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강 르네상스 인문주의와 비판적 시선
- 불안감을 해소해서 거금을 들이는 게 맞는 건지... 차라리 그 시간에 운동을 하세요... 잠을 자세요...
- 르네상스가 중세 다음 장은 아님...
- 보통 백년전쟁 나오고... 서술이 비일관적이게 되어 있음... 중앙집권적 국가 등장... 잔다르크 등장....
- 중앙집권적 국가가 뭔가? 르네상스, 신항로 개척, 종교개혁 나가고... 재정군사국가...
- 중앙집권적 국가가 재정군사국가라는 건 안 알려줌..
- 2022개정 교육과정에서 일관되게 이야기 하려고 하는 게 재정군사국가
- 의회가 중심을 잡으면: 의회주의
- 중세 백년전재과, 잔다르크 다음에 르네상스 나오고 르네상스
- 처음에 나오는 사람이 페트라르카
- 잔다르크가 조선 사람이라면 페트라르카는 고려 사람
- 백년 전쟁은 100년 동안 일어남!! 이미 이탈리아에서는 르네상스가 꽃피우던 시기
- 전쟁하고 있을 때 동시대 인물이 페트라르카, 아비뇽유수 사건
- 교과서 순서와 연대기적 순서는 구분되는 것!!
- 르네상스는 100년 전쟁보다 더 긺. 3세기를 걸쳐서 르네상스라고 함. 과도기라고 하기도 좀 그럼.
- 1300년대에는 인문주의, 1400년대에는 예술 활동(회화, 조각): 고려 말부터 중종까지
- 보티첼리 - 다빈치(연장자),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 라파엘로 이후는 르네상스라고 하지 않음
- 레오 10세가 면벌부 팔아서 지으려고 한 성당이 베드로 성당 - 돔 설계한 사람이 미켈란젤로
- 우리나라는 그때 왕이 중종 - 조광조 개혁할 때..
- 우리나라도 세종을 중심으로 르네상스
- 세종과 르네상스 결이 비슷함...
- 르네상스 특징: 고전 고대의 부활 - 세종대왕이 한 일도 똑같음
- 옛날 거 잘 정리하기, 우리 나라는 과학 혁명이 없는 거...
- 르네상스는 과거를 향해있기 때문에 과학혁명과 다름
- 과거의 지식이 잘못됐는데, 나의 실험/경험이 맞는지 비교하면서 내가 맞는 것 같아.. 로 가는 사람들.. 아주 도발적임!!!!
- 대부분의 문명은 옛 선조의 말씀을 따라감
- 우리나라 어떤 학자가 나의 말이 맞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 맞아죽었겠지? 감히 발칙한 것이?
- 구한말 들어오면 과거의 것을 치워버리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자! 그러니까 근대...
1. 인문주의: 역사적 비판감각의 등장
1) 인문주의
ㅇ이전 세대와의 거리두기: 중세라는 과거를 비판하기 위해 고대라는 과거의 과거에 집중
-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 자신을 과거로부터 분리, 자신의 시대와 과거의 차이를 부각시킴
→ 시간적 변화에 대한 감각의 부활/ 그러나 그러한 새로움을 더 오래된 과거로 정당화
ㅇ실천적 학문으로서의 인문주의(이론적 학문이 아닌 실천적 학문)
: 추상적 일반화와 논리가 아닌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행위와 정치적 결정에 유용해야 함
- 대부분의 것들은 과거를 향해 있지만, 과학혁명으로 향하는 초석을 자기도 모르게 깔아놓고 있음.
- 과거를 부활시키기도 하지만, 무시하기도 함...
- 그리스와 로마를 부활시키기 위해서, 먼 과거를 부활시키기 위해서 앞에 있는 중세의 종교는 무시함. 가까운 과거는 무시. 넘어서려는 노력들 - 이중적 스탠스
- 역사의식의 등장: 과거의 과거와, 과거와, 지금이 다르다!
- 그리스.로마에 대한 고전적 지식을 중세사람들은 모르지 않았을 것
-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슬람 통해서 들어옴 - 스콜라철학의 토대
- 카이사르가 기사 옷, 말타고 창 들고 있음 - 중세의 옷차림.. 말타기 시작하는 것은 샤를 마뉴 때 등자가 들어오면서... 아우구스투스 왕관 쓰고 있고...
- 인문학은 인문과학 Human science 19세기 이후 분과학문
- 14세기 인문주의의 인문학과 19세기의 인문과학으로서의 인문학은 다르다
- 인류학, 역사학, 사회학, 이런 것들은 19세기에 인문과학이었음
- 사회학도 사회과학이라고 하지만 사회학의 뿌리는 역사에 있음
- 독일에서 사회학의 기원은 막스베버인데, 베버는 역사학도였음, 또는 철학
- 콩트: 철학하던 사람.. 그런데 사회학의 아버지
- 인간 중심의 학문 --- 만들어놓은 게 주인이 되어 인간을 종속시킴 --- 마르크스식의 '소외'
- 자본을 위한 인간, 국가를 위한 인간, 종교를 위한 인간
- 그래서 실용적인 학문, 실용적일 수밖에 없는게, 박사학위를 받는 분과는 신학, 의학, 법학뿐.
- 이탈리아 도시 국가: 피렌체, 교황이랑 싸우고, 밀라노랑 싸우고, 프랑스랑 싸우고... 교황도 쳐들어오는데 교황말을 잘 들어야지! 그럼 될까?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네, 네,,, 하자... 안 됨!
- 피렌체의 정치를 지키는데 종교, 의학, 법학은 쓸모가 없음...
- 그때 필요한 지식이 로마 사람들이 공부해던 것 - 스큐디아 클로마티스(?) 인간성에 대한 공부
- 윤리학: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 문제 푸는 것보다 니코마코스 윤리학 읽는 게 나음... '중용' 어떻게 적을 안 만들고, 친구를 만들며,, 어떻게 처신하며... '수사학'으로 연결.
- 논리학은 맞다 틀리, 수사학은 맞다 틀리다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접근해서 이야기를 할까... 어떻게 적을 더 모욕적이게 할까, 친구가 잘못했을 때 어떻게 말할까?
- 그래서 큰 틀로 보면 역사는 수사학.. 수학적 지식이 논리학...
- 윤리학: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 문제 푸는 것보다 니코마코스 윤리학 읽는 게 나음... '중용' 어떻게 적을 안 만들고, 친구를 만들며,, 어떻게 처신하며... '수사학'으로 연결.
- 동양의 명심보감도 옛날의 역사적 사실들... 똑같은 상황이 생기지는 않지만, 그런 사례를 누적하여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종합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대안적 행동을 할 수 있음...
- 인문학/인문주의 공부는 그 결과가 되게 늦게 나타남... 당장 나오는 게 아님...
- 도구가 아니라 삶의 태도!!!!!를 바꾸는 공부

- What에서 How로...
- 사람은 무엇인가? - 누구를 사귈 때 어떻게 해야할까?
- 투자는 자기한테! 투자는 자기 인생의 시간.... 책을 보고 운동을 하지...
- 주식 사서 오르면 기분 좋고, 돈 벌지만.... 써야 버는 거지...
- 은행에 박아놓고 다시 투자,,, 그래서 다시 또 망하고...
- 자본은 내 것이 아니다! 자본은 좀비같은 존재.. 나를 뽑아먹고 떠날 뿐...
- 중세로 돌아가면 영혼과 관련된 학문은 : 문법, 논리학, 수사학... 근대 이전에는 자연학, 근대 이후에는 물리학
-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야기하는 건 자연학, 뉴턴은 물리학..
- 하지만 근본 정신은 같다. 운동과 변화에 대한 설명...
- 전통적인 스콜라학
⦁학문의 목적: 신과 신이 창조해낸 인간과 세상의 질서에 대한 이해 및 이를 바탕으로 한 기독교신앙 확립
⦁학문의 성격: 신과 세상에 대한 진리의 인식을 중요하게 여김
→ 실천적 학문에 대한 이론적 학문의 우위
→ 인간의 문제를 체계화된 신학법칙에 기반을 두고 풀어나가려 함
(실천적 학문에 대한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실천적 학문을 이론적 학문에서 도출)
- 인문주의적 방식
⦁학문의 목적: 인간이 형성한 사회와 정치공동체의 효과적인 운영, 유지, 보전 및 이를 바탕으로 한 인간적 덕성의 확립(기독교 신앙과 내용면에서 대립되는 것은 아님)
⦁학문의 성격: 인간사회를 이끌어 나갈 현명한 태도(prudentia)와 실천적 지식을 중요하게 여김
→ 현실사회 문제 해결에 있어서 이론적 학문보다는 실천적 학문의 중요성을 강조
→ 인간의 문제를 상황에 따른 유연한 판단과 전략을 기반으로 풀어나가려 함
(이론적 학문을 무시했다기보다는 별개의 것으로 보고 실천적 학문의 독자영역 구축)
ㅇ피렌체의 역사서술: 시민적 인문주의의 일환 (15세기 전반)
- 대표인물: 콜루치오 살루타티, 레오나르도 브루니, 니콜로 마키아벨리
- 피렌체의 (과두제적) 공화정에 대한 옹호: 일군의 도시귀족(대 부르주아들)에 의한 공동통치
⦁밀라노와 같은 일인지배체제적 정치체제의 위협 속에서 피렌체의 정치체제적 정당성을
⦁로마 공화정에서 구하고 밀라노에 대항 (애국주의적 성격)
- 중세 스콜라학이 이론적 성격이 많음
- 신학의 교리에 따라 이미 답이 정해져 있음..
- 신과 신이 창조해낸 피조물의 세상에 대한 이해...
- 인간이 형성한 사회, 정치 공동체 운영에 대한.. 방법을 고민함
- 신이 내리는 진리 < 어떻게 실천적 지혜를 확립할 것인가
- 실천적 지혜를 프루덴티아 - 그리스어로 프루덴시스 ---- prudential 신중한... 보다 더 큰 의미
- 스콜라 철학은 이론적 부분이 실천적 부분을 지배함..
- 르네상스는 이론적 부분과 실천적 부분의 구분...
- 시청과 성당: 인간의 세계와 신의 세계
- 살루타티 브루니... 마키아 벨리...
- 중세 기독교에서 로마! 이야기 하면 로마 제국임
- 인문주의자들에게 로마란 공화정!
2) 인문주의의 변형: 명상적 인문주의의 등장
ㅇ15세기 중반 이후의 새로운 상황들
- 인문주의와 군주정(일인지배체제)의 유착
- 동로마제국 쇠퇴 속에서 동로마의 신플라톤주의의 본격적인 유입
→ 다양성의 갈등과 화해보다는 단일성을 중심으로 한 위계제를 강조
- 지식인 엘리트들의 정치참여가 제한적으로 되어 가는 상황 속에서 명상과 신비적 경험을 강조하는 경향성의 등장 (사회적, 정치적 참여 거부)
→ 인간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기독교적 신앙심을 심화시키고자 함: 진리의 탐구
- 시민적 인문주의의 가치관을 비판, 대중적 정부 배격, 소수 엘리트에의한 지배 지지
ㅇ마르실리오 피치노(Marsilio Ficino, 1433-1499)
- 피렌체의 독점적 권력자 코시모 데 메디치와 친분
- 플라톤 철학을 통한 기독교적 신앙심 탐구, 플라톤 저작의 라틴어 번역
- 고대의 비의적인 저작들에 대한 신비주의적 탐구(연금술 등)
→ 발라의 문헌학적 작업이 적용되지 않음
- 물질에 대한 정신의 우월을 강조하면서 소수 현자들에 국한된 신비주의적 신앙심에 심취
- 소수이긴 하지만 현자로서의 인간성에 거대한 우주적 의미와 초자연적 힘을 부여
: 인간은 육체와 정신 모두를 가지므로 두 영역의 구속을 받지만 양자 모두에서 힘을 발휘
→ 마법사(연금술사), 예술가 등 초월적 정신의 소유자들
ㅇ피코 델라 미란돌라(Giovanni Pico della Mirandola, 1463-1494)
- 피치노의 영향: 수사학을 말장난으로 간주, 철학(플라톤주의)의 우월성을 강조
- 하지만 기독교를 다른 종교들 중의 하나로 상대화
- 새로운 인간관: 피치노와의 차이
⦁피치노: 정신계와 물질계 중간에 자리를 차지하며 이 두 본성에 의해 인간성이 결정되어 있음
⦁피코: 신은 이미 완벽한 세상을 창조하고 마지막에 인간창조
→ 인간에게 고정된 자리를 주지 않음. 즉, 인간은 자신의 자리를 스스로 선택하고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 / 신의 세계는 모두 결정되어 있음, 인간은 여분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자기 운명을 선택할 자유가 있음.
→ 인간의 본성은 자신의 운명에 대한 자유
→ 신의 은총, 구원, 구세주가 불필요
- 시민적 인문주의 vs 명상적 인문주의
- 시민적 인문주의: 공동체 생활에 적극 관여하면서 "나 피렌체 사람이야~"
- 명상적 인문주의: 메디치 가문에서 후원한 인문주의자들이 퍼뜨린 삶의 태도
- 세속에서 거리를 두고, 우리의 인격을 고양하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아.
- 선거 날. 나는 꼭 투표해야 해! vs 뽑을 사람도 없고.. 그 시간에 여행이나 가자
- 메디치 가문이라는 유력 가문의 등장
- 1453년에 동로마 제국 몰락하고, 동로마 제국의 일부 지식인들이 이탈리아로 넘어오면서 고대의 신플라톤주의를 끌고 옴
- 기독교 교리는 알지만, 신플라톤주의는 모름... 기독교가 신플라톤주의를 받아들였다는 건 교회의 위계를 말하는 건데
- 이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의 위계로 받아들임...
- 플로티노스: 선이라고 하는 어떤 태양과 같은 존재가... 선함이 흘러넘짐... 인간 세계의 위계가 선에게 가까운 순서로 위계가 있음.... 그림자, 응달에 있는 사람들이 악...
- 악은 그 자체가 아니라, 선의 결핍
- 여호와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성직자.. 성직자들이 평신도를 선에 가까이 이끌음... 악한 사람들도 선의 햇빛을 못 받아서 그렇지 구원해줘야 됨
- 중세에서는 마녀 사냥이 없었음....
- 플로티노스: 선이라고 하는 어떤 태양과 같은 존재가... 선함이 흘러넘짐... 인간 세계의 위계가 선에게 가까운 순서로 위계가 있음.... 그림자, 응달에 있는 사람들이 악...
- 나의 내면에도 선함이 있고, 악함이 있음.
- 영혼과 육체의 관계. 육체의 욕망을 절제하고, 영혼의 능력을 끌어내는 게 중요하다.
- 그래서 예술가, 철학자를 중요하게 생각함 - 전통적 신부를 무시하는 경향이 좀 있음
- 평민 출신이라도 정신을 고양시키는 활동을 하는 사람은 정신적으로 귀족
- 메디치는 귀족 출신인데다가 영혼까지 귀족같은 사람....
- 미켈란젤로: 영혼을 고양시키는 게 일이라고 생각함.
- 1453년에 동로마 제국 몰락하고, 동로마 제국의 일부 지식인들이 이탈리아로 넘어오면서 고대의 신플라톤주의를 끌고 옴
- 본성은 주어진 것, 자유는 만들어가는 것.
- 자유가 인간의 본성이다? 굉장히 역설적인 표현
- 본성은 nature - 근대적 인간관의 등장...
- 근대에서는 유토피아가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 있음
- 좋았던 시절에서 - 좋은 시절
- 유토피아는 현재에 있음 - 히슬로 다이아스라는 사람이 여행하면서 적은 글
2. 과거에 대한 태도
1) 고전에 대한 새로운 태도
è 그리스-로마의 재발견? 그보다는 그리스-로마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의 등장
ㅇ중세 시기의 그리스-로마 문헌들
- 12세기 이래로 그리스-로마 문헌들에 대한 관심은 신학적인 체계 아래에서 꾸준히 관심의 대상이 됨
⦁기독교적 역사관 속에서 로마제국이 차지하는 보편주의적 성격 → 기독교 확산의 토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기반을 둔 스콜라 철학의 발전
→ 예술의 영역에서는 그리스-로마의 원칙들에 무지
- 고전들에 대한 이해: 당대의 인간적, 사회적 맥락이 아닌 신학적 틀 속에서 이해
→ 당대의 사회적·역사적 맥락 무시: 영원불변한 보편적 지식 체계의 일부분으로 간주
ㅇ르네상스 시기 인문주의자들의 그리스-로마 문헌들에 대한 태도
- 문헌들을 바라보고 다루는 태도의 변화
→ 신학적 체계를 바탕으로 교회가 제시하는 ‘교과서적인 방식’을 거부
⦁원전 자체로 돌아가 원전의 의미를 신학이 아닌 당대의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이해할 것
- 문헌들의 역사적 성격들을 파악
⦁과거와 당대의 구분, 보다 심하게는 단절을 주장
⦁문헌들 간의 역사적 계보를 구성, 그 동안 작자미상으로 여겨진 여러 문헌들의 정체성을 확인
→ 각 지역 수도원 도서관에 존재하던 많은 문헌들을 재발견
ㅇ페트라르카(Petrarca, 1304-1374)의 고전 이해
- 과거의 경험과 문헌은 그것이 출현한 환경과 연관지어 고찰해야 올바르게 이해
-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문헌들은 영원한 진리의 일부분으로서가 아니라 특정한 환경에서 출현한 특정 인물의 생각
→ 과거의 신학적 태도가 같은 문헌들을 절대적·보편적인 것으로 봤다면 페트라르카는 상대적· 유한한 것으로 봄
ㅇ새로운 시각 속에서 강조된 고전문헌들의 성격: 현실주의적 성격의 실천학문
- 이탈리아 도시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정치 엘리트들의 자질 및 능력 함양과 연관된 학문
→ 특정 세력/당파의 정치적 주장을 효과적으로 설득시킬 수 있는 데 필요한 지식과 학문들
: 웅변, 토론, 연설을 위한 문법, 수사학, 윤리학, 역사에 대한 지식, 정치적 지식
- 정치공동체를 특정 목표로 이끌기 위해 올바른 말(문법)과 효과적인 말(수사학)로 역사적 예화를 동원하여 시민들로부터 정당성(윤리학)을 획득하기
- 옛날의 맥락을 무시하고, 신학적/교리적 차원에서 파악했다면..
- 과거를 과거의 맥락속에서 이해하려고 함 - 역사적 의식들이 생겨나는 것
- 문헌학: 역사에서 기본적인 사료 비판에 해당함
- 이런 걸 안 하는 게 환단고기 그쪽 사람들.... 중세적 태도... 믿음은 더 이상 학문이 아님..
2) 로렌조 발라(Lorenzo Valla, 1407-1457)와 역사문헌학
ㅇ역사적 문헌 비판
- 페트라르카 이래로 널리 퍼진 문헌의 역사성을 비판적 방법으로 발전시킴
: 인간의 언어는 문화적 인공물로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역사적으로 변천과정을 거침
- 발라에 의한 라틴어에 대한 관점의 변화
⦁중세 시기 라틴어: 성서를 기록하는 3대 신성언어로 영원불멸한 법칙을 지닌 언어
⦁발라가 보는 라틴어: 인간 언어로서 변천을 거침.
즉 로마 공화정, 제정, 로마 멸망 이후 중세 초기, 중기 이후 등등의 시기마다 라틴어 어휘와 문체가 변화
ㅇ「콘스탄티누스 대제 기진장」의 비판적 분석(1440)
- 콘스탄티누스 대제 기진장: 313년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하면서 당시 로마 대주교(교황) 실베스테르 1세에게 서유럽에 대한 황제권을 양도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문서
→ 중세 시기 서유럽에 대한 로마대주교가 서유럽 기독교공동체(교회)의 황제권(교황권)을 지닌다는 역사적 근거로 기능
- 발라의 비판 (「콘스탄티누스의 위조된 기진장에 대한 선언」)
⦁정치이론적 비판: 제권은 분할불가능한 것으로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양도했을 수 없음
실베스테르 1세 또한 청빈한 교회지도자로 세속권력을 거절했을 것임.
⦁역사적 비판: 이 문서와 관련된 기타 여러 다른 세부시행문서들이 존재하지 않음
실제로 실베스테르가 제권을 부여받아 공포한 법률이나 칙령, 관리명단 부재
어떠한 당대의 연대기도 이 사건을 기록하고 있지 않음.
⦁언어학적 비판: 문서에 기록된 라틴어 어휘와 문체가 4세기 로마제국시기 라틴어가 아닌 8세기의 라틴어임
- 결론: 콘스탄티누스 대제 기진장은 8세기에 교황권과 새롭게 등장한 카롤루스 왕조 사이에 맺어진 협상과정 도중 만들어진 문서 → 이탈리아 중부지방에 대한 교황의 통치권 획득
- 영향: 발라는 자신의 작업을 교황권의 정치권력화에 대한 비판으로 여김
→ 그러나 이후 종교개혁 시기 로마교황권 자체의 정당성을 반박하는 근거로 작용
ㅇ발라의 다른 작업들과 그 영향
-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헤로도토스의 『역사』,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등의 그리스어 고전을 라틴어로 번역
- 그리스어 원전성서에 의거 불가타 성서의 라틴어 오류 수정시도 → 이후 문헌학적 성서연구 및 성서해석학에 영향을 미침
- 고전 문헌에 등장한 표현과 내용을 기준으로 필사본들 사이에 역사적 계보도를 만드는 작업에 커다란 영향을 미침 → 16세기 그리스, 로마 고전문헌들의 정리 및 교정작업
- 콘스탄티누스가 로마 총대주교에게 서유럽을 다스리도록 위임했다. - 기진
- 세 가지 신성한 언어
- 성경을 기록하고 있는 언어: 히브리어, 헬라어(그리스어), 라틴어(로마 말기 번역본)
- 영원불변함. 법이 있음..
- 그런데 라틴어도 시대마다 변화한다고 주장
- 발라의 주장: 황제권을 분할하여 양도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 분할해서 양도하긴 했음
- 양도했다면 수많은 다른 문서가 있어야 하는데, 이거와 관련된 아무 자료가 없음
- 교황은 기분이 나빴지만 교회 대분열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었음
- 대분열 수습 이후에도 개신교측은 로렌초 발라의 주장을 활용
- 카롤루스 르네상스, 12세기 르네상스
- 9세기 카롤루스 르네상스는 문자를 좀 쓰기 시작했다 요거
- 12세기 르네상스는 스콜라 철학의 등장 - 합리화하는 합리성, 스콜라철학의 교리 강화하기 위한 것
- 14~15세기 르네상스는 얘는 예전의 교리로 설명이 안 되잖아. 이걸 기준으로 다시 살펴보자. 이게 틀렸을 수도 있어! (비판의 태도)
- 역사적으로 무언가를 파악한다? 비판적으로 보는 것. 역사교육과 관련된 것. 주요 학문은 역사학을 싫어함... 정답에 대해서 이의제기하니까...
- 에라스무스 같은 사람들도 성경 번역.. 이런 작업을 함... 그리스어를 잘해서 신약 성서 다시 번역함.
- 잘못 번역된 내용들 - 라틴어 성경 번역: 바늘귀, 낙타....
3) 종교개혁과 인문주의: 중세적 태도의 반복?
ㅇ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 1469-1356)
- 개혁주의적 기독교 인문주의: 종교개혁 문제들에 관심을 가짐
- 로렌조 발라의 영향으로 『신약성서 주석』을 편집(1505)
- 종교 및 정치 풍자서인 『우신예찬』 집필(1511)
- 최초의 그리스어 원문과 주석을 포함하는 라틴어 번역 『신약성서』를 발간(1516년)
: 19세기까지 모든 성서연구의 토대가 됨
ㅇ루터의 종교개혁과 비텐베르크 대학
- 작센 선제후의 후원 아래 루터와 멜란히톤 주도로 비텐베르크 대학 설립
- 그리스-로마 고전의 이교도적 내용에 대한 거부
- 성서와 초기 교부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 고대로의 회복을 주장
→ 언어학적, 역사적 접근 강조
- 그리스어, 라틴어, 헤브라이어 등을 교육: 인문주의적 방식들을 일부 수용
ㅇ에라스무스와 루터의 갈등(1520년대)
- 에라스무스의 개혁: 새로운 종파의 설립이 아닌 기존 가톨릭에 대한 비판과 인문주의 정신에 입각한 온건한 개혁
→ 종교개혁의 주역들은 모두 직·간접적으로 에라스무스의 지적 영향을 받음
- 루터와 그의 동료들: 새로운 종파설립을 통해 가톨릭 거부, 에라스무스의 갈등.
→ 인문주의 교육은 성서 및 개신교 신학과 관련된 부분들만을 수용
본래의 그리스-로마 세계에 대한 이해와 수용 거부
- 에라스무스가 주장한 온건한 개혁 및 중용의 길은 가톨릭과 루터파 모두로부터 공격을 받음
→ 종교개혁은 각지에서 과격하고 유혈낭자한 종교전쟁으로 확산됨
- 성경은 텍스트, 성서는 책 자체
- 에라스무스는 개혁적 입장을 나타냈지만, 종교 개혁을 원하지는 않음
- 가톨릭의 정화를 원함
- 종교개혁에 도움이되는 인문주의만 받아들임
- 가톨릭/개신교 양쪽 입장의 눈치를 봐야하는 입장 - 북유럽 르네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