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강 과학혁명과 근대철학
5강 과학혁명과 근대철학
1. 새로운 세계관
1) 조르다노 브루노(Giordano Bruno, 1548-1600): 무한한 우주
ㅇ생애: 종교전쟁 시기, 즉 종교적 불관용과 극단화의 시기를 살다감
- 1548-76 직업군인의 아들로 나폴리에서 출생, 도미니코회의 수도원에서 공부했으나 폭넓은
독서를 통한 자유로운 토론활동으로 수도원장에게 이단으로 몰림
→ 1576년 나폴리를 떠나 유럽 각지를 돌아다니며 공부하고 자신의 생각을 설파
- 1576년 로마에 도착, 부당하게 살인자로 고발된 사실을 알자 로마에서 도피, 북부 이탈리아를
떠돌아 다님.
- 1578년 제네바로 가서 인쇄소 교정일로 생계를 꾸림. 형식적으로는 칼뱅주의를 받아들였으나,
개혁 교회도 가톨릭 못지않게 비관용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갈등이 생김
→ 제네바를 떠나 프랑스에 도착
- 1581년 파리에 도착 - 종교전쟁의 한 가운데에서 국왕 앙리 3세는 온건 가톨릭에 바탕을 둔
관용정책을 통해 가톨릭과 개신교의 대립을 막고자 노력
→ 앙리 3세의 정치적 태도에 동의, 그의 보호를 받으며 학문활동에 정진
- 1583년 앙리 3세의 소개로 영국 런던으로 건너가 옥스퍼드에서 강의 시작
→ 옥스포드의 보수적인 학자들의 저항에 직면
- 1585년 파리로 귀환, 파리가 가톨릭 극보수에 의해 장악되어 몇 차례 논쟁 후 독일로 떠남
→ 독일 도시들을 떠돌아다니며 자신의 생각을 강의, 토론했으나 여러 저항에 직면
- 1591년 모체니고라는 베네치아 귀족의 초대로 사상적으로 자유로운 베네치아에 도착
→ 파도바 대학 수학교수에 지원했으나 낙방(1592년 갈릴레이 취직)
- 1592년 모체니고와 다툼, 모체니고는 브루노를 이단으로 교황청에 고발
→ 교황청에 7년 이상 감금되어 심문을 받음. 자신의 생각을 철회할 것을 요구받았으나
완강하게 버티자 교황의 명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화형에 처해짐(1600년)
ㅇ브루노의 ‘이단적’ 세계관과 우주관
- 무한우주론:
“우주는 무한하게 퍼져 있고 태양은 그 중에 하나의 항성에 불과하며 밤하늘에
떠오르는 별들도 모두 태양과 같은 종류의 항성이다”
→ 코페르니쿠스와는 다른 우주론: 코페르니쿠스는 태양 중심의 확장된 천구만을 우주로 생각
⦁
‘무한한 공간’: 신을 ‘무한성’으로 이야기한 15세기 신학자 니콜라스 쿠자누스의 영향
⦁태양계는 무한한 우주 속의 한 체계, 여러 다른 체계들의 가능성 제기
- 범신론: 무한한 우주 자체가 ‘신’
⦁신은 내재적 존재이지만 인간 인식을 초월함
→ 신플라톤주의나 플라톤과 달리 일자로서의 신은 현실 너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님
무한한 현실 자체가 신
→ 하지만 현실 자체가 무한하게 뻗어있기 때문에 인간은 신을 알 수가 없음
➜ 신학자이자 철학자이지만 ‘무한한 우주’라는 개념을 창안, 이후 스피노자, 라이프니츠의
근대 철학과 근대과학의 우주론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끼침
- 1 -2)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 국가와 과학
ㅇ생애: 영국의 정치적 격변기, 튜더-스튜어트 왕조 이행기에 정치활동 및 몰락
- 옥새상서이자 대법관인 니콜라스 베이컨의 아들로 런던에서 출생
- 법관교육 및 파리에서 비아리스토텔레스적인 베르나르 발리시의 자연학 강의 청강
- 엘리자베스 1세 시기, 정치적 출세와 학문적 성공, 양 분야에 매진
→ 1591-1603년 동안 정치적 좌절: 여왕의 눈에 들어 관직 얻는 데 실패
- 왕권신수설을 주장한 스튜어트 왕조의 제임스 1세(1603-1625) 즉위 후 정치적 출세
→ 법무차관 및 장관, 옥새상서, 대법관(1617) 역임
- 1621년 의회와 왕권의 대립 속에서, 왕의 측근인 베이컨은 뇌물수뢰 혐의로 체포 및 투옥됨
→ 이후 은퇴, 학문에 매진, 1626년 실험도중 병에 걸려 사망
ㅇ 『새로운 오르가논/신논리학(Novum Organum)』(1620)
- 1부: 4가지 우상 비판 - 쓸모 있는 지식들을 생산하기 우해 버리고 고쳐야할 태도나 마음가짐
∙종족의 우상: 어떤 것을 한 번 믿으면 이것만을 신봉하고 이에 어긋나는 사실을 무시하는 태도
→ 한 지식의 종족이 되어 다른 지식들은 타종족을 배척하듯이 함
∙동굴의 우상: 지적인 균형 감각을 상실하고 개인의 성향에 따라 한 부분에만 몰입하는 태도
→ 자신만의 세계에 동굴처럼 틀어박혀 있는 태도
∙시장의 우상: 자연에서 실제로 관찰할 수 없는 이념이나 개념으로 공허한 논쟁을 벌이는 태도
→ 시장에서 말만 시끄럽게 오가며 흥정하는 태도
∙극장의 우상: 유명한 권위에 대해 비판적 태도 없이 맹신하는 성향
→ 극장무대의 배우에 홀려 다른 생각은 하지 못하는 방식
- 2부: 귀납법 - 우상을 버리거나 고치기 위한 방법
→ 새로운 사실에 대한 자료를 폭넓게 수집하여 결론을 도출하고 재수정해야 함
∙발견목록의 작성: 나타나는 현상들, 나타나지 않는 현상들, 비교 사례들에 대한 목록
ex. 열이 있는 다양한 경우들, 열이 없는 다양한 경우들, 열이 있는 경우들 간의 비교
∙발견목록을 바탕으로 제거목록들 작성
ex. 열은 태양에는 있지만 달에는 없음 → 열 관련 사항에서 천상물체 항목 제거
∙가설 구축: 목록으로 열의 현상은 수집이되지만 열의 운동방식이나 본질에 대해 알 수 없음
→ 합리적인 추리에 의해 가설 구축:
‘열은 입자운동이다.’
∙가설 검증: 실험을 통해 가설이 옳다는 것을 증명
ㅇ『새로운 아틀란티스(The New Atlantis)』(1624)
- 과학연구의 이상향인 ‘솔로몬의 집’ 건설을 제안
: 과학자들이 국가의 지원받아 국가를 위해 쓸모 있는 지식을 생산하는 곳
- 영국의 왕립학회(1660), 프랑스의 과학아카데미(1664) 설립으로 실현됨
- 17세기 이후 근대 학문(과학)의 위상 변화
∙17세기 이전: 신이 창조한 것을 인식함으로써 신앙심을 깊게 하고 영혼 구원을 찾아나감
∙17세기 이후: 국가와 국민에 쓸모 있는 지식들을 산출하여 부국강병에 이용
→ 학문에 대한 국가의 주도권 장악, 학문을 통한 국가의 권위 증대,
국가 간 경쟁에서 학문의 결과를 이용하여 패권을 장악할 도구로 이용
→ 국가후원 → 과학발전 → 국가팽창과 식민지 침략, 지배에 이용: 국가와 과학의 되먹임관계
- 2 -3) 르네 데카르트(1596-1650): 주체와 대상, 수학적 진리
ㅇ생애: 프랑스 종교전쟁 직후 부르봉 왕조의 절대왕정이 구축되던 시기
- 부르주아 가문 출신(조부-의사, 부친-법률가), 출생 1년 후 모친 사망, 외조모 밑에서 자람.
- 예수회 학교에 입학하여 역사, 문학, 수사학, 수학, 자연학, 철학, 신학 등을 공부
- 1618년 법률가 자격증 취득, 네덜란드의 마우리츠가 이끄는 군대에 용병으로 합류
⦁베크만 등 네덜란드 과학자와 교류, 수학적 자연학에 관심
→ 근대적 좌표체계 정립, 해석기하학 정식화
⦁수학을 모델로 모든 학문의 공통적인 기반이 되는 철학을 구성하고자 함
→ 학문적 진리는 수학처럼 정확하고 확실하며, 체계적인 연역 관계를 따라야 함.
→ 진리의 기반이 되는 철학, 신학에 대한 철학의 독립
- 1628년 암스테르담으로 이주, 다양한 과학적 탐구와 실험에 몰두, 다양한 저술 활동
⦁『정신지도 규칙』(1626-28), 『방법서설』(1637), 『철학원리』(1644), 『정념론』(1649)
- 1649년 스웨덴 크리스티나 여왕의 초빙으로 스웨덴으로 이주(학문적 성향으로 갈등)
→ 1650년 폐렴으로 사망
ㅇ수학적 세계관
- 진리에 이르는 길
∙계시: 특별한 사람에게만 한정된 방법
∙이성: 모든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방법(가장 확실한 것은 수학적 이성)
- 데카르트가 제시하는 방법론의 규칙(방법서설)
∙명증하게 참이라고 인식한 것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참된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 것. 속단과
편견을 피하고 분명하고 뚜렷하게 구분되는(clear & distinct) 것에 대해서만 판단할 것
∙검토할 문제들을 잘 해결할 수 있도록 각각의 대상을 가능한 작은 부분으로 나눌 것.
∙가장 단순하고 알기 쉬운 대상에서 출발하여 복잡한 것으로 나아갈 것.
∙모든 것을 완벽하게 열거하고 검토할 것.
- 모든 것을 양적인 것으로 측정가능한 수학적 방법 강조: 질적 차이와 주관성 배척
∙삼단논법 비판: 새로운 지식 확보 불가능
∙새로운 지식을 가장 분명하게 체계화 하는 틀: 수학(운동과 힘을 양화하여 수학으로 설명)
→ 좌표체계, 비어있는 공간, 원근법의 결합
ㅇ주체와 대상이라는 이원론
- 유일한 진리의 근거: Cogito -
‘생각하는 나’는 더이상 의심할 수 없는 명증성의 기반
- 기계론적 자연관: 생명체와 비생명체, 유기체와 무기물의 구분은 무의미
- 주체(정신)와 대상(물질)의 이원론: 주체의 정신은 물질성이 없는 순수 정신,
대상이 되는 물체는 어떠한 심적 요소도 없는 순수 물질
2. 새로운 방법론의 도입
1) 수학과 자연철학
ㅇ학문에서 수학의 지위: 보조학문
- 3 -- 수학: 외적이고 부수적인 성격들을 양적으로 측정하는 데 필요한 보조지식
→ 기술로서의 의미가 더 큼: 회계, 항해술, 지도, 관측 등에 활용되는 기술들
-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자연철학의 입장: 자연에 대한 학문은 ‘자연철학’이어야 함
⦁수학은 과학(학문)이 아님 - 수학적 지식은 자연에 대한 본질을 알려주지 않음
⦁수학으로 측정된 지식들: 대상의 우연적(비본질적) 속성들
ex. 사과의 크기와 무게를 측정해도 각 사과의 서로 다른 우연적 성질만을 알 수 있지
사과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음
- 르네상스 시기 수학의 발전
⦁대수학(Algebra) 발전, 각종 수학기호들의 고안 및 체계화
⦁소수점의 도입 → 복잡하고도 정교한 계산 가능 → 물리학과 천문학에 커다란 영향을 미침
ㅇ수학을 학문화 하려는 시도들: 16세기 말부터 등장
- 수학자들
⦁수학자 크리스토프 클라비우스: 로마대학의 수학교수
⦁갈릴레오 갈릴레이: 클라비우스의 친구로 그의 영향을 크게 받음
⦁주세페 비안카니: 클라비우스의 제자
- 주장들: 수학은 인과적 증명을 보여주는 학문이라고 주장
→ 측정에 의한 양적·외연적 관계를 철학적 이론으로 정당화되는 성질의 관계로 대체
ex. 별들의 운동에 대한 인과관계 설명의 차이: 과학적 인식론의 전환
→
‘원인’, 즉 ‘왜’의 두 가지 의미:
‘무엇’, ‘어떻게’
⦁자연철학: 신의 창조에 의한 별들의 본질을 통해 별들의 운동과 상태들을 설명
⦁수학적 자연학: 현상적으로 보이는 운동의 방식들을 수학적 체계에 따라 설명
ㅇ
‘자연과학’의 등장
- 갈릴레이, 케플러: 수학적 자연학에 자연철학의 지위를 부여하고자 함
- 수학은 장인의 기술. 즉 수학을 통해 자연에 대한 조작이 수월해 짐
⦁베이컨이 말하는 바와 같이 ‘쓸모 있는’ 지식들의 창출에 수학의 역할이 커지게 됨
⦁수학과 자연학에는 어떠한 구분도 있을 수 없음
- 자연에 대한 수학적 정량화와 측정이 점차 자연스러운 방법론으로 자리잡게 됨
cf. 회화에서의 ‘원근법’에 의한 대상 재현, 배치 방식
2) 관찰에서 실험으로
ㅇ자연에 대한 조작적 지식 - 기술과 마술
: 수학적 세계관과는 별도로 인간은 자연을 단순히 관찰하여 지식을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연을 변형하고 가공하여 인간에게 이로운 물질을 획득할 수 있다는 생각 등장
- 마술/연금술: 자연에 대한 수동적 관찰이 아닌 자연에 대한 가공, 변형 시도
→ ‘현자의 돌’, ‘영생의 약’을 찾기 위한 끝없는 신비주의적 실험들
- 기술공학: 실생활과 전쟁에 필요한 여러 가지 기계장치들의 고안
∙코르넬리스 드레벨(Cornelis Drebbel, 1572-1633): 잠수함 제작, 템즈강 위에서 운행시도
∙시몬 스투르테반트(Simon Sturtevant, 17세기 초): 철, 석탄, 나무를 이용한 다양한 실험들
→ 철과 석탄의 대량 채굴을 위한 여러 기계 발명들을 시도
ㅇ기술의 발전: 새로운 장치를 고안할 수 있는 1·2차 원료들의 가공, 생산
- 주철(cast iron)의 대량생산(14-16C): 강도가 높고 녹이 덜 슬고 용해가 쉬움
∙기계부품과 생활용품 제작에 편리 → 이후 총포류 제작에 사용되기 시작
∙주철 생산에 필요한 탄소의 공급을 위해 숯의 수요가 증가
- 석탄 사용 시작
∙16세기 후반 인구증가 및 상업번영과 함께 목재 사용량 증가: 목재 위기 발생
→ 숯 제작, 집, 배, 땔나무, 각종 생활 필수품(소금, 비누) 제작 ...
∙전통적으로 석탄은 불결한 것으로 여겨졌지만 점차 사용량 증가, 17세기에 사용량 급증
→ 석탄 채굴 발전
∙석탄을 실어 나르기 위한 목재 레일과 운반차 등장
ㅇ실험의 등장
- 자연에 대한 경험적 관찰: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미 강조
→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이 추상적 이론체계에 초점을 두고 이루어져 관찰된 현상과
다르다는 점들이 점차 명확해져 감
→ 아리스토텔레스의 체계는 경험적이지 않은 형이상학적 독단으로 여겨짐
- 16세기 말 -17세기 초:
‘경험(experience)’에서 ‘실험(experiment)’로...
∙experior: ‘시험하다(try)’를 의미하는 라틴어 - 두 단어의 공통 어원
∙실험: 자연에 대한 단순한 경험적 관찰이 아닌 특정한 조건 아래 다른 변수들을 제거하여
인위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바를 재구성
→ 자연에 대한 가공과 변형을 통해 진리를 알 수 있다는 생각(연금술, 기계공학의 영향)
→ 조건, 변수에 대한 체계적인 목록, 특정한 실험도구 및 관측장치들 필요
: 때에 따라 고가의 실험장비들을 후원하는 특정 권력자들이나 국가권력을 필요로 함
■ 근대과학 발생의 이질적인 구성요소들
: 무한성의 개념, 귀납법, 수학, 관찰과 실험(자연에 대한 가공), 유용성, 정치권력
→ 이 모든 요소들은 애초에 서로 출발점을 지니는 요소들
→ 17세기 이후 서유럽에서 이 모든 것들이 ‘근대과학’이라는 학문활동과 더불어 상호 결합
- 교사가 사료를 던져 주었을 때 그거 자체가 객관적이지 않음
- 실험을 세팅했다는 것 자체가 주관의 반영임
- 뉴턴식의 세계관이 틀린 거라면?
- 실험이라는 것도 어떤 기대를 갖고 조작을 해 나가는 과정
- 자연을 그대로 두지 않고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과정
- 중세부터 기술의 발전과 무관하지 않음
- 유럽은 원래도 인구가 적은데 흑사병으로 반토막남
- 14세기에 유럽 전체 인구가 6천만 명
- 인력을 대체할 다양한 기술이 발전하게 되어 있음
- 자연적 대상을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생각이 등장하게 됨
- 석탄은 터부시 되던 물질
- 숯을 쓰지 석탄을 안 씀 - 잉글랜드는 석탄을 쓰기도 했음
- 유럽의 여러 세력이 동유럽으로 건너가면서 세력 확장
- 실험이 없다면?
- 해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 지구 바깥에서 생각한다면? 지구가 자전하고 있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