부
- 시계와 지도: 예측 가능한 미래를 확보하기 위해 세계를 균질적이고도 균일한 리듬으로 조직
→ 손실과 리스크 없는 자본의 무한한 축적 추구

  • 도시들 내에서도 교황파/황제파/독일파/프랑스파 등... 여러 파로 갈림
    • 국가, 국민의 개념이 없음
    • 피렌체를 지켜야 되는데 다른 도시의 용병 대장을 불러와서 지키게 한다던지...
  • 서유럽에서 자본주의적 운동이 시작됨
    • 자본주의라 함은, 투자해서 이익을 얻는 거
    • 자본주의 사회는 아님 - 자본이 최고는 아님
  • 백년 전쟁 할 때 에드워드 3세는 베네치아 상인들한테 돈 빌리고
    • 못 갚겠다 해버림... 파산함... 베네치아 상인들이 망함
    • 루이14세는 세금 걷어서 열심히 갚음
    • 국가 재정 자원이 자본주의 안에 포함되어 있는 것
    • 자본주의가 최고의 가치로 작용 하는가 안 하는가...를 봐야 함
    • 중세 말에 가면 자본의 활동을 더 활발하게 하기 위한 여러가지가 도입됨
  1. 프랑스, 잉글랜드, 신성로마제국
    1) 봉건사회의 등장과 변형
    ᄋ봉건사회(feudal society)1): 프랑스에서 진행된 권력 세분화의 심화된 형태
    - 취약한 왕권: 앙리 1세(1031-60), 필립 1세(-1108), 루이 6세(-1137), 루이 7세(-1180)
    - Feudality: 제도가 아닌 정치적 경향성 (≠ 周나라 封建制, 일본 봉건제)
    ⦁정의: 충성과 봉을 중심으로 한 자유민 간의 쌍무적 계약관계
    ⦁극도로 파편화된 정치권력 상황에서 생겨난 정치적 경향성
    → 왕부터 하급기사까지 주종관계/ 왕권은 유명무실
    - 영주제/장원제: 자유민과 예속민(농노) 사이에 맺어진 일방적인 지배 관계
    ᄋ봉건사회의 특징
    - 사회적 관계가 추상적인 제도나 권위가 아닌 직접적인 인간관계에 의해서만 유지됨
    ⦁각 지역의 제후와 왕은 끊임없이 자신의 영토를 여행하며 스스로를 보여주고 신뢰를 획득
    - 복수의 주종관계와 최우선 신서(hommage lige, 1046년 처음 등장)
    → 세습과 의무 이행등과 관련된 여러 현실적 문제들 속에서 전 지배계층 내에 다양한 세력들
    간의 투쟁이 방임됨/ 사회지배세력에 의한 사회 위계화 또는 체계화가 어려워짐.
    - 봉건사회의 새로운 이데올로기: ‘기도하는 자’, ‘싸우는 자’, ‘일하는 자’
    - 13세기 이후의 변화: 무정부적 투쟁상황 정리, 왕권 강화 → 수직적 상하관계 구축되기 시작
    2) 윌리엄 정복왕과 봉건사회 이식
    ᄋ노르망디 공작 기욤(윌리엄)의 영국정복
    - 1066년 헤이스팅즈 전투에서 윌리엄의 봉건기병이 하롤드의 잉글랜드 보병대를 격파.
    ➔ 잉글랜드 왕 윌리엄 1세(1066-87)로 즉위: 강력한 왕권 중심의 봉건제의 이식
    - 강력한 국왕 중심의 봉건제 이식: 동시대 프랑스의 상황과 다름.
    ∙기존 왕권의 효율적 통치제도(대 데인 방어체계) 유지 + 귀족에 대한 봉건적 관계 부과
    ∙솔즈베리 서약 (1086년): 전국의 제후 및 그 배신들을 소집하여 충성서약을 실시(최우선 신서).
    → 프랑스식 봉건제의 취약점 보강: 국왕은 명실상부한 봉건관계의 실질적 최정점에 올라섬
    → 개인 간 계약 관계를 전면화 함으로써 개별 귀족들에 대한 왕권의 장악력 극대화
    - 봉건제의 커다란 틀 속에서 잉글랜드 왕은 프랑스 왕국 내 영토와 관련하여 프랑스 왕의 봉신
    → 12-13세기 내내 잉글랜드와 프랑스 간 분쟁 및 14-15세기 백년전쟁의 빌미로 작용
    ᄋ경제적 착취체계의 강제
    - 노르만 귀족들에 의한 자유농의 농노화
    - 둠즈데이 북(Domesdaybook): 왕권 중심의 수취를 위해 각 지역의 자원에 대한 보고서 작성
    è 잉글랜드의 효율적 행정통치 및 인신적 봉건관계망에 기반을 둔 강력한 왕권 수립
    è 왕권과 노르만 귀족들에 대한 앵글로-색슨 전통 귀족들의 반발과 저항 증대

1) 마르크 블로크, 『봉건사회』, 한정숙 옮김 (한길사, 2001).

  • 4 -

3) 잉글랜드: 플랜태저넷 왕조
ᄋ헨리 2세(1154-89)
- 헨리 1세의 딸 마틸다와 앙주 백작 조프루아의 결혼 → 플랜태저넷(Plantagenet) 왕조
- 거대한 영지를 지닌 최강의 봉건영주로 플랜태저넷 ‘제국’ 형성: 노르망디와 잉글랜드(어머니),
앙주 백작령지(아버지), 아키텐(왕비 엘레아노르) ➔ 국왕은 주로 아키텐과 앙주에 거주
- 중앙 및 지방 행정 기구의 확대, 발전, 보통법(common law)의 발전
- 국왕 재판권의 전국적인 확대 및 강화 : 순회재판관 확대와 배심제 확립
➔ 가해자가 유력자인 경우, 피해자 대신 배심원들이 왕실법정에서 가해자를 고발
: 귀족들의 범법행위에 대한 왕권의 사법권 확대조치로 귀족세력 약화 정책의 일환
- 클라렌던 헌장(1164): 교회에 대한 통제 강화 시도 → 켄터베리 대주교 토머스 베케트 암살
- 왕자들의 반란: 불충분한 영지 및 영주권 분배와 부왕의 중앙집권 정책에 반대하여 발발(1173)
∙세 아들 헨리, 리차드, 제프리가 모후 엘레오노르의 선동과 프랑스왕 루이 7세의 지원으로 봉기
→ 반란 진압 후 헨리와 제프리 사망, 헨리 2세는 반란을 일으키지 않은 막내 존만을 편애
∙차남 리차드는 프랑스 왕 필리프 2세의 지원 아래 부왕에 대해 반란을 재차 일으킴(1189)
→ 노왕 헨리 2세의 패배: 반란자의 명단에 존이 기입되어 있는 것을 보고 회한 속에서 사망
ᄋ리처드 1세(Richard the Lion-Hearted, 1189-99)
- 모후를 따라 아키텐 궁정에서 성장, 스스로를 프랑스인이라고 생각
- 재위 10년 동안 6개월 동안만 잉글랜드 거주, 대부분 임기를 십자군 원정과 전쟁터에서 보냄
- 제3차 십자군 참전 및 필리프 2세에게 빼앗긴 영토 회복 전쟁
ᄋ존(John the Lackland, 1199-1216)의 실정
- 왕실재정의 무리한 팽창(과세 증대)에 따른 대귀족 및 부르주아들의 반감 확대
- 프랑스 내 영토의 상실, 특히 노르망디 상실로 정치사회의 불만 폭발
- 1215년 대귀족들의 무장봉기와 런던 점령, 런던 시민의 호응: 대헌장(Magna Carta) 승인
4) 신성로마제국: 호헨슈타우펜(Hohenstaufen) vs. 벨펜(Welfen)
ᄋ황제파와 반황제파 파벌의 형성: 신성로마제국과 이탈리아
- 황제파: 호헨슈타우펜 가문(황가) → 기벨리노파(=반교황파)
- 반황제파: 주플린부르크 가문, 벨펜가문 → 겔포파(=교황파)
ᄋ프리드리히 1세(Friedrich I Barbarossa, 1152-90)
- 벨펜 가문과의 충돌을 회피하면서 게르마니아 지역 내 통합 공고화
- 게르마니아 안정화 이후 이탈리아 진출, 롬바르디아 내 황제권 재건 시작
→ 북부 이탈리아 도시들의 저항: 롬바르디아 도시동맹 + 교황권
→ 밀라노 반황제파 봉기(1162), 레냐노 전투에서 황제 패배(1176)
→ 결국 롬바르디아 도시동맹과의 화평책 실시, 교황과의 평화조약(1183)
- 시칠리아 왕국과 결혼 동맹 추진: 아들 하인리히와 시칠리아 공주 코스탄차 약혼(1194년 결혼)
- 1189년 제 3차 십자군 출정, 1190년 살렙 강에서 익사
ᄋ하인리히 6세 (1190-97)와 오토 4세(1198-1215)
- 황후 코스탄차와 더불어 신성로마제국과 시칠리아 왕국 통치: 지중해 지배 시도/ 요절 - 5 - - 벨펜 가문의 오토 4세: 친교황파였으나 황제 즉위 후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와 대립
→ 1215년 강제 퇴위
5) 프랑스: 카페 왕조의 성장
ᄋ존엄왕 필리프 2세(Philippe II Auguste, 1180-1223): 왕권의 비약적 발전
- 잉글랜드의 리처드 1세와 경쟁관계: 십자군 원정
- 존(John the Lackland, 1199-1216) 즉위 후 왕국 내 잉글랜드 왕령지 점령
∙봉건 주군으로서의 권위를 이용, 잉글랜드왕 존을 배신자로 만든 후 전쟁 빌미 마련
→ 아키텐을 제외한 프랑스 내 잉글랜드왕 봉토 대부분을 프랑스 왕령지로 회복
∙1214년 부빈전투 승리
- 왕령지 확대: 왕실재정 증대 (4배), 지방행정관 파견
ᄋ남불 정복: 필리프 2세와 루이 8세(1223-26)
- 카타르파와 발도파 등 이단들을 비호하는 남불 귀족들에 대한 십자군 원정(1207-29)
→ 필리프 2세의 측근 시몽 드 몽포르 4세의 원정
- 종교적이면서도 동시에 정치적인 원정: 이단 정벌과 동시에 프랑스 남부에 왕령지 팽창
→ 남프랑스 지역이 본격적으로 프랑스 왕국의 역사에 편입됨. ᄋ부빈 전투(1214년 7월 27일 일요일)
- 프랑스왕 필리프 2세 vs 잉글랜드왕 존, 신성로마제국 황제 오토 4세, 플랑드르 백작 페랑
- 프랑스의 대승: 프랑스 왕 중심의 봉건기사 부대
- 이후의 결과: 유럽 주요 세력의 정치적 재편
⦁신성로마제국: 오토 4세 폐위, 프리드리히 2세의 즉위(호헨슈타우펜 가문의 복귀)
⦁프랑스: 왕권 및 왕조 신성화 작업 → “가장 기독교적인 왕”
⦁잉글랜드: 귀족 회의체(의회)에 의한 왕권견제 시작
⦁플랑드르: 프랑스 왕과의 경쟁에서 결정적으로 밀리기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