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ssi Suikkanen, This Is Ethics: An Introduction (Wiley-Blackwell, 2015) 3부 「메타윤리학(Metaethics)」 · 책 쪽수 pp. 167–194 ※ 쪽수는 책에 인쇄된 쪽수예요. PDF 뷰어에서도 같은 번호로 보여요.
한눈에 보기 · Overview
6장의 주관주의·상대주의·신명론이 설득력이 없다면, 옳고 그름은 누가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이 존재하는 속성이라는 도덕 실재론이 남는다. 실재론자들 사이의 큰 논쟁은 도덕 속성이 무게나 길이 같은 자연적 속성인가(자연주의), 아니면 전혀 다른 고유한 종류의 속성인가(비자연주의)이다. 이 장의 중심은 비자연주의를 지지하는 무어의 열린 질문 논증을 다섯 단계로 짚고, 이에 대한 세 가지 응답(선결문제 요구, 암묵적 노하우, 뜻과 지시체의 구분)을 살펴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관찰할 수 없는 비자연적 속성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는지에 대한 전통적 답인 직관주의(자명한 명제)를 다룬다.
0. 도입: 도덕 실재론 · Moral Realism (pp. 167–168)
- 6장의 견해들이 그럴듯하지 않다면 다른 선택지는? → 이 장은 도덕 실재론, 다음 장(8장)은 표현주의.
- 도덕 실재론(moral realism): 옳음과 그름은 마음과 독립적인(mind-independent) 도덕 속성이다.
- 어떤 행위가 옳은 건 내가 승인해서도, 신이 명령해서도 아니다. 그 행위가 그냥 '옳음'이라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 '마음과 독립적' = 행위가 옳은지 그른지가 누가 그 행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달려 있지 않다.
- 비유: 어떤 물체는 무겁고, 빠르고, 탄소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어떤 행위는 10초만 걸리고, 힘이 많이 들고, 저녁에만 일어난다. 이 중 어느 것도 내 생각에 달려 있지 않다. 실재론자는 도덕 속성도 그렇다고 본다.
1. 자연주의 vs. 비자연주의 · Naturalism vs. non-naturalism (pp. 168–169)
- 두 진영 모두 실재론자다. 즉 어떤 행위가 옳음이라는 속성을 가지는 것은 어떤 물체가 탄소 원자로 이루어진 것처럼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본다. 다투는 건 그 도덕 속성이 어떤 종류인가이다.
자연적 속성(natural properties)의 세 가지 특징 · Three distinguishing features of natural properties (p. 168) — 무어, 루이스, 콥
| # | 특징 | 예: 행위가 지속되는 시간 |
|---|---|---|
| i | 경험적으로 관찰할 수 있다 | 얼마나 오래 걸리는지 볼 수 있다 |
| ii | 과학적으로 연구할 수 있다 | 과학 도구로 잴 수 있다 |
| iii | 그 속성을 가지는 것이 다른 일을 일으킬(cause) 수 있다 | 너무 길면 지루해진다 |
- 단, 모든 자연주의자가 세 특징을 다 요구하지는 않는다. 관찰할 수 있기만 하면 자연적 속성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두 입장 · Naturalists and non-naturalists (pp. 168–169)
| 자연주의(naturalism) | 비자연주의(non-naturalism) (댄시) | |
|---|---|---|
| 핵심 주장 | 옳음·그름 같은 도덕 속성은 자연적 속성이다 | 도덕 속성은 자연적 속성이 아니다. 완전히 다른 종류의 속성이다 |
| 알 수 있는 방법 | 어떤 행위가 옳은지 관찰하고 과학적으로 연구할 수 있다 | 경험적으로 관찰할 수도, 과학적으로 연구할 수도 없다 |
| 인과적 힘 | 있다. 예: 노예제의 그름이 사람들을 항의하게 만든다 (스터전) | 아무것도 일으키지 못한다 |
| 구체적 버전 | 옳음 = 행복을 최대화함 (밀) / 옳음 = 결과를 생생하게 상상했을 때 그 행위를 욕구하기를 욕구하게 될 것 (루이스) → 둘 다 경험적으로 검사 가능 | 도덕 속성은 빅뱅이 그냥 일어났듯 우주에 추가로 그냥 존재한다 (대부분 신이 만들었다고 보지 않음) |
비자연주의 이해를 돕는 사고실험: 신이 우주를 복제한다면 · God creates a new universe (p. 169)
- 신이 우리 우주의 복제품을 만든다. 모든 원자의 쌍둥이를 만들고 똑같이 배열한 뒤, 잠시 쉰다.
- 이 시점의 새 우주에는 탁자, 자동차, 사자와 그 질량·전하·크기 같은 자연적 속성은 다 있다.
- 비자연주의자에 따르면 그래도 아직 아무것도 옳거나 그르지 않다. 쉬고 난 뒤 신은 옳음과 그름을 따로 더 넣어야 한다. 그것들이 비자연적 속성이기 때문이다.
2. 비자연주의의 장단점 · Pros and cons of non-naturalism (pp. 169–171)
장점: 도덕 속성은 관찰되지도, 인과를 설명하지도 않는 것 같다 · Advantages: moral properties are not seen and cause nothing (pp. 169–170)
하먼의 고양이 사례 · Harman's burning cat (pp. 169–170)
- 파티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이 고양이에 불을 붙이는 걸 본다.
- "그게 그르다는 걸 그냥 봤다"고 말하고 싶지만, 이건 비유일 뿐이다. 실제로 본 건 아이들, 고양이, 휘발유, 불붙는 고양이다. 그름 자체는 보지 못했다. 본 것이 그르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과학과 인과적 설명에서도 마찬가지 · The same goes for science (p. 170)
- 거대한 입자 가속기는 옳고 그름을 감지하지 않고, 화학 교과서에 도덕 속성 장(章)은 없다.
- 사람들이 어떤 정책에 항의하는 이유를 정책의 부정의함으로 설명해야 할까? 더 기본적인 설명이 있다. 특정 집단을 자의적으로 차별하거나 많은 사람을 가난하게 만들고, 사람들이 그걸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자연적 속성만으로도 충분하다.
- (참고: 바로 이 이유로 일부 자연주의자는 도덕 속성이 바로 그런 영향력 있는 자연적 속성이라고 본다.)
- → 비자연주의자의 결론: 도덕 속성은 고유한 종류다 (무어). 그러니 과학으로 옳고 그름을 탐구할 수는 없다.
단점 · Problems with non-naturalism (pp. 170–171)
문제 1: 그럼 도덕 속성은 어떤 것인가? · Problem 1: What are they like, then? (pp. 170–171) (자연적 속성이 아니라는 말만으로는 부족)
- 흔한 답: 규범성(normativity) 때문에 특별하다 (댄시). 도덕 속성은 특정하게 행동하라고 요구하는 권위를 가진다. 예: 거짓말이 그르다는 사실은 거짓말하지 말라고 요구한다.
- 하지만 이 '요구하는 능력'이 무엇인지 설명하기도 똑같이 어렵다.
- 철학자들이 내놓은 최선의 답: 도덕 속성은 고유한 실천적 관련성을 가진다. 곧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직접 관련된다.
| 무엇을 할지와의 관계 | |
|---|---|
| 도덕 속성 (예: 그름) | 그르면 → 그렇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 바로 정해짐 |
| 자연적 속성 (예: 남을 웃게 함) | 그것만으로는 무엇을 할지 열려 있다. 관련 여부는 늘 별도의 사실 |
문제 2: 어떻게 알 수 있는가? · Problem 2: How could you know? (p. 171) (도덕적 앎의 문제)
- 도덕 속성이 아무것도 일으키지 않고 관찰도 과학적 연구도 안 된다면, 어떤 행위가 그 속성을 가지는지 어떻게 아나? → 7절 직관주의에서 다룸.
3. 무어의 열린 질문 논증 · The Open Question Argument (pp. 171–175)
- 무어(G.E. Moore), 『윤리학 원리(Principia Ethica)』(1903) 1장. 도덕 속성이 단순하고 고유한 비자연적 속성임을 보이려는 논증.
- 무어 이전에도 프라이스, 시지윅이 비슷한 논증을 했다.
- 논증에는 문제가 있지만 여전히 중요하다. 어떤 이론이든 이 논증 뒤의 강력한 직관을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준비: 세계와 언어를 구분하기 · The world and language (pp. 171–172)
| 세계 (대상과 속성) | 언어 (단어와 문장) |
|---|---|
| 버락 오바마, 에펠탑, 내 이빨 | 이것들을 서술하는 말 |
| 오바마는 키가 크다, 에펠탑은 철로 만들어졌다 | 단어는 뜻을 가지고 세계의 대상·속성을 가리킨다 |
| 빨강은 삼원색 중 하나다 (따옴표 없음) | "red"는 세 글자로 되어 있다. 단어 "red" 자체에는 색이 없다 (따옴표 있음) |
- 철학의 관례: 단어를 말할 때는 따옴표를 쓴다. 지금 세계를 말하는지 언어를 말하는지 늘 구분해야 한다.
1단계: 단어와 속성 · Stage 1: Words and properties (pp. 172–173)
- 단어의 두 가지 본질적 속성
- 뜻(meaning): 그 단어를 쓸 때 대략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 예: "아이스크림" → 유제품으로 만든, 트럭이나 마트에서 파는 얼린 디저트 (로크의 단순한 견해)
- 지시체(reference): 그 단어가 골라내는 대상·속성·물질. 예: "에펠탑" → 1889년 파리에 세워진 높은 철 구조물
- 핵심 가정: 뜻이 지시체를 결정한다. "눈"을 쓸 때 '차갑고 하얗고 겨울에 하늘에서 내리는 것'을 떠올리기 때문에, 이 단어는 겨울에 땅을 덮는 그 물질을 가리킨다. 지시체 = 머릿속 생각을 만족시키는 것.
- 여기서 나오는 전제:
전제 1. 서로 달라 보이는 두 속성이 실은 같은 속성이라면, 그 속성들을 말하는 두 단어는 같은 뜻을 가져야 한다.
- 예: "할머니" = "어머니나 아버지의 어머니". 두 표현을 쓸 때 같은 생각을 떠올리므로 올바른 정의다. → 할머니임과 부모의 어머니임은 같은 속성.
- 왜 핵심 가정에서 따라 나오나: 머릿속 생각이 지시체를 정한다면, 생각이 다르면 다른 것을, 생각이 같으면 같은 것을 가리키게 된다.
2단계: 도덕적 단어와 도덕 속성 · Stage 2: Moral words and moral properties (p. 173)
전제 2. '좋음' 같은 도덕 속성이 자연적 속성이라면, "좋다"라는 단어는 자연적 속성을 말하는 어떤 단어들과 같은 뜻이어야 한다.
- 즉 좋음이 자연적 속성이려면 "좋다"가 "행복을 최대화하는 것"이나 "결과를 생생하게 상상할 때 욕구하기를 욕구하는 것" 같은 말과 같은 뜻이어야 한다.
- 정의(definition)의 말로 바꾸면: "좋다"를 자연적 속성을 가리키는 말로 올바르게 정의할 수 있어야만 좋음은 자연적 속성이다.
3단계: 열린 질문 테스트 · Stage 3: The open question test (pp. 173–174)
- 두 단어가 같은 뜻인지 확인하는 테스트. (논증의 이름이 여기서 나왔다.) 정의가 올바른지 확인하는 테스트이기도 하다.
- 방법: 제안된 정의를 만족하는 대상 X를 하나 잡고 "X는 A다. 그런데 B인가?"라고 물어 본다.
- 어떻게 답할지 고민을 시작할 수 없다 → 닫힌 질문 → 같은 뜻
- 고민을 시작할 수 있다 → 열린 질문 → 다른 뜻
| 정의 후보 | 테스트 질문 | 결과 | 왜? |
|---|---|---|---|
| "형제" = "남자 동기" | "리처드는 내 남자 동기다. 그런데 형제인가?" | 닫힘 | 사실상 "남자 동기인데 남자 동기인가?"를 묻는 셈. 같은 생각이 두 번 떠오른다 |
| "디저트" = "달콤한 것" | "바나나는 달다. 그런데 디저트인가?" | 열림 | 바나나를 디저트로 먹을 수는 있지만, 바나나를 먹을 때마다 디저트를 먹는 건가? 논란이 된다 → 같은 뜻이 아님 |
전제 3. 단어 "A"와 "B"는 질문 "X는 A다. 그런데 B인가?"가 열린 질문일 때, 그리고 그때에만 서로 다른 뜻이다. 어떻게 답할지 고민을 시작할 수 있으면 열린 질문, 없으면 닫힌 질문이다.
4단계: 도덕적 단어와 열린 질문 · Stage 4: Moral words and open questions (pp. 174–175)
- 공리주의자: "좋다" = "일반 행복을 최대화하는 것".
- 이 책을 읽는 행위가 다른 어떤 행위보다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고 가정하자. 이제 물어 보자: "이 책을 읽는 것은 일반 행복을 최대화한다. 그런데 좋은가?"
- 무어: 이런 질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
- 자연적 속성을 가리키는 말로 행위를 정확히 서술해도, 그 행위가 좋은지 고민할 여지는 늘 남는다.
- 나중에 "좋다"고 결론 내리더라도, 그건 단어의 뜻만으로 참인 것이 아니다.
전제 4. "X는 N이다. 그런데 X는 좋은가?" 꼴의 질문(N은 자연적 속성을 말하는 단어)은 언제나 열린 질문이다.
5단계: 논증 조립하기 · Stage 5: Putting the argument together (p. 175)
| 단계 | 내용 | 근거 |
|---|---|---|
| 전제 1 | 두 속성이 같다면 → 두 단어는 같은 뜻 | 뜻이 지시체를 결정한다 |
| 전제 2 | 좋음이 자연적 속성이라면 → "좋다"는 어떤 자연적 속성 단어와 같은 뜻 | 전제 1을 윤리에 적용 |
| 전제 3 | "X는 A인데 B인가?"가 열려 있으면 ↔ "A"와 "B"는 다른 뜻 | 열린 질문 테스트 |
| 전제 4 | "X는 N인데 좋은가?"는 언제나 열려 있다 | 사람들의 실제 반응 |
| 중간 결론 | "좋다"는 어떤 자연적 속성 단어와도 같은 뜻이 아니다 (자연적 속성 단어만으로 도덕어를 올바르게 정의할 수 없다) | 전제 3 + 전제 4 |
| ∴ 결론 | 도덕 속성(좋음 등)은 자연적 속성이 아니다 | 중간 결론 + 전제 2 |
- 무어는 여기서 좋음이 고유한 종류의 비자연적 속성이라고 믿게 되었다.
4. 열린 질문 논증에 대한 세 가지 응답 · Responses to the Open Question Argument (pp. 176–181)
- 무어의 논증은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메타윤리학 연구는 지금도 대부분 이 논증의 그늘 아래 있다(다월·기버드·레일턴). 하지만 위의 전통적 형태 그대로 통한다고 보는 사람은 사실상 없다.
| 응답 | 공격 대상 | 핵심 |
|---|---|---|
| 1. 선결문제 요구 (프랭케나) | 전제 4 | 무어는 결론을 전제로 깔았다 |
| 2. 노하우 명시하기 (소엄스, 스미스) | 전제 3의 숨은 가정 | 같은 뜻인지 늘 쉽게 알 수 있는 건 아니다 |
| 3. 뜻/지시체 구분 (크립키) | 전제 1 | 뜻이 달라도 같은 것을 가리킬 수 있다 |
응답 1: 선결문제 요구 · Response 1: Begging the question (pp. 176–177) — 프랭케나
- 용어 정리
- 일상 용법: "이 증세 정책은 '고소득자가 세금 낮은 나라로 떠나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불러일으킨다(beg the question)" = 뻔한 질문이 떠오르게 한다.
- 철학 용법: 결론을 전제 중 하나로 사용하는 것. 예: 신이 존재한다는 논증의 전제가 이미 신의 존재에 기대고 있으면, 이미 믿는 사람만 그 논증으로 결론을 낼 수 있다. 새로운 이유를 주지 못한다.
- 프랭케나의 주장: 무어는 자연주의가 거짓이라는 것을 이미 전제로 깔았다. 무어의 논증을 받아들이려면 이미 비자연주의자여야 한다.
- 자연주의자 입장에서 보기
- 좋음 = 일반 행복의 최대화라고 확신하는 사람에게 "행복을 최대화하는데 좋은가?"는 닫힌 질문이다. 답이 너무 뻔하다.
- 그러니 무어는 두 표현이 다른 뜻이라는 걸 그냥 가정했고, 그래서 이 질문을 닫힌 질문으로 여기는 사람을 헷갈린 사람으로 본 셈이다.
- 반박: 무어는 그냥 가정한 게 아니다. 보통 사람들 다수가 이런 질문을 실제로 고민한다는 증거가 있었다. 나가서 물어 봐도 이 질문이 바보 같다는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 그러니 우리가 공유하는 언어에서 "좋다"가 "일반 행복을 최대화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고 말할 자격이 있다. → 자기 취향(자연주의가 싫음)에 기댄 게 아니므로 선결문제 요구가 아닌 것 같다.
응답 2: 노하우를 명시하기 · Response 2: Making know-how explicit (pp. 177–179) — 소엄스, 스미스
- 공격 대상: 논증의 숨은 가정 — 두 단어가 같은 뜻인지는 언제나 쉽게 알 수 있다.
- 이 가정이 참일 때만 열린 질문 테스트가 뜻의 같음을 확인하는 데 쓸모 있다.
- 예: "할머니"와 "어머니나 아버지의 어머니"는 같은 뜻이 투명하게 드러나므로, "앤은 내 어머니의 어머니인데 할머니인가?"를 고민할 수 없다.
- 그러나 같은 뜻인지 늘 쉽게 아는 건 아니다(스미스). 같은 뜻인 두 단어를 그런 줄 모르고 쓸 수 있다. 그러면 단어가 같은 뜻이어도 질문은 열려 있다고 느껴진다 → 테스트가 실패하고 논증 전체가 무너진다.
구체적 설명: 노하우와 이론적 지식 · Skills (know-how) and theoretical knowledge (p. 178)
| 노하우 (기술) | 이론적 지식 |
|---|---|
| 자전거 탈 줄 앎 | 2 + 2 = 4임을 앎, 케네디가 미국 대통령이었음을 앎 |
- 새 단어를 배울 때 우리는 사실을 배우는 게 아니라 사물을 이름표 아래 분류하는 기술을 배운다. "초록"과 "파랑"을 배울 때 정의를 배운 게 아니라, 초록색 것과 파란색 것을 구분해 반응하는 법을 배웠다.
- 도덕어도 마찬가지다. 자라면서 남들이 행위를 "좋다", "나쁘다"로 분류하는 것을 보고 따라 한다. 처음엔 아기가 소를 "말"이라고 부르듯 틀리고, 남들이 바로잡아 준다. 점차 남들이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분류하는 기술을 익힌다.
- 기술을 익힌 뒤에는 아무렇게나 분류하지 않는다. 머릿속에서 암묵적 기준을 쓴다. 예: 한 번도 따져 본 적 없어도 '여러 장의 종이를 묶은 것'을 기준으로 "책"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책"이라는 말은 그것을 뜻한다. 나에게 분명하지 않더라도.
- 자연주의자의 응답: "좋다"의 올바른 정의("일반 행복의 최대화" 등)는 우리가 행위를 "좋다"고 분류할 때 암묵적으로 쓰는 원리를 명시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몰라도 그게 내가 뜻하는 바다.
- 그래서 질문이 열린 이유가 설명된다: "행복을 최대화하는데 좋은가?"를 물을 때 나는 암묵적 분류 능력에 기대고 있지, 뜻에 대한 명시적 지식을 쓰고 있지 않다. → 열린 질문이 있어도 "좋다"는 "일반 행복의 최대화"를 뜻할 수 있다. 자연주의가 살아남는다.
이 응답의 문제 · One potential problem with this response (p. 179) — 볼드윈
- 내가 무엇을 뜻하는지가 늘 쉽게 드러나진 않아도, 완전히 숨겨질 수는 없다. 충분히 생각하면 어떤 원리를 쓰는지 알 수 있다.
- ① 제안된 원리를 여러 사례 판단과 대조해 본다. 맞지 않으면 내가 쓰는 원리가 아니다.
- ② 그 원리가 얼마나 자연스럽게 느껴지는지 본다. 단어를 쓸 때 정말 떠올릴 법한가?
- 열린 질문 논증 지지자는 이를 이용해, 자연주의자가 내놓는 정의마다 "내 사용법과 안 맞는다", "너무 낯설다"고 반박할 수 있다. 충분히 많은 경우에 그렇다면, 도덕어는 자연적 속성의 말로 정의될 수 없다고 생각할 자격이 생긴다.
응답 3: 뜻과 지시체의 구분 · Response 3: The sense/reference distinction (pp. 179–181) — 크립키
- 공격 대상: 전제 1 ("암여우임"과 "암컷 여우임"이 같은 속성인 건 두 말이 같은 뜻이기 때문이다).
- 핵심: 단어의 뜻(머릿속에 떠올리는 것)이 지시체를 결정하지 않는다. → 뜻이 다른 단어도 같은 속성을 가리킬 수 있다.
| 예 | 뜻 (떠올리는 생각) | 지시체 |
|---|---|---|
| "저녁별" / "샛별(아침별)" | 저녁에 처음 보이는 별 / 아침에 마지막까지 보이는 별 | 둘 다 금성 |
| "물" / "H₂O" | 투명하고 맛·냄새 없는, 하늘에서 내리고 바다를 채우는 액체 / 수소·산소 원자의 특정 배열 | 같은 물질 (병 속 액체가 다른 화학 구성이면 물이 아니다) |
- → 무어의 전제 1은 틀렸다. "좋다"와 "일반 행복을 최대화하는 것"은 뜻이 달라도 같은 속성을 가리킬 수 있다. 열린 질문 논증은 좋음이 자연적 속성이 아님을 보이지 못한다.
이 응답이 낳은 현대 자연주의 · Contemporary forms of metaethical naturalism (pp. 180–181)
| 분석적 자연주의 (이전) | 종합적 자연주의 (새로운) (보이드) | |
|---|---|---|
| 주장 | 도덕 언어는 비도덕적·자연주의적 언어로 완전히 이해될 수 있다 | 도덕어는 자연적 속성 단어와 같은 뜻이 아니다. 그래도 자연적 속성을 가리킨다 |
| 방법 | 개념(뜻) 분석 | 경험적 탐구: 저녁별·샛별 = 금성이 천문학적 발견, 물 = H₂O가 화학적 발견이었듯, 좋음이 어떤 자연적 속성인지 찾아야 한다. 우리가 언제 도덕어를 쓰는지를 가장 잘 설명하는 자연적 속성에 주목 |
- 그래도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 무어 옹호자들이 이 반론에 대처하는 새 버전의 논증을 만들었다. (주: 호건과 팀먼스의 '도덕적 쌍둥이 지구' 사고실험)
5. 메타윤리학의 직관주의 · Intuitionism in Metaethics (pp. 181–186) [심화]
- 무어의 결론: 좋음은 관찰도 과학적 연구도 할 수 없는 단순한 비자연적 속성. 그럼 무엇이 좋은지 어떻게 아나? → 전통적 답이 직관주의.
- 용어 구분 (5장 복습)
- 규범윤리학의 직관주의: 로스의 조건부 의무 이론. 여러 도덕적 의무가 하나의 원천을 갖지 않는다.
- 인식론적 직관주의 (이 절): 어떤 행위가 비자연적 도덕 속성을 가지는지 어떻게 아는가에 대한 이론. 로스는 이것도 받아들였다 (휴머, 짐머만, 캐스퍼).
(1) 앎의 문제 · The problem of knowledge (pp. 181–183)
전통적 지식 이론 · The traditional theory of knowledge (pp. 181–182): p를 안다 =
| 조건 | 예 |
|---|---|
| i. p라고 믿는다 | 파리가 프랑스 수도라고 믿지 않으면 그걸 아는 게 아니다 |
| ii. p가 참이다 | 마르세유가 수도라는 건 알 수 없다. 참이 아니니까 |
| iii. p라고 믿는 데 정당화되어 있다 | 테니스 치고 싶어서 내일 맑을 거라 믿었고 실제로 맑았어도, 운이 좋았을 뿐 증거가 없었으니 안 것이 아니다 |
- 논쟁의 초점은 iii. 정당화. 우리는 도덕적 믿음을 가지고, 운이 좋으면 일부는 참이다. 하지만 알려면 정당화가 필요하다. 다른 믿음은 대부분 보고 듣는 것으로 정당화되는데, 도덕적 믿음은 무엇으로 정당화되나?
추론적 정당화로는 안 된다 · Against inferential justification (pp. 182–183)
- 추론적 정당화: 다른 정당화된 믿음들의 지지를 받는 것. 예: '맥스가 방금 전화를 받았다' + '집에 있어야만 받을 수 있다' → '맥스는 집에 있다'.
- 직관주의자: 모든 도덕적 믿음이 추론적으로 정당화될 수는 없다. 그러면 악성 무한퇴행이나 악성 순환에 빠진다(봉쥬르).
- 무한퇴행: 지지하는 믿음은 무엇이 정당화하나? 또 다른 믿음. 그건? … 무한한 사슬. 유한한 존재는 무한한 믿음을 가질 수 없다.
- 순환(믿음의 그물망): 모든 믿음이 그물망 안의 다른 믿음의 지지를 받는다고 하면? → 과학자와 사이언톨로지 신자는 각자 내부적으로 일관되지만 서로 충돌하는 믿음을 갖는다. 둘이 똑같이 정당화된다는 건 이상하다. 아무리 황당한 견해도 일관되기만 하면 정당화된다는 것도 이상하다.
(2) 토대주의가 구하러 온다 · Foundationalism to the rescue (pp. 183–184)
- 토대주의(foundationalism): 정당화된 믿음 모두가 다른 믿음으로 정당화될 필요는 없다. 어떤 기초 믿음은 다른 방식으로 정당화된다.
- 믿음의 대상을 직접 대면(acquaintance)해서 (러셀). 예: 지금 내가 덥다는 믿음은 지금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 직접 알기 때문에 정당화된다.
- 신뢰할 만한 메커니즘이 산출했기 때문에.
- 직관주의자도 이런 넓은 의미의 토대주의자다. 그들만의 특징은 자명성(self-evident)이라는 독특한 정당화 방식이다(로스).
- 자명하다는 건 당장 뻔해 보인다는 뜻이 아니다.
- 자명한 명제를 이해하고 주의 깊게 숙고하는 것만으로 그것을 믿는 데 정당화된다(셰이퍼-랜도).
자명한 도덕 명제의 후보 · Self-evident moral propositions (p. 183)
- 고통과 괴로움은 나쁘다.
- 평범한 상황에서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것은 그르다.
- 다른 조건이 같다면 약속은 지켜야 한다.
정당화 조건 · Understanding and careful consideration (pp. 183–184) — (i) 명제에 쓰인 개념을 이해하고 (ii) 차분하고 편견 없이 주의 깊게 숙고하면, 다른 무엇을 믿든 상관없이 정당화된다.
- 둘 중 하나만으로는 안 되고 두 조건이 동시에 충족되어야 한다. 그러면 추가 이유가 필요 없다.
덜 신비롭게 보이게 하는 비교: 도덕 외의 자명한 명제 · Other basic propositions (p. 184)
- 어떤 것도 전체가 빨간 동시에 전체가 초록일 수는 없다.
- 2 + 2 = 4
- 적어도 세 세대 없이는 손주가 있을 수 없다.
- → 이해하기만 하면 더 이상 이유를 대지 못해도 믿는 데 정당화된다. 직관주의자: 기초 도덕 명제도 정확히 이와 같다.
(3) 오해와 반론 · Misconceptions and objections (pp. 184–186)
| 내용 | 직관주의의 응답 / 해명 | |
|---|---|---|
| 오해 1 경험과 감정의 역할 | 직관주의는 경험·감정·교육을 무시한다? | 아니다. 경험·감정·양육이 없으면 명제를 제대로 이해하거나 충분히 숙고할 수 없다. 예: 누군가에게 배신(속임)당해 속상해 본 적 없으면 "속이는 건 그르다"의 뜻을 이해 못할 수도 있다. 경험·감정이 직접 정당화하진 않지만, 없으면 정당화되지 않을 수 있다 |
| 오해 2 자명해 보이는 것 | 자명한 믿음 = 뻔해 보이는 것, 빠른 도덕적 반응? | 아니다. 받아들이기까지 많은 시간·노력·진지한 사고가 필요할 수 있다. 처음 자명해 보인 것이 감정적·이기적 편향에 기댄 것으로 드러날 수도 있다. 그러니 "내겐 자명해 보이지 않는다"는 반론이 될 수 없다. 빠른 감정 반응은 이해했다는 증거가 아니다 |
| 반론 1 이해하지만 동의하지 않는 사람 (노웰-스미스) | 프레드: 고통 덕분에 삶의 작은 즐거움을 알게 되니 고통은 좋다고 생각한다. 그는 "고통은 나쁘다"를 완벽히 이해하지만 동의하지 않는다. 그럼 이해 + 숙고만으로 정당화된다는 주장이 흔들리지 않나? | 직관주의는 프레드 같은 경우에 중립적이다. "이해하고 숙고한 뒤 믿으면 정당화된다"고만 말할 뿐. 남의 마음을 바꿀 수 없는 사람도 있으니 직관주의에 그걸 요구할 수 없다. 남는 문제: 프레드는 어떤 실수를 하나? 이해를 못 한 건가, 숙고가 부족한가, 아니면 받아들일 의무가 없나? 이에 답해야 정당화된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다. 그래도 프레드 같지 않은 보통 사람의 믿음은 정당화된다고 말할 수 있다 |
| 반론 2 독단주의(dogmatism) | 반대자를 무시하는 건 독단적이다. 우리의 현재 도덕적 믿음만이 스스로를 정당화한다는 건 너무 보수적이다 | 직관주의는 남의 견해를 무시하거나 자기만 안다고 말할 필요가 없다. 신중히 숙고한 사람들 사이의 불일치는 자명해 보이는 명제를 의심할 이유가 된다. 지금 자명해 보여도 나중에 실수로 드러날 수 있다. 이를 아는 직관주의자는 편견을 남에게 강요하는 게 아니다 |
6. 정리 · Summary (pp. 186–187)
- 도덕 실재론: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든 행위는 도덕 속성을 가진다(객관적 도덕 사실). 실재론자들의 주된 불일치: 도덕 속성이 다른 모든 속성과 같은가, 고유한 종류인가.
- 자연주의: 도덕 속성은 관찰·과학적 연구가 가능하고 원인이 될 수 있다. 예: 테레사 수녀가 그토록 많은 사람을 도운 건 그녀가 친절했기 때문이다. → 도덕 속성을 과학적 세계관 안에 넣으려는 시도.
- 비자연주의: 도덕 속성은 규범적 속성이라 고유하다. 실천적 의미가 속성 자체에 내장되어 있다.
- 열린 질문 논증: 행위의 자연적 속성을 다 알아도 "그런데 좋은가?"를 언제나 의미 있게 물을 수 있으므로 도덕 속성은 자연적 속성일 수 없다. 이 논증과 응답을 이해하는 것이 오늘날 도덕철학 이해의 핵심.
- 직관주의: 비자연적 도덕 속성을 어떻게 아나에 대한 전통적 답. 어떤 기초 도덕 명제는 이해하는 것만으로 믿을 자격이 있다(자명성).
7. 등장 철학자 정리 · Philosophers in This Chapter
| 인물 | 쪽 | 이 장에서의 역할 |
|---|---|---|
| G.E. 무어 | 168, 170–175 | 열린 질문 논증, 좋음은 단순하고 고유한 비자연적 속성 |
| 프라이스, 시지윅 | 172 | 무어 이전의 비슷한 반자연주의 논증 |
| 루이스, 콥 | 168–169 | 자연적 속성의 특징 / 루이스: 옳음 = 생생히 상상할 때 욕구하기를 욕구할 것 |
| J.S. 밀 | 169 | 옳음 = 행복 최대화 (자연주의의 한 예) |
| 스터전 | 168 | 노예제의 그름이 항의를 일으킨다 (도덕적 설명) |
| 댄시 | 169–170 | 비자연주의, 도덕 속성의 고유성은 규범성 |
| 하먼 | 169–170 | 불타는 고양이: 그름은 보이지 않는다 |
| 로크 | 172 | 뜻 = 단어를 쓸 때 떠올리는 생각 (단순한 견해) |
| 프랭케나 | 176–177 | 응답 1: 선결문제 요구 |
| 소엄스, 스미스 | 177–179 | 응답 2: 같은 뜻인지 늘 쉽게 알 수 없다 (노하우) |
| 볼드윈 | 179 | 응답 2에 대한 재반박: 뜻은 완전히 숨겨질 수 없다 |
| 크립키 | 179–180 | 응답 3: 뜻이 지시체를 결정하지 않는다 |
| 보이드 | 180 | 종합적 자연주의, 경험적 탐구 |
| 다월, 기버드, 레일턴 | 176 | 메타윤리학이 여전히 무어의 그늘 아래 있음 |
| 로스 | 181, 183 | 직관주의(규범적·인식론적), 자명성 |
| 봉쥬르 | 182 | 추론적 정당화의 무한퇴행·순환 문제 |
| 러셀 | 183 | 직접 대면에 의한 앎 |
| 셰이퍼-랜도 | 183 | 이해 + 주의 깊은 숙고 = 정당화 |
| 노웰-스미스 | 185 | 이해하지만 동의하지 않는 사람 반론 (프레드) |
| 휴머, 짐머만, 캐스퍼 | 181 | 직관주의·도덕 인식론 문헌 |
8. 핵심 용어 · Key Terms
| 영어 | 한국어 | 쪽 | 한 줄 설명 |
|---|---|---|---|
| metaethics | 메타윤리학 | 167 | 도덕 속성·도덕 언어·도덕적 앎의 본성을 묻는 분야 |
| moral realism | 도덕 실재론 | 167 | 옳음·그름은 마음과 독립적인 도덕 속성이다 |
| mind-independent | 마음과 독립적인 | 167 | 누가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달려 있지 않은 |
| natural property | 자연적 속성 | 168 | 관찰·과학적 연구가 가능하고 원인이 될 수 있는 속성 |
| naturalism | 자연주의 | 168 | 도덕 속성은 자연적 속성이다 |
| non-naturalism | 비자연주의 | 169 | 도덕 속성은 고유한 종류의 비자연적 속성이다 |
| normativity | 규범성 | 170 | 특정하게 행동하라고 요구하는 권위 |
| Open Question Argument | 열린 질문 논증 | 171 | "N인데 좋은가?"는 늘 열려 있으니 좋음은 자연적 속성이 아니다 (무어) |
| meaning / reference | 뜻 / 지시체 | 172 | 단어를 쓸 때 떠올리는 것 / 단어가 골라내는 대상·속성 |
| open / closed question | 열린 / 닫힌 질문 | 174 | 답을 고민하기 시작할 수 있는 / 없는 질문 |
| definition | 정의 | 173 | 한 단어의 뜻을 다른 말로 올바르게 포착한 것 |
| begging the question | 선결문제 요구 | 176 | 결론을 전제 중 하나로 사용하는 것 |
| know-how / knowing that | 노하우 / 이론적 지식 | 178 | 할 줄 아는 기술 / 무엇이 사실임을 아는 것 |
| sense/reference distinction | 뜻과 지시체의 구분 | 179 | 뜻이 달라도 같은 것을 가리킬 수 있다 (저녁별·샛별) |
| analytic naturalism | 분석적 자연주의 | 180 | 도덕어를 자연주의적 언어로 완전히 정의할 수 있다 |
| synthetic naturalism | 종합적 자연주의 | 180 | 뜻은 달라도 도덕어는 자연적 속성을 가리킨다. 경험적으로 찾아야 |
| intuitionism | 직관주의 | 181 | 기초 도덕 명제는 자명하여 이해·숙고만으로 정당화된다 |
| traditional theory of knowledge | 전통적 지식 이론 | 181 | 지식 = 정당화된 참인 믿음 |
| justification | 정당화 | 182 | 믿음이 운이 아니라 근거를 가지게 하는 것 |
| inferential justification | 추론적 정당화 | 182 | 다른 정당화된 믿음들의 지지를 받는 정당화 |
| vicious regress / circle | 악성 무한퇴행 / 순환 | 182 | 정당화 사슬이 끝없이 이어지거나 제자리로 도는 문제 |
| coherentism (network of beliefs) | 정합론 (믿음의 그물망) | 182 | 서로 지지하는 믿음들의 그물망으로 정당화된다는 견해 |
| foundationalism | 토대주의 | 183 | 어떤 기초 믿음은 다른 믿음 없이 정당화된다 |
| acquaintance | 직접 대면(익숙함) | 183 | 대상을 직접 알고 있음 (러셀) |
| self-evident | 자명한 | 183 | 이해하고 주의 깊게 숙고하면 그것만으로 정당화되는 |
| dogmatism | 독단주의 | 186 | 반대 견해를 무시하고 자기 믿음을 고수하는 태도 |
9. 장 끝 토론 질문 · Summary and Questions (p. 187) + 생각해 볼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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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 실재론자들은 무엇을 믿는가? 이 견해는 얼마나 그럴듯한가?
- 6장의 주관주의·신명론과 비교해 보기. 하먼의 고양이 사례처럼 '그름'을 직접 볼 수 없다는 점이 실재론에 얼마나 부담이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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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적 속성과 비자연적 속성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여겨지는가?
- 세 가지 특징(관찰·과학적 연구·인과)과 신이 복제 우주를 만드는 사고실험을 활용해 설명해 보기. '실천적 관련성'이 차이의 핵심이 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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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질문 논증을 친구에게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 형제/남자 동기(닫힘), 디저트/달콤한 것(열림), 행복 최대화/좋음(열림) 세 예로 5단계를 따라가 보기. 어느 전제가 가장 약해 보이는지도 생각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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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반론(노하우)의 옹호자와 무어는 단어를 쓸 때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어떻게 다르게 생각하는가?
- 무어: 뜻은 떠올리는 생각이고 투명하게 알 수 있다. 반론: 뜻은 암묵적 분류 기술이라 숨어 있을 수 있다. 볼드윈의 재반박(사례 대조, 자연스러움)은 어느 쪽 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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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주의자는 도덕적 앎을 어떻게 설명하는가? 이 설명은 만족스러운가?
- "2 + 2 = 4"와 "고통은 나쁘다"는 정말 같은 종류의 자명함일까? 프레드가 하는 실수가 무엇인지 직관주의가 답할 수 있나?
10. 더 읽을거리 · Annotated Bibliography (저자 추천 중 입문용) (pp. 187–190)
- Shafer-Landau, Moral Realism: A Defence (2003) — 비자연주의 실재론의 최근 최고 옹호서. 도덕적 앎에 관한 세 장이 특히 유용
- Baldwin, "Editor's Introduction" to Principia Ethica (1993) — 『윤리학 원리』와 열린 질문 논증에 대한 친절한 입문
- Feldman, "The Open Question Argument: What It Isn't; And What It Is" (2005) — 무어 논증의 여러 해석을 명료하게 정리
- Harman, "Ethics and Observation" (1977) — 도덕 속성은 인과적 설명에 필요 없다는 유명한 논문 (온라인 공개)
- Dancy, "Nonnaturalism" (2006) — 비자연적 도덕 속성이 무엇이 고유한지
- Kaspar, Intuitionism (2012) / Zimmerman, Moral Epistemology (2010) — 직관주의와 도덕 인식론 교과서
-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Moral Realism", "Moral Non-Naturalism", "Naturalism in Moral Philosophy" (온라인 무료)
📝 나의 메모 · My 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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