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ssi Suikkanen, This Is Ethics: An Introduction (Wiley-Blackwell, 2015) 1부 「무엇이 우리에게 좋은가?(What's in Our Interests?)」 · 책 쪽수 pp. 3–24 ※ 쪽수는 책에 인쇄된 쪽수예요. PDF 뷰어에서도 같은 번호로 보여요.
한눈에 보기 · Overview
이 장은 "쾌락이 좋은 삶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묻는다. 저자는 이 물음을 세 갈래로 나눈 뒤, (1) 쾌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세 이론(감각·태도·욕구)과 (2) 쾌락은 얼마나 가치 있는가에 대한 세 입장(쾌락주의·다원주의·비관주의)을 차례로 검토한다. 핵심 사례는 하이든과 굴, 노직의 경험 기계, 쇼펜하우어의 결핍 논증이다.
0. 도입: 왜 쾌락부터 시작하나 · Introduction (pp. 3–4)
- 윤리학의 두 가지 실천적 질문: ① 남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② 내 삶이 잘 되려면 어떤 목표를 가져야 하는가.
- ②가 더 쉽다. 일단 타인을 고려하지 않고 "내 삶을 어떻게 더 낫게 만들까?"만 물으면 되기 때문. → 1부의 주제.
-
진로, 연애, 여행 vs 봉사 같은 인생 선택을 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즐거움 / 행복 / 삶의 개선(웰빙) / 의미를 따진다. (플라톤 『국가』,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이래의 전통)
-
1장은 쾌락, 2장은 행복·웰빙·삶의 의미를 다룬다.
1. 쾌락에 관한 세 질문 · Three Questions about Pleasure (pp. 4–6)
아리스토텔레스를 따라 세 질문을 구분해야 한다. (데카르트: 문제를 작은 부분으로 나눠 따로 다뤄라)
| 질문 | 감기 비유 (Ann의 감기) | 쾌락에 적용 |
|---|---|---|
| ① 원천 (causal origin) | 어떻게 감기에 걸렸나? (바이러스 전염 경로) | 무엇이 내게 쾌락을 주나? |
| ② 본성 (nature) | 감기에 걸렸다는 건 무엇인가? (상기도 감염) | 쾌락을 경험한다는 건 무엇인가? |
| ③ 가치 (evaluative) | 감기는 Ann에게 얼마나 나쁜가? | 쾌락은 얼마나 중요한가? 추구해야 하나? |
- 세 질문의 답은 서로 영향을 주지만(특히 ②→③), 일단 따로 다뤄야 명료해진다.
- ①은 철학의 일이 아니다. 무엇이 즐거운지는 각자 알고, 남의 경우는 물어보면 된다 → 심리학·사회과학의 몫.
- 예: 슈퍼테이스터(supertaster) — 인구 약 25%는 혀의 미각 수용체 밀도가 높아 위스키, 블랙커피, 자몽 등을 불쾌하게 느낀다. 이런 건 안락의자(armchair)에서 사유로는 알 수 없고 과학이 밝혀야 한다.
- 그래도 윤리학자는 원천에 관한 경험적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 ②·③을 답할 때 관련되므로.
2. 쾌락이란 무엇인가? · What Is Pleasure? (pp. 6–11)
배경: 우리는 이미 쾌락을 직접 겪어 봐서 "안다"(acquaintance). 어떤 이론이든 이 경험과 맞아야 한다. 심리학 용어로는 긍정 정서(positive affect) / 부정 정서(negative affect). 핵심 물음: 어떤 경험을 '쾌락'이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1) 감각 이론 · The sensation view (pp. 7–8) — 흄, 벤담
- 쾌락 = 그 자체로 고유하고 단순한 감각. 피아노의 '도' 음을 듣는 경험처럼, 다른 어떤 것과도 다르고 더 분석할 수 없다.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 정도로만 말할 수 있음.
- 장점: 원천이 다양하다는 점과 잘 맞음(나는 초콜릿, 친구는 강아지에게서 같은 감각을 얻음). 쾌락 간 차이는 강도(intensity)와 지속(duration)으로 설명.
- 문제: 많은 쾌락은 단순한 신체 감각이 아니라 '~에 대한' 쾌락이다. 친구의 취업이 기쁘다, 새 폰을 쓰는 게 즐겁다.
- 반박 시도: "친구 취업이 기쁘다 = 친구 취업이 쾌감을 일으켰다"로 풀면 되지 않나?
- 재반박: 원인 ≠ 대상. 이웃이 실직한 것이 원인이 되어 내 직장에 대해 기쁠 수 있지만, 내 기쁨의 대상은 이웃의 불행이 아니라 내 직장이다.
(2) 태도 이론 · The attitude view (pp. 7–8) — 브렌타노
- 쾌락 = 생각·대상·활동을 향한 특별한 태도. 그 대상을 "좋게 느껴지는 방식"으로 표상(represent)한다.
- 비유: 두려움. 우리는 그냥 두려운 게 아니라 뱀을, 실직을 두려워한다. 두려움에는 느낌도 있지만 본질은 대상을 향한 태도.
- 같은 공포영화를 보고 나는 무서워하고 친구는 즐기는 것 = 서로 다른 느낌의 다른 태도.
- 장점: '~에 대해 기쁘다', '~하는 것을 즐긴다'를 설명할 수 있다.
(3) 욕구 이론 · The desire view (pp. 8–10) — 시지윅, 케이건, 섬너, (펠드먼)
- 감각·태도 이론의 공통 문제(시지윅): 둘 다 쾌락을 "느낌이 어떠한가"로 정의하므로, 모든 쾌락이 똑같은 느낌이라고 가정해야 한다. 그런데 섹스의 쾌락과 친구와 대화하는 쾌락은 느낌이 전혀 다르다.
- 욕구 이론: 먼저 그 자체로 고유한 기본 경험이 있고, 그 경험을 하는 동안 그 경험 자체를 위해(for its own sake) 계속 원할 때 그것이 쾌락이 된다.
- 펠드먼은 자기 이론을 "태도적 이론(attitudinal theory)"이라 부르지만, 저자 분류로는 태도 이론과 욕구 이론을 합친 형태.
- 장점
- 모든 쾌락이 같은 느낌이라고 가정하지 않고도 공통점을 설명.
- 우리가 왜 쾌락을 원하는지가 사소한 참(trivial truth)이 됨: 쾌락 = 원하는 경험이니까.
- 감각·태도 이론 쪽의 반격: 소리 크기(loudness) 비유 (케이건)
- 기타 소리와 색소폰 소리는 음색·음높이가 달라도 '크기'로는 비교할 수 있다. 쾌락도 경험들이 변하는 하나의 차원(dimension)일 수 있다.
- 저자의 의심: 소리 크기에는 실제로 짚어낼 수 있는 공통 차원이 있지만, 아주 다른 쾌락들 사이에선 그런 유사성을 찾기 어렵다. (예: 매우 즐거운 경험이 늘 매우 강렬한 건 아님)
- 욕구 이론의 문제 (크리스프): 즐겁지 않은데도 그 자체로 원하는 경험이 있다. 평생 고통을 느껴본 적 없는 사람이 처음 겪는 고통을 신기해서 계속 원할 수 있음 → 욕구 이론에 따르면 이 고통이 쾌락이 되어버린다. 이상하다.
(4) 쾌락의 생리학 · Physiology of pleasure (pp. 10–11) [심화]
- 쾌락을 느낄 때: 엔도르핀·엔케팔린(오피오이드 계열, 헤로인과 같은 그룹) 분비 → 뇌 깊은 곳 배쪽 창백핵(ventral pallidum), 눈 뒤 안와전두피질(orbitofrontal cortex)의 수용체 세포에서 뉴런 발화.
- 그럼 "쾌락 = 해당 뇌 부위의 뉴런 발화"라고 하면 끝 아닌가? (심리철학의 동일론, J.J.C. Smart)
- 문제: 이것으로는 쾌락이 '어떤 느낌'이라는 점을 포착하지 못한다. 뇌에 대해 다 알아도 쾌락을 이해하려면 직접 경험해야 하고, 쾌락이 삶에서 하는 역할을 알아야 한다.
- 단, 철학 이론들도 같은 과제를 안고 있다. 욕구 이론처럼 "원하는 경험"이라고만 하면 느낌에 대해서는 별로 말해주지 않음.
3. 쾌락의 가치 · Value of Pleasure (pp. 11–19)
개념 정리 · Key concepts (pp. 11–12)
| 용어 | 뜻 | 예 |
|---|---|---|
| 타산적 가치 (prudential value) | 그것이 내 삶을 더 잘 되게 하는가, 내게 이익이 되는가 | (도덕적 가치·희극적 가치와 구별. 웃긴데 모욕적인 농담 = 희극적 가치↑ 도덕적 가치↓) |
| 도구적 가치 (instrumental value) | 다른 좋은 것을 얻는 수단으로서만 좋음 | 돈 |
| 내재적 가치 (intrinsic value) | 그 자체로 좋은 삶의 구성 요소 | 친밀한 인간관계 (많은 사람의 생각) |
핵심 질문: 쾌락은 내재적 타산적 가치를 가지는가? → 세 가지 답
| 입장 | 주장 |
|---|---|
| 쾌락주의 (hedonism) | 오직 쾌락만 내게 좋다 (고통만 나쁘다) |
| 다원주의 (pluralism) | 쾌락도 좋지만, 다른 것들도 그 자체로 좋다 |
| 비관주의 (pessimism) | 쾌락은 내 삶을 전혀 낫게 하지 못한다 |
(1) 쾌락주의 · Hedonism (pp. 12–15)
- 가족, 건강, 지식, 예술 감상 등은 그 자체로는 삶을 낫게 하지 못한다. 거기서 쾌락을 얻는 한에서만 좋다.
- 장점 (셰이퍼-랜도)
- 좋은 삶이 여러 모양인 이유를 설명: 사람마다 쾌락의 원천이 다르니까.
- "내 삶에 뭐가 좋은지는 내가 제일 잘 안다"와 맞음: 무엇이 내게 즐거운지는 내가 제일 잘 아니까.
찬성 논증 ① 식별 가능한 차이 · Argument in favor of hedonism 1: Discernible differences (p. 13) — 파핏의 기차 위 낯선 사람
- 기차에서 만난 낯선 사람이 중병이라고 한다. 그가 낫기를 바라지만 결과를 결코 알 수 없다.
- 직관: 그가 나았든 아니든 내 삶이 얼마나 잘 되는지에는 영향이 없다. 내 관점에서 알아챌 수 있는 차이를 만드는 것만 내 삶에 영향을 준다.
- 쾌락과 고통은 분명히 알아챌 수 있는 것 → 쾌락주의와 잘 맞음.
찬성 논증 ② 동기 · Argument in favor of hedonism 2: Motivation (p. 13) — 벤담
- 벤담: 자연은 인간을 고통과 쾌락이라는 "두 주권자" 아래 두었다.
- 논증 구조
- 내 삶을 낫게 하는 것은 나를 동기화할 수 있어야 한다.
- 우리를 움직이는 것은 쾌락과 고통뿐이다. (생물학적으로 그렇게 되어 있음)
- ∴ 쾌락과 고통만 타산적 가치를 가진다.
대표 반론: 하이든 vs 굴 · Haydn and the oyster (p. 14) — 크리스프
- 고전적 쾌락주의는 쾌락이 지속·강도 두 차원으로만 다르다고 본다.
- 하이든: 72년, 강렬한 쾌락이 많은 삶. 굴: 아주 희미하고 원시적인 쾌락뿐이지만 100만 년 산다.
- 지속과 강도만 따지면, 굴의 삶이 충분히 길면 결국 하이든보다 나은 삶이 된다 → 반직관적.
밀의 응답: 고급 쾌락 · Higher pleasures (pp. 13–15)
- 쾌락에는 질(quality)이라는 세 번째 차원이 있다. 소설 읽기 > 리얼리티 TV 시청.
- 어느 쪽이 고급인지 판정하는 법: 두 쾌락을 모두 경험했고 둘 다 얻을 수 있는 유능한 판정자가 "차분히, 알면서" 고르는 쪽. (예: 자쿠지에 앉아 있기보다 작곡을 택한다면 작곡이 고급 쾌락)
- 그래도 문제: 딜레마
- 질도 결국 '쾌락의 양'에 더해지는 차원이라면, 굴의 지속을 더 늘리면 낮은 강도 와 낮은 질까지 상쇄되어 다시 굴이 이긴다 → 문제 해결 실패.
- 밀처럼 하이든의 삶이 더 고귀(noble)해서 낫다고 하면 → 쾌락 말고 다른 것이 가치를 만든다는 것 → 쾌락주의 포기.
(2) 타산적 가치에 관한 다원주의 · Pluralism about prudential value (pp. 15–17)
- 쾌락 외에도 원하는 것을 얻기, 친구, 성취 등이 그 자체로 좋다. (자세한 버전은 2장)
노직의 경험 기계 · Nozick’s experience machine argument (pp. 15–16) —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1974)
- 신경과학자들이 뇌를 자극해 원하는 어떤 경험이든(위대한 소설을 쓰는 경험, 친구를 사귀는 경험 등) 느끼게 해 준다. 실제로는 전극을 단 채 탱크 속에 떠 있다. 평생 접속하겠는가? (영화 「매트릭스」와 같은 상황)
- 대부분은 접속하지 않겠다고 답한다.
- 쾌락주의라면 기계 안이 더 즐거우니 더 나은 삶이어야 한다 → 직관과 충돌 → 쾌락주의는 틀렸다.
- 노직이 꼽은, 쾌락 외에 중요한 세 가지
- 경험만 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무언가를 하는 것 (수영하는 경험 vs 실제 수영)
- 특정한 사람이 되는 것 (용감함, 친절함, 지성, 위트, 사랑 — 기계 안에선 실현 불가)
- 더 깊은 실재와의 실제 접촉 (진짜 사람과 대화, 진짜 예술 감상)
쾌락주의자의 두 가지 응답 · Two responses to Nozick (pp. 16–17)
| 응답 | 내용 | 평가 |
|---|---|---|
| ① 현상 유지 편향 (드 브리가드, 2010) | 우리는 변화가 더 나아도 익숙한 상태를 고수하려는 편향이 있다. 그래서 기계 안 삶이 얼마나 좋은지 못 볼 뿐. | 실패. 그 논리라면 직관 전반을 못 믿게 되어, 쾌락주의를 지지하는 직관도 함께 무너진다. |
| ② 욕구 이론으로 반격 (펠드먼, 2004) | 노직은 기계 안에서도 "똑같이 즐거운" 경험을 한다고 가정한다. 그런데 욕구 이론에 따르면, 내가 진짜 경험을 원한다면 기계 속 시뮬레이션은 내가 원하는 경험이 아니므로 쾌락이 아니다. 기계 안에선 즐겁다고 믿을 뿐(거짓 믿음). → 기계 안 삶은 쾌락이 더 적어서 더 나쁘다. | 저자가 "더 나은 응답"으로 평가 |
💡 연결고리: 2절의 쾌락의 본성 이론(욕구 이론)이 3절의 가치 논쟁에서 쾌락주의를 구하는 데 쓰인다. 1절에서 "세 질문의 답은 서로 영향을 준다"고 한 것의 실제 사례.
(3) 쾌락의 가치에 관한 비관주의 · Pessimism about the value of pleasure (pp. 17–19) [심화] — 쇼펜하우어
-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4권
- 논증
- 우리는 삶에 결핍(lack)을 느낄 때만 무언가를 원한다. 결핍의 경험 = 고통. (배고픔 = 음식의 결핍, 불쾌함)
- 원하는 걸 못 얻으면 → 고통 지속.
- 원하는 걸 얻으면 → 잠깐의 쾌락·만족. 그러나 이는 결핍의 제거일 뿐, 플러스로 가는 게 아니라 중립적 기준선(0점)으로 돌아온 것이다.
- 게다가 쾌락은 곧 권태(boredom)로 이어지고, 우리는 새로운 결핍을 찾아 다시 고통받는다.
- ∴ 쾌락은 타산적 가치가 (거의) 없다.
-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은 균형을 찾는다: 절망하지 않을 만큼은 성공하고, 권태에 빠지지 않을 만큼은 실패한다.
- 저자가 보는 이 논증의 의의 세 가지
- "즐기면 잘 사는 거지"라는 안일함에 도전하고, 쾌락 외에 무엇이 중요한지 생각하게 한다.
- 최신 기기나 소비재가 정말 삶을 낫게 하는지 묻게 한다. 곧 질릴 것이다.
- 비판적 사고 연습용 과녁: 약점이 있다.
- 나를 고통스럽게 하던 결핍을 없애는 게 왜 아주 좋은 일일 수 없나?
- 정말 원하는 걸 가지면 늘 질리나? 가족이나 친구에게도 질리나?
4. 등장 철학자 정리 · Philosophers in This Chapter
| 인물 | 쪽 | 이 장에서의 역할 |
|---|---|---|
|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 4 | 좋은 삶에 대한 물음의 출발점. 아리스토텔레스: 세 질문 구분 |
| 데카르트 | 5 | 문제를 작은 부분으로 나눠라 |
| 흄, 벤담 | 7, 13 | 감각 이론. 벤담: 쾌락·고통이라는 "두 주권자" (동기 논증) |
| 브렌타노 | 7 | 태도 이론 |
| 시지윅 | 8–9 | 감각·태도 이론 비판(모든 쾌락이 같은 느낌은 아님), 욕구 이론 |
| 케이건 | 9–10 | 욕구 이론 / 소리 크기 비유 소개 |
| 섬너, 펠드먼 | 9, 17 | 욕구 이론. 펠드먼: 경험 기계에 대한 쾌락주의의 반격 |
| 크리스프 | 10, 14 | 처음 겪는 고통 반례(욕구 이론 비판), 하이든과 굴 사례 |
| 셰이퍼-랜도 | 12 | 쾌락주의의 장점 정리 |
| 파핏 | 13 | 기차 위 낯선 사람 (식별 가능한 차이 논증) |
| J.S. 밀 | 14–15 | 고급 쾌락, 유능한 판정자 |
| 노직 | 15–17 | 경험 기계 → 다원주의 |
| 드 브리가드 | 16–17 | 현상 유지 편향으로 노직에 응답 (실험철학) |
| 쇼펜하우어 | 17–19 | 비관주의, 결핍과 권태 |
5. 핵심 용어 · Key Terms
| 영어 | 한국어 | 쪽 | 한 줄 설명 |
|---|---|---|---|
| sources / causal origins of pleasure | 쾌락의 원천 | 5 | 무엇이 쾌락을 일으키는가 (경험과학의 영역) |
| nature of pleasure | 쾌락의 본성 | 5 | 어떤 경험을 쾌락이게 하는 것 |
| positive / negative affect | 긍정 / 부정 정서 | 7 | 심리학에서 넓은 의미의 쾌락·고통 |
| sensation view | 감각 이론 | 7 | 쾌락 = 고유하고 분석 불가능한 단순 감각 |
| attitude view | 태도 이론 | 7 | 쾌락 = 대상을 좋게 느껴지게 표상하는 태도 |
| desire view | 욕구 이론 | 9 | 쾌락 = 겪는 동안 그 자체로 원하는 경험 |
| supertaster | 슈퍼테이스터 | 6 | 미각 수용체가 많아 맛을 강하게 느끼는 사람 (약 25%) |
| prudential value | 타산적 가치 | 11 | 당사자의 삶을 더 잘 되게 하는 가치 |
| intrinsic value | 내재적 가치 | 11 | 그 자체로 좋음 |
| instrumental value | 도구적 가치 | 11 | 다른 좋은 것의 수단으로서 좋음 |
| hedonism | 쾌락주의 | 12 | 오직 쾌락만 내재적으로 좋다 |
| pluralism (about prudential value) | (타산적 가치에 관한) 다원주의 | 12 | 쾌락 외에도 여러 것이 내재적으로 좋다 |
| pessimism (about pleasure) | (쾌락에 관한) 비관주의 | 12 | 쾌락은 삶을 낫게 하지 못한다 |
| higher / lower pleasures | 고급 / 저급 쾌락 | 14 | 밀: 쾌락의 질적 차이 |
| experience machine | 경험 기계 | 15 | 노직의 사고실험 |
| status quo bias | 현상 유지 편향 | 16 | 익숙한 상태를 고수하려는 심리적 경향 |
| thought experiment | 사고실험 | 15 | 가상 상황으로 직관을 시험하는 방법 |
6. 장 끝 토론 질문 · Summary and Questions (pp. 19–20) + 생각해 볼 방향
-
세 질문(원천·본성·가치)을 (i) 아침식사, (ii) 가족, (iii) 종교에 적용해 보라.
- 예) 아침식사: 원천 = 어떤 음식이 아침으로 나오게 됐나 / 본성 = 무엇이 어떤 식사를 '아침식사'로 만드나 (시간? 메뉴?) / 가치 = 아침을 먹는 게 얼마나 좋은가.
- 종교에 적용하면 본성 질문이 특히 어렵다. 종교를 종교이게 하는 건 신앙? 의례? 공동체?
-
감각·태도·욕구 이론의 주요 차이는? 어느 쪽이 가장 그럴듯한가?
- 비교 기준: ⓐ '~에 대한 쾌락'을 설명하나 (감각 ✗, 태도 ○) ⓑ 느낌이 다른 쾌락들을 설명하나 (감각·태도 ✗, 욕구 ○) ⓒ 반례에 버티나 (욕구: 처음 겪는 고통 반례)
-
소리 크기 비유로 '모든 쾌락이 같은 느낌은 아니다'라는 반론을 막을 수 있나?
- 저자는 회의적. 소리 크기처럼 짚어낼 수 있는 공통 차원이 쾌락에도 있는지가 관건.
-
경험 기계에 접속하겠는가? 왜?
- 접속 안 한다면: 노직의 세 이유 중 어느 것이 내게 가장 와닿나?
- 펠드먼식 응답(욕구 이론)이 노직의 결론을 정말 무력화하나? → 쾌락주의가 '진짜 경험을 원하는 욕구'에 기대는 순간, 이미 실재와의 접촉이 중요하다고 인정하는 건 아닐까?
-
쇼펜하우어의 비관주의 논증은 어디서 틀렸나?
- 저자 힌트: 결핍 제거가 왜 좋은 일일 수 없나? / 가족·친구에게도 질리나?
- 추가로: 모든 욕구가 결핍에서 나오나? 호기심이나 새로운 음악을 듣는 즐거움은 결핍의 해소인가?
7. 더 읽을거리 · Annotated Bibliography (저자 추천 중 입문용) (pp. 20–22)
- Shafer-Landau, The Fundamentals of Ethics (2010) — 저자가 이 책과 함께 읽기를 강력 추천
- Katz, "Pleasure",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 쾌락 철학 개관 (온라인 무료)
- Feldman, Pleasure and the Good Life (2004) — 최근 쾌락주의 옹호의 대표작
- Crisp, Mill on Utilitarianism (1997) — 밀과 고급 쾌락
- Bloom, How Pleasure Works (2010) — 쾌락의 심리학 (교양서)
- Nozick, Anarchy, State, and Utopia (1974) pp. 42–43 — 경험 기계 원문
💬 토론 질문 · Discussion Questions
-
펠드먼의 응답(3절 (2), pp. 16–17)이 성공하려면, 욕구 이론에서 '그 경험 자체를 위해 원한다'고 할 때 원하는 대상이 '느껴지는 그대로의 경험'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나는 경험'이어야 한다. 이렇게 해석하면 쾌락은 더 이상 순수한 경험 상태가 아니다. 이것은 2절이 내건 기준, 곧 어떤 이론이든 우리가 직접 겪어 아는 쾌락 경험과 맞아야 한다는 기준과 양립하는가?
- 왜 이 질문인가: 2절 (3)의 욕구 이론은 쾌락을 "겪는 동안 그 경험 자체를 위해 원하는 경험"으로 정의한다. 기계 안의 사람은 경험이 진짜라고 믿으며 그 경험을 원하므로, 경험 내용만 보면 쾌락의 조건을 채운다. 펠드먼이 기계 속 쾌락을 '거짓 믿음'으로 깎아내리려면 욕구의 대상에 실재 여부를 끌어들여야 한다. 그러면 쾌락이 마음 밖의 사실에 의존하게 되어, 감각·태도 이론과 함께 서 있던 '경험으로서의 쾌락'이라는 출발점이 흔들린다.
-
파핏의 기차 위 낯선 사람 직관(p. 13)은 내 관점에서 알아챌 수 있는 차이만 내 삶에 영향을 준다고 말한다. 경험 기계 직관(pp. 15–16)은 알아챌 수 없는 차이(기계 안인가 밖인가)가 내 삶을 바꾼다고 말한다. 둘 중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어느 쪽을, 어떤 원칙에 따라 버려야 하는가?
- 왜 이 질문인가: 기계 안에서는 실재와 시뮬레이션의 차이를 결코 알아챌 수 없으므로, 식별 가능한 차이 논증을 그대로 적용하면 기계 안의 삶이 더 나은 삶이 된다. 저자는 드 브리가드의 현상 유지 편향 응답을 "직관 전반을 못 믿게 만든다"는 이유로 기각했다(pp. 16–17). 그런데 여기서는 직관끼리 정면으로 부딪치므로 어느 하나는 반드시 버려야 한다. 직관을 골라서 불신하는 원칙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그 원칙이 드 브리가드의 방식과 정말 다른지가 문제가 된다.
-
밀의 유능한 판정자 기준(pp. 14–15)은 두 쾌락을 모두 경험한 사람의 선택에 기댄다. 그런데 하이든과 굴 사례(p. 14)의 핵심 변수인 '100만 년의 지속'은 어떤 판정자도 경험할 수 없다. 그렇다면 밀의 방법은 바로 그 반론에 답하는 데 원리상 쓸 수 없는 도구가 아닌가?
- 왜 이 질문인가: 노트는 밀의 응답이 '질도 양에 더해지는 차원이라면 지속을 늘려 상쇄된다'는 딜레마에 빠진다고 정리한다. 그 앞에 방법의 문제가 하나 더 있다. 질의 우열은 판정자가 직접 비교해 본 경험으로 정해지는데, 굴 반론은 강도나 질이 아니라 인간이 겪을 수 없는 규모의 지속에 기대고 있다. 판정자는 질의 순위는 정할 수 있어도 질과 지속을 맞바꾸는 비율은 정하지 못하며, 반론이 겨누는 곳이 바로 그 비율이다.
-
욕구 이론을 받아들이면 '우리가 쾌락을 원한다'는 것은 사소한 참이 된다(2절 (3)). 그러면 벤담의 동기 논증(p. 13)의 둘째 전제 '우리를 움직이는 것은 쾌락과 고통뿐이다'도 정의상 참이 되어 경험적 내용을 잃는다. 쾌락주의자는 쾌락의 본성 이론으로 욕구 이론을 택하면서 동시에 동기 논증을 쾌락주의의 근거로 쓸 수 있는가?
- 왜 이 질문인가: 1절은 세 질문의 답이 서로 영향을 준다고 했고, 노트의 연결고리 상자는 그 사례로 욕구 이론이 경험 기계 반론을 막는 장면을 든다. 같은 연결은 반대 방향으로도 작동한다. 쾌락이 곧 '원하는 경험'이라면 "우리는 쾌락에 의해서만 움직인다"는 "우리는 원하는 것에 의해 움직인다"와 거의 같은 말이 되어, 쾌락과 다른 좋음을 가르는 힘을 잃는다. 펠드먼식 쾌락주의가 한 반론을 막는 대가로 자기 찬성 논증 하나를 약하게 만드는지 따져 볼 일이다.
-
욕구 이론에 따르면 쾌락은 어떤 경험을 '하는 동안' 그 경험 자체를 위해 계속 원하는 것이다(2절 (3), pp. 8–10). 이 욕구는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향한다. 쇼펜하우어의 첫 전제, 곧 우리는 결핍을 느낄 때만 무언가를 원하고 결핍의 경험은 고통이라는 전제(3절 (3), pp. 17–19)와 이 욕구는 함께 설 수 있는가? 이 욕구를 '앞으로도 계속되기를' 바라는 결핍으로 다시 읽으면 쇼펜하우어는 모든 쾌락이 고통을 품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게 되는데, 그렇다면 쾌락의 본성 이론이 쾌락의 가치 논쟁의 승패를 미리 정하는 셈이 아닌가?
- 왜 이 질문인가: 노트의 연결고리 상자는 본성 이론(욕구 이론)이 가치 논쟁에서 쾌락주의를 구하는 장면만 보여 준다. 그런데 같은 이론이 비관주의 쪽으로도 쓰일 수 있다. 욕구 이론의 욕구가 지금 있는 경험을 향한다면 '모든 욕구는 결핍에서 나온다'는 전제의 반례가 된다. 반대로 지속에 대한 결핍으로 읽으면 쇼펜하우어의 '0점으로 돌아올 뿐'이라는 진단이 쾌락 경험 안으로 들어온다. 1절이 말한 '세 질문의 답이 서로 영향을 준다'는 점이 어느 방향으로 작동하는지, 욕구 이론이 이 해석을 스스로 정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 나의 메모 · My Note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